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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예 원통위에서 북치기 공연, 상상을 초월하는 신기다.
교예 원통위에서 북치기 공연, 상상을 초월하는 신기다. ⓒ 신병철
가장 아슬아슬하면서도 신기로 여겼던 것은 여러 개의 원통 위에 올라가 눈 가리고 작은 공으로 북을 치는 공연이었으리라 생각한다. 그 배우는 그래서 공훈배우보다 한 계급 높은 인민배우였다고 기억한다. 보통사람이라면 손으로 원통을 서로 직각으로 잡고 있어라 해도 불가능할 것 같았는데, 그 위에 올라가 균형을 잡으면서 작은 공으로 북을 치고, 그것도 모자라 눈까지 가리고 북을 친다는 사실은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아닐까 여겨졌다.

수직 철봉을 팔로 올라가는 교예, 중력을 무시하고 거부한 교예, 사람으로서 저게 가능할까?
수직 철봉을 팔로 올라가는 교예, 중력을 무시하고 거부한 교예, 사람으로서 저게 가능할까? ⓒ 신병철
신명나면서도 신의 경지로 여겨졌던 또 하나는 수직으로 세운 철봉을 거꾸로 발을 차면서 위로 올라가는 공연이었다. 중력을 가볍게 무시하고 손으로 철봉을 잡고 거꾸로 매달려 발을 차면 그게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걸까? 상식을 도외시하고 상식에 어긋나는 행위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교예단의 공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금강산호텔의 포장마차와 1층 카페(정확한 이름은 아님)과 꼭대기 라운지, 뿐만 아니라 관광객이 많이 들르는 온천장, 옥류관 등 곳곳마다 대단한 벽화와 걸개그림들이 있었는데, 이 그림들도 입을 딱 벌어지게 만들었다.

그림마다 공훈화가 여럿이 얼마 기간 동안 그렸다는 표식이 있었는데, 그림의 크기와 그림의 내용 등등 모두가 저게 가능한 일이었을까? 전시회에 걸려 있는 그림도 아닌데, 저렇게 음식점, 호텔 벽 전체를 저렇게 높은 수준의 그림으로 채울 수 있었을까? 신기하고도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름다운 금강산, 금강산호텔 포장마차 벽화
아름다운 금강산, 금강산호텔 포장마차 벽화 ⓒ 신병철
대부분 그림은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담고 있었다. 폭포, 미인송(금강산의 소나무를 일컬음), 해금강, 파도 등등 조금 과장되기는 했지만 대단히 사실적이면서 웅장하고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금강산의 사시사철의 모습은 그것 자체로도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다 볼 수 있는 듯했다.

무엇을 표현하고 있었나?

이런 금강산 관광지의 예술들은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을까? 금강산 관광지 본 순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정말 힘이 넘친다’라는 점과 너무나 ‘이상적이다’라는 점이었다.

금강산의 험준하고 강건한 그림, 힘과 기상이 흘러 넘친다. 넘치는 정도가 아니고 폭발하고 있다.
금강산의 험준하고 강건한 그림, 힘과 기상이 흘러 넘친다. 넘치는 정도가 아니고 폭발하고 있다. ⓒ 신병철
금강산 호텔 2층의 포장마차 벽화의 금강산 그림 속 산들은 힘이 넘쳐 보였다. 산봉우리들은 칼날 같은 예리함과 하늘로 향하는 엄청난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웅장한 산세와 하늘로 치뻗은 섬세한 작은 산봉우리들은 폭발하는 힘 그 자체였다.

아마도 온천장이었을 것이다. 독수리 한 마리 날카로운 주둥이를 빛내며 아래로 굽어보는 당당하고 강건하고 힘찬 모습은 말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나도 무엇을 해야지, 나도 저렇게 온 힘을 다하여 목숨까지 바쳐야지, 뭐 이런 느낌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해금강의 파도 그림, 폭발하는 파도의 힘이 넘쳐 넘쳐 폭발하고 있다.
해금강의 파도 그림, 폭발하는 파도의 힘이 넘쳐 넘쳐 폭발하고 있다. ⓒ 신병철
해금강의 총석정 그림에서도 이런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파도는 뭉쳐 힘이 응집되었고 그것이 한꺼번에 폭발해버리고 있었다. 파도 힘으로 뭉쳐서 꿈틀거리는 것은 금강산 준령의 바위의 힘과도 연결되고 있었고, 독수리의 눈매와 발톱과 날개에서도 나타나고 있었다.

교예단의 공연에서도 이런 힘은 느낄 수 있었다. 배우들의 공연을 그 자리에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가 뒷받침하고 있었는데, 음악은 힘찬 느낌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흔히 서커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공중 줄타기조차도 하이라이트는 아래에서 위로 향하여 로켓포가 올라가듯이 차고 올라가는 공연이었다. 음악과 공연히 만들어내는 환상은 그것 자체로도 힘이었다.

이상향으로서의 금강산, 만물상의 실재 모습이다.
이상향으로서의 금강산, 만물상의 실재 모습이다. ⓒ 신병철
그렇다고 힘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준령 험산 아래에는 포근한 이상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미인송으로 둘러싸여 있는 아름다운 고향이 포근히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금강산호텔 꼭대기 라운지의 매화그림은 비현실적인 이상향을 대변하고 있었다.

매화 가지가 앞으로 나가다 다시 뒤로 돌아와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 곳에 새 두 마리 아주 너무나 평화스럽게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주위에는 매화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현실의 매화나무 가지는 절대 저렇게 자랄 수 없는데... 새 두 마리가 편안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기 위하여 한 가지도 아니고 여러 가지가 앞뒤로 질서 정연하게 뻗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불가능이 아니다’라고 교예의 공연이 현실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림동화 금강선녀 표지
그림동화 금강선녀 표지 ⓒ 신병철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문학 분야였다. 금강산 관광지에 ‘금강산녀’라는 그림동화책을 팔고 있었다. 내용은 북한판 ‘나무꾼과 선녀’였다.

금강선녀 그림 동화책은 ‘나무꾼과 선녀’ 동화의 비주체적 혹은 비신사적 행동을 배제하고 있다. 금강선녀의 나무꾼은 결코 선녀의 날개옷을 감추지 않았다. 포수에 쫓긴 사슴을 구해주었더니, 그 사슴이 나무꾼을 위해 선녀의 날개옷을 감춰준 것으로 각색하고 있다.

노동하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표현한 금강선녀 동화책 그림
노동하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표현한 금강선녀 동화책 그림 ⓒ 신병철
게다가 노동의 즐거움과 노동을 통한 행복 추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는 일 없이 편안히 지내던 하늘 생활보다 행복을 스스로 창조하는 오늘의 생활이 더 기쁘고 보람있었다”고 적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녀는 남편 나무꾼이 찾아준 날개옷을 보고도 하늘나라고 가고자 하지 않았다. 한번 입어보고 아이들을 안았을 뿐인데, 날개옷이 저절로 하늘로 날아가 버린 것으로 각색하고 있다.

남편 나무꾼 역시 두레박의 도움으로 하늘나라에 올라간다. 금강부부는 천신만고 끝에 하늘 세상의 옥황상제의 명도 어기며 아들, 딸을 데리고 금강산으로 내려왔으며,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끝을 맺고 있다. 결국 하늘나라보다도 땅 세상 금강산이 더 살기 좋은 곳이라고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금강선녀 동화는 이렇게 쟁취한 지상의 행복한 삶으로 맺고 있다.
금강선녀 동화는 이렇게 쟁취한 지상의 행복한 삶으로 맺고 있다. ⓒ 신병철
결국 금강산에서 만난 북한 예술이 말하고 자 하는 바는 이런 것이 아닐까? ‘험한 지금의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상적인 극락의 세상을 함께 만들자. 불가능은 없다. 이상세상은 결코 의지를 모으면 이룰 수 없는 세상이 아니다. 저 행복의 나라로 온 힘을 모으자.’ 그리고 현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하나가 되는 것,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대단하고 어쩌면 안타깝고

“교예공연을 본 뒤에 세 번 눈물을 흘립니다. 신기의 교예를 보고 좋아서 눈물 흘리고, 저렇게까지 공연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땀을 흘렸으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하고 탈락했을까 생각되어 불쌍해서 울고, 공연 동안 자신도 모르게 너무 세게 두들긴 손바닥이 아파서 울고 그렇게 세 번을 운답니다.” 관광조장이 버스 안에서 한 말에 모두가 수긍하고 있었다.

‘추구하는 이상세계를 향하여 모두가 뜻을 모아서 힘차게 전진하자. 그 결과는 행복의 세상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행복의 이상 세계는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상 세계는 어떤 세계일까? 어떤 것이 이상 세계일까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현실의 이상세계이며 현실에서는 점진하는 그것만 존재하는 것이라 여긴다.

금강산 관광에서 북한의 예술을 만나고 난 뒤의 전체적인 느낌은 대단하기는 하지만 씁쓰레하다는 것이다. 이상을 향해서 하나의 목소리로 힘을 모아야 된다는 주장이 온 곳에 묻어나오고 있었다. 관념적으로 인식하고 있던 북측 세상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그렇지만 목표에 도달하는 길이 직선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점을 북측은 소홀히 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동시에 인정되고 그런 사람들의 뜻이 반영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다 뒤로 돌아오는 매화나무가지 같은 것은 없어도 되는 현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수직 수평 철봉은 한반도 그림과 하나 라는 문구로 끝맺고 있다.
수직 수평 철봉은 한반도 그림과 하나 라는 문구로 끝맺고 있다. ⓒ 신병철
교예 공연에서 붉은 한반도 위아래에 ‘하나’라고 써 있는 것과 북측 안내원 모두가 정성을 다해 봉사하고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우리는 절반 하나가 되고 있었다. 목표가 동일함을 깨달았으면 이제는 방법만 남았다. 어쨌거나 말하면 전혀 어려움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헤어져 살아왔다는 점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2월 16일부터 2월 18일까지 금강산 관광 기행문 2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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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낚시도 하고 목공도 하고 오름도 올라가고 귤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아참 닭도 수십마리 키우고 있습니다. 사실은 지들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개도 두마리 함께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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