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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는 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겨울나무는 달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 김형태

샘솟듯 돌을 밀어내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니 벌써 봄인가 봅니다~
샘솟듯 돌을 밀어내고 올라오는 새싹을 보니 벌써 봄인가 봅니다~ ⓒ 김형태
지난해 3월, 제가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사계절이 다 흐르고 흘러 다시 새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년 동안 함께 지내다 보니, 1번 병무부터 35번 관문이까지 미운 정 고운 정 흠뻑 들었고, 이제는 손금 보듯 학생 파악이 되는데, 아니 눈빛만 봐도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데, 막상 헤어지려니 아쉽기 그지없네요.

어떤 의미에서 아이들도 이제야 저에게 적응이 되었고, 저도 아이들의 눈높이에 가까이 다가섰는데, 정들자 이별이라는 말처럼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에 때아닌 안개비가 나부끼네요. 아마 제가 아이들을 무척 사랑하나 봅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우리 반 아이들을 겨울나무의 마음으로 떠나보내고, 새로운 아이들과 또다시 씨름하며 서로 적응하느니 차라리 이 아이들을 졸업할 때까지 데리고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다 해보았습니다.

제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쓴 편지는 읽어보셨는지요? 아이들에게 편지를 쓰는 김에 학부모님께도 몇 글자 적어봅니다. 아마도 오늘 편지가 학부모님께 드리는 마지막 편지가 될 듯싶습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궁금하게 여기시는 분들이 많기에, 제가 그동안 참고하시라고 <학부모통신>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번 꼴로 편지를 드렸습니다.

봄비에 젖은 싱그러움이 마치 우리 아이들을 닮았습니다.
봄비에 젖은 싱그러움이 마치 우리 아이들을 닮았습니다. ⓒ 김형태

체육대회에서의 한 장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아로새기겠습니다.
체육대회에서의 한 장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아로새기겠습니다. ⓒ 김형태

조촐한 생일잔치는 아이들도 저도 잊지 못할 나이테일 것입니다.
조촐한 생일잔치는 아이들도 저도 잊지 못할 나이테일 것입니다. ⓒ 김형태
아시겠지만, 금지옥엽 같은 아이들을 제가 일 년 동안 데리고 있으면서 가장 강조한 것은 목표의식이었습니다. 자신의 소질, 적성, 능력, 환경 등을 고려해서 적절한 푯대를 삼고 그것을 향해 매진하도록 최대한 도와주려 애썼습니다.

‘입시지옥’이라는 말처럼, 고교현실이 참으로 어렵고 힘든 가시밭길입니다. 한창 혈기왕성하고 자유분방한 나이의 아이들이 하루 종일 딱딱한 의자에 앉아 책과 씨름한다는 것은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제가 군에 입대했다는 마음가짐으로 참고 이겨보라 했겠습니까?

목표의식과 강한 신념이 없으면 이겨내기 어려운 시절입니다. 그래서 뜻과 꿈을 강조했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꿈이라도 있어야 이 힘겨운 시절을 버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표가 뚜렷한 학생은 공부하라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하고, 다른 짓 하라고 해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생활지도에 힘썼습니다. 학교는 입시학원이 아닙니다. 인성지도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요. 교칙준수부터 시작해서 좋은 가치관, 참다운 인생관을 형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반 아이들이 나중에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 자신의 영화와 이익만을 좇는 소인배 같은 삶이 아닌, 남을 배려할 줄도 알고, 나아가 사회와 국가에 보탬이 되는 존재로 살아가도록 도와줘야 할 것 같아 그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업지도에 열을 올렸습니다. 아무리 심성이 착해도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입니다. 갈수록 생존경쟁은 치열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실력 배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학교에서 성적이 저조하면 성격까지 움츠러들어 자신감마저 잃고 마는 예를 많이 봅니다.

또한 대학가기가 어렵다고 해도 예전에 비하면 수월한 편이고 조금만 노력하면 자기가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공부, 공부! 하며 채근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저희 반 35명,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지도하려 애썼습니다. 이런 저의 욕심인지 사명감인지, 애정인지 집착인지 모를 다소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저도 힘겨웠지만,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과 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은 조금 버거웠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잘 알면서도,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낫게 만드는 것이 제 할 일이라는 생각에, 개개인마다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그곳에 도달하도록 좋게 타이르기도 하고 호소하기도 하고 때로는 목소리 높여 닦달하고 심지어 처지거나 게으른 녀석에게는 매도 들어가며 아이들을 여기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일 년 동안 아이가 많이 좋아지고 달라졌다는 것이 대다수 부모님의 의견입니다. 그것으로 저는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몇몇 아이들은 제자리걸음입니다. 오히려 뒷걸음친 아이도 있습니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부모님께서 더욱 관심을 두고 뜨거운 사랑으로 자신감을 찾고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교사도 사람입니다. 물론 소명의식과 보람에 살지만, 때때로 아이들 때문에 상처를 받아 가슴속 깊이 울기도 합니다. 다소 어려운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큰 탈 없이 여기까지 오게 되어 우리 반 아이들에게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을 아이들이 길이 기억할 것입니다.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말을 아이들이 길이 기억할 것입니다. ⓒ 김형태

보석처럼 빛나는 석류알, 꼭 아이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보석처럼 빛나는 석류알, 꼭 아이들을 보는 것 같습니다. ⓒ 김형태
돌이켜보니, 아이들에 대한 기대 수치가 높아 화를 내면서까지 몰아세운 적도 있어, 뜻하지 않게 상처받은 아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아이들의 성적 향상과 생활 지도를 위해 때때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치기도 하였습니다. 혹시 마음에 상처를 받은 학생이나 부모님이 있다면 아이를 사랑하는 진심에서 그리 한 것이니 넓은 마음으로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좀 더 칭찬해주고 더욱 격려해주자고 수없이 다짐했지만, 그러기보다는 거꾸로 아이들에게 화내고 혼낸 적이 많은 것 같아 못내 안타깝습니다. 또한, 좀 더 좋은 추억거리를 많이 만들어주고자 애썼으나 그리하지 못한 것 같아 역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제가 보다 엄하고 무섭게 아이들을 지도하였다면, 반대로 좀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지도했다면 어떠하였을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일일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주지 못해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제가 보다 건강한 사람이었다면, 시간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아이들에게 더욱 열성을 쏟았을 텐데……. 그 점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슬플 텐데도 아름답게 이별을 하는 나무가 한없이 부럽습니다.
슬플 텐데도 아름답게 이별을 하는 나무가 한없이 부럽습니다. ⓒ 김형태
마지막으로 몇 말씀 당부 드립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에게 맡기면 스스로 하지 못합니다. 몸만 컸지 아직은 미성년자입니다. 따라서 부모님의 간섭이 아닌 따스한 관심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방학이든 학기 중이든 그냥 흘려보내지 마시고 보람과 희망으로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공부만 하기에도 부족한 기간이고 놀기에도 부족한 기간입니다. 지혜롭게 우선순위를 따져 시간 안배를 잘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실력도 배양하고 견문도 넓히고 마음과 생각도 커지는 알차고 뜻있는 고교생활로 만들어 주십시오.

저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님들과의 인연도 나무가 가슴속에 나이테를 만들 듯 저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그럼, 며칠 남지 않은 2월도 뜻 깊게 보내시고, 더욱 건강하고 단란하며 화목한 가정 만드시길 기도드립니다. 그동안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나무가 잎과 열매를 기억하듯, 저도 떠나가는 아이들을 저의 나이테에 간직하겠습니다.
나무가 잎과 열매를 기억하듯, 저도 떠나가는 아이들을 저의 나이테에 간직하겠습니다. ⓒ 김형태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과 서울방송(SBS)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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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포럼 <교육을바꾸는새힘>,<학교안전정책포럼> 대표(제8대 서울시 교육의원/전 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 "교육 때문에 고통스러운 대한민국을, 교육 덕분에 행복한 대한민국으로 만들어가요!" * 기사 제보 : riulkht@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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