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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가는 날 아침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아옹다옹 다투는 아내와 딸인데, 언제인가 안 싸우고 저렇게 사이좋게 준비하길래 "오래 살고 볼 일이네!"하면서 신기한 마음으로 사진 찍어놨습니다.
유치원 가는 날 아침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아옹다옹 다투는 아내와 딸인데, 언제인가 안 싸우고 저렇게 사이좋게 준비하길래 "오래 살고 볼 일이네!"하면서 신기한 마음으로 사진 찍어놨습니다. ⓒ 장희용
세린이가 갑자기 유치원복을 안 입고 치마를 입고 간다고 해서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어김없이 한바탕 엄마하고 신경전을 벌인다. 엄마의 완강함에 밀린 세린이는 협상이라도 하듯 유치원복 입는 대신 핑크색 점퍼를 입고 간다고 했지만 비가 오고 난 뒤 날씨가 추운지라 아내는 두터운 파란색 점퍼를 입고 가라고 했다.

결국 자신의 뜻을 하나도 이루지 못한 세린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방 문에 힘 없이 기대 고집을 굽히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유치원 차 올 시간 다 됐다면서 굳은 표정으로 세린이를 채근했다.

하지만 둘 다 양보할 태세가 아니다. 결국 자식이 안쓰러워서 내가 스타킹 신기고 치마 입히고, 대신 점퍼는 세린이를 설득해 파란색으로 입혀서 유치원 보냈다. 스타킹에 있는 무늬가 똑바로 안됐다는 세린이의 핀잔을 들으면서 두 번씩이나 다시 입혀 겨우 만족스러워하는 세린이 표정을 보았다.

"나, 머리 양쪽으로 이렇게 따 줘?"
"벌써 다 했는데, 처음부터 말했어야지 지금 다시 해 달라고 하면 어떡해."
"이렇게 하는 게 더 예쁘단 말이야! 내 부탁은 한 번도 안 들어주고."
"언제 안 들어줬어? 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니까 그렇지. 그냥 가."

"밖에 추우니까 스웨터 입고 목도리 하고 가자?"
"나 스웨터 입기 싫어. 나 꽃무늬 원피스 입을 거야."
"추운데 무슨 원피스야. 너 감기 걸리면 어떡할래? 주사 맞으러 갈 거야? 엄마가 뭐 엄마 좋으라고 스웨터 입으라고 하는 줄 알아. 다 네 생각해서 그래. 얼른 입어."
"싫어!"

지난 번에는 머리 모양과 역시 옷 입는 문제로 세린이와 아내는 또 아옹다옹 다퉜다. 엄마 머리처럼 묶어 달라고 해서 가지런히 빗질해서 묶어 줬는데, 거울 보고 오더니 안 예쁘다면서 머리를 따달라고 떼를 쓰는 세린이가 충돌의 화근이었다. 아내는 아침마다 벌이는 이 신경전에 그 날은 피곤함을 느꼈는지 큰 소리를 내면서 그냥 가라고 했다.

세린이의 시무룩한 표정에 내가 또 다시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엉덩이를 들썩이자 아내가 하는 말.

"자기 오늘은 안돼! 자기가 만날 그렇게 세린이 편 들어주니까 세린이가 자기 뜻대로만 하려고 하잖아."

아내의 무거운 말에 나는 들던 엉덩이를 바닥에 다시 앉혔다. 아내의 표정을 보니 잘못하면 불통이 내게 튈 분위였기 때문이다. 이럴 때 아빠인 나는 참 난감하다. 아내 편을 들자니 딸이 안쓰럽고, 딸 편을 들자니 아내 말대로 내가 너무 "오냐 오냐" 키우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괴롭다.

계속되는 아내와 딸의 싸움, 그 속에서 커지는 모녀의 사랑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둘이 싸우는 통에 엄한 저만 중간에서 동네북 되지요. 그런데 더 억울(?)한 건, 싸운 날 저녁에는 저렇게 둘이 꼬옥 붙어서는 사이좋게 논다니까요. 저는 끼워주지도 않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둘이 싸우는 통에 엄한 저만 중간에서 동네북 되지요. 그런데 더 억울(?)한 건, 싸운 날 저녁에는 저렇게 둘이 꼬옥 붙어서는 사이좋게 논다니까요. 저는 끼워주지도 않고. ⓒ 장희용
세린이와 아내는 늘 이렇게 유치원 가는 아침이면 옷이며 머리 모양, 머리끈 색깔, 신발, 심지어는 양말 색깔까지를 놓고 실랑이를 벌인다. 그래서 유치원 가는 날 아침은 세린이의 고집과 엄마의 설득, 그리고 한 발 더 나가 세린이의 울음과 엄마의 큰소리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싸움은 대부분 아내가 이긴다. 하지만 아내가 질 때도 많다. 세린이가 고집을 굽히지 않고 버티기 작전을 끝까지 고수하면? 설득해도 안 되지, 큰 소리 쳐도 안 되지, 협박해도 안 되지, 자기 성질에 자기가 못 이긴 아내는 혼자 씩씩거리며 방문을 "꽝"하고 닫고는 방에 들어가 꼼짝도 안한다.

세린이는 이런 엄마를 보고서도 '엄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봐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 때까지도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서 있는다. 방문을 열고 아내를 살며시 쳐다보면 아내는 방 안에 널어놓은 빨래를 "팍팍" 개면서 엄한 곳에 화풀이를 한다. 유치원 갈 시간은 자꾸 다가오고, 조급한 내가 세린이 대신 총대 메고 아내에게 슬쩍 말을 붙였다.

"세린이 유치원 안 보내? 그냥 해 달라는 대로 해 주지?"
"자기가 매일매일 세린이랑 겪어봐, 그런 말 나오나? 나는 뭐 내가 해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줄 알아?"
"뭐, 그렇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늘만 해주지?"
"추운데 어떻게 원피스를 입혀 보내!"

밖으로 나와서 세린이에게 추우니까 스웨터 입고 가라고 했다. 그런데 아빠가 무슨 죄가 있다고? 갑자기 손으로 내 가슴을 마구 마구 때리면서 "아빠 미워!"하는 것이다.

밖에서 딸과 벌이는 그 풍경에 아내가 다소 미안한 생각이 들었던지, 방에서 나와서는 침묵 속에 원피스를 입혔다. 그러자 여우같은 요 세린이 녀석, 금세 얼굴 표정이 밝아지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거리며 엄마와 친한 척한다. 아내 역시 언제 그랬냐는 듯 세린이에게 다정다감하다. 더 웃긴 건 이렇게 싸운 날 저녁에는 둘이 꼭 붙어 잔다는 것이다. 나 원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고집 센 엄마와 고집 센 딸! 아직 어리기만한 6살 딸 때문에 삐져서는 저렇게 방에서 화풀이 하고 있는 아내를 보고 있으면 철딱서니 없는 것 같기고 해서 웃음이 나오고, 그 자리서 손가락 깨물며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 딸 모습에 웃는다. 그렇게 매일 매일 아옹다옹 싸우면서도 매일 매일 더 큰 사랑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제가 알기로 여자는 시집가면 친정 엄마하고 친구 사이가 된다는데, 문득 생각해 보니 어릴 적에 이런 애증의 관계가 깊어서 친구 사이가 되는 것 아닐까요?
제가 알기로 여자는 시집가면 친정 엄마하고 친구 사이가 된다는데, 문득 생각해 보니 어릴 적에 이런 애증의 관계가 깊어서 친구 사이가 되는 것 아닐까요? ⓒ 장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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