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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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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 앞에 선 소포리 소리꾼들

ⓒ 김준
지난 18일 진도대교를 지나 읍으로 내달리다 보면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다. 지산면 방향으로 지나다 소포방조제를 지나 마을에 이른다. 전수관 앞마당에 관광버스가 벌써 도착해 있고, 외국인들이 창고로 몰려 들어간다.

궁금해 따라가 보니 꽃상여가 전시되어 있다. 도심 전시관처럼 격식을 갖추지는 않았지만 외국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제대로 된 설명과 방문객들을 위한 전시 공간 마련이 아쉬웠다.

이번에 외국인들의 소포리 방문은 '광주국제교류센터'(http://www.gwangjuic.or.kr 소장: 신경구 전남대 영문과 교수)에서 매월 한 차례씩 남도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되었다.

광주국제교류센터는 1999년 6월 '광주시민연대모임'의 제안으로 광주시의 도움을 받아 민간차원의 국제교류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문을 열었다. 광주 국제교류센터는 어려운 재정살림에도 불구하고 남도지역 문화답사, 한국어학당, 외국인의 날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광주·전남에 거주하는 외국인 30여 명이 방문하기 하루 전날, 다른 일로 소포리를 방문했을 때 전수관에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빛이 새어 나오고 북장구 소리가 들린다. 마을 젊은 이장 김병철(43)씨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섰다.

열댓 명의 아짐(진도를 비롯해 전라도에는 아주머니를 '아짐'이라 부른다)들과 너댓 명의 남자들이 장구와 북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외지인들을 반긴다. 이렇게 다양한 나라에서 많은 외국인이 찾은 적이 없기 때문에 각별하게 신경이 쓰인다며 열심히 연습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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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에도 따뜻한 해양성 기후 탓에 겨울배추, 대파 등 농사일이 끊이질 않고, 소포리처럼 바다와 닿아 있는 지역은 겨울 바다일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형편이다. 농한기와 농번기가 따로 없어, 이렇게 외지에서 손님이 온다고 하면 노래방에 모여서 연습하고 손발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오전에 준비한 남도민요와 단가 그리고 북춤과 상모돌리기 시범이 이어졌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외국인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들의 카메라 셔터소리와 불빛이 멈춘 것은 체험프로그램이 시작된 후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쉽지 않는 장단을 외국인이 장구를 가지고 체험한다는 것이 쉽지 않는 일이지만 매우 진지했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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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만에 외국인들 모두 겅중겅중

점심을 먹고 오후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 잠시 쉬는 동안 옛날 마을 사진을 이용해 이장의 '마을이야기'가 이어졌다. 남도소리도 섞어가며, 진도의 민속악에 대한 맛들도 소개되었다. 외국인들이 이를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겠지만, 진도사람들은 진도의 민속음악을 통해서 '아픔이나 슬픔을 밝고 새로운 시작으로 표현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가 소개한 '흥타령'의 한 대목이다.

"어메 어메 우리 어메
칠월 가뭄에 눈비 같은 우리 어메
동지섣달에 호박꽃 같은 우리 어메
뭣 할라고 날 낳았는가
나를 낳아서 공부시킬라믄
글공부나 시켜주제 일공부를 시켜서 이 고상을 시키는가"


각자 싸온 점심을 먹고 난 후 시작한 오후 프로그램 중 외국인들을 감동 시킨 것은 85세 김연림 할아버지의 판소리 12바탕 중 숙영낭자전 한 대목이었으며, 가장 흥분시킨 프로그램은 강강술래였다. 특히 숙영낭자전은 오직 소포리에서만 들을 수 있는 매우 귀한 소리라는 전통민속전수관장(박금영)의 이야기에 모두들 할아버지를 존경스러워 했으며, 한 외국인은 프로그램이 끝난 후 직접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지난 1988년 올림픽행사에 소개된 이래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강강술래는 시작된 지 몇 분 안 되어 외국인들을 모두 일으켜 세웠고, 겅중겅중 뛰게 만들고 말았다. 박수를 치며 어깨를 들썩이던 외국인은 주민이 내민 손에 끌려 원무 안으로 들어왔고, 이를 신호로 순식간에 전수관은 60여명이 뛰노는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앉아서 구경하던 주민들도 덩달아 흥이 났던지 손을 잡고 뛰어들었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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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들었으면 당신들 것도 내놔야제

강강술래를 끝으로 한바탕 놀이가 마무리되었다. 약간 냉기마저 돌던 전수관을 주민들과 외국인 50여 명이 한바탕 뛰고 나자 모두들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웃옷을 벗어던진 사람들도 있었다. 열기가 오르자 이장이 다시 나섰다.

"우리 것은 다 보여줬응께 인자 당신들 것도 보여줘야제."

이장의 부추김과 주민들의 박수소리에 미국, 캐나다, 호주, 멕시코 등 각국의 참가자들의 즉석 전통음악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강강술래를 하며 함께 뛰던 소포리 아짐들은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이제 관객이 뒤바뀌었다. 외국인들이 남도소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듯 소포리의 아짐들도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북장단으로 리듬을 끌어가는 것으로 보아 소리로 통하는 것 같았다.

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육지와 연결하는 관문이 이곳 소포리였다. 일과 놀이의 구분이 없던 농경사회에서 소포리 아짐들은 고된 밭일과 바닷일을 소리로 받아 넘겼고, 가을걷이가 끝나고서는 사랑방에 모여 마을 소리꾼의 지도를 받았다.

콩밭메고 고추따는 아짐들도 들녘 어디에서나 '흥타령', '둥덩애 타령' 등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소포리에는 '소포리 걸궁농악', '소포리 강강술래', '소포리 닻배놀이', '소포리 명다리굿' 등 민속악이 전하고 있으며, 기능보유자를 비롯해 전수자들을 다수 배출한 민속악의 명촌이다.

ⓒ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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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짐들 돈 없응께 외국 여행은 못했지만, 오늘 여기서 미국으로 캐나다로 멕시코로 다 돌아부렀네."
"요것이 글로벌이여."

이장의 걸판진 입담에 통역을 하는 자원봉사자는 적절한 표현을 찾느라 쩔쩔 매지만 외국인들은 통역에 앞서 웃음을 터뜨린다. 이장의 콩글리시와 바디랭귀지가 통한 모양이다.

전문가들도 표현하기 쉽지 않는 남도문화, 남도소리를 외국인들에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이 모두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책임이 크다. 눈만 뜨면 세계화를 외치지만 겨우 유명한 문화재 안내판이 영어와 함께 소개되는 정도에 머무르는 것이 현실이다.

이미 봄기운이 내려앉은 소포리는 외국인들과 주민들이 100여 명이 모여 야단법석이다. 아직은 프로그램이 엉성하고 짜임새가 부족하지만 서울의 유명한 무대보다 마을회관의 작은 공간에서 서로 엉덩이를 밀어대며 주민들의 소리와 끼를 볼 수 있는 소포리 노래방이 훨씬 소중한 것은 삶의 현장에서 소리와 춤의 주인들이 만들어내는 춤과 노래이기 때문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진도 소포리는 검정쌀과 대파, 김, 울금 등 특산물로 유명하다. 전통민속전수관에서는 직접 남도소리를 체험할 수 있으며, 계절에 따라 전통고기잡를 비롯해 다양한 체험 활동을 할 수 있으며, 민박도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www.sopoli.com)에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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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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