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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에도 춥지 않도록 따뜻하게 해드렸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춥지 않도록 따뜻하게 해드렸습니다 ⓒ 이종일
2001년 5월 21일 일요일! 혈압이 높으셨던 아버지는 이날도 아침에 학교 운동장을 도시고 집으로 들어 오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거실에서 쿵! 쓰러지셨습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혈관은 막혔고 가느다란 실핏줄만이 살아 있어 아주 적은 량의 산소만이 뇌에 전달될 뿐이었습니다. 의식을 잃으신 아버지를 큰 대학 병원으로 옮겨 보았으나 이미 오른쪽 손과 발은 마비가 되었고 언어 장애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힘겨운 재활치료를 3개월간 받았지만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더 이상 해 줄 것은 없으니 퇴원하라고 합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아버님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 괜찮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비록 몸은 마비되셨고 말은 할 수가 없었지만 휠체어에 몸을 기대고 아들 딸 손자가 오면 반갑다고 소리를 지르시던 어버지셨습니다. 병원에 포기한 아버지였지만 그래도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 용하다는 한의원을 찾아다니면서 침을 맞고 어떻게든 절룩거리면서라도 걸어만 다닐 수 있다면 좋겠다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말씀을 못하셔도 휠체어를 타고 아들만 오면 바깥바람을 쐬자고 손짓으로 말씀하셨던 아버지셨고 학교 운동장에라도 가시면 그렇게 좋아 하셨습니다. 아들 자식이라고 떨어져 있어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가끔 한번씩 찾아와도 반갑게 맞아 주셨고 손자 손녀를 보면 손 내밀며 반갑다고 악수를 하시며 크게 웃으셨던 아버지셨습니다.

병원이 멀리 있어 처음에는 모시고 갈 수 있었으나 점차 기력이 떨어지시면서 약만 타다가 먹기로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한번 모시고 나와서 상태를 살펴보고 약의 처방을 달리 해주어야 할지 아니면 그대로 적용을 할지를 알 수가 있다고 하나 차만 타시면 멀미를 하시고 토하시는 아버지를 모시고 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러는 사이 아버지는 아마 조금씩 상태가 나빠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는데 정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던 제 자신이 미웠습니다.

식사량도 줄어들고 급기야 지난 11월부터는 곡기를 끊으시려는지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말씀은 못하셔도 당신께서 하루를 살면 남아 있는 자식이 하루 더 고생한다는 마음으로 독한 생각을 품으신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 잠깐 호전된 듯 보였으나 당뇨까지 와서 마비된 발이 시꺼멓게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가야 다리를 자르라는 것 밖에 없다는 가족들의 의견을 들어 서서히 아버님을 보내드리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느끼고 준비해야 했습니다. 대소변을 잘 가리시던 아버님이 이제 전혀 의식을 하지 못하고 3개월을 지내셨습니다.

영정 사진을 만들고 1월에 들어와서는 더욱 증세는 심해졌고 방안에 냄새가 나고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말이면 가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숨은 쉬고 있는지 궁금하여 방문을 열어보고 거친 숨소리지만 숨을 쉬고 계시면 회사로 출근을 했습니다. 설날 아침에도 숨소리는 거칠었지만 변함없는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아침을 먹고 할아버지 산소를 다녀왔습니다.

가족들이 모여 저녁을 먹고 누나네 식구들이 와서 방문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숨쉬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워하시는 아버지께서 임종을 하실 것 같은 모습이셨습니다. 구급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옮겼으나 한 시간이 못지나서 그 동안 호강 한번 하지 못하고 자식들 위해, 먹고 살기 위해 고생만 하셨던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말 한마디 못하고 자식들 손 한번 더 잡아 보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가셨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선산에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무언가 허전함을 느낍니다. 방안에 계셔야 할 아버지가 없는 텅 빈 방안은 참 쓸쓸해 보입니다. 지난 6년간 어머니께서 무척 고생하셨습니다. 아들 자식이라고 해봐야 가끔 와서 보고 가는 것에 그치지만 그 어려운 간병을 아무 말 없이 감내 하셨습니다. 마지막 3개월간은 너무 힘드셔서 가끔 자식들이 가면 울면서 하소연을 하십니다. 자식된 도리로서 너무 큰 불효를 저질렀습니다. 같은 동네에 다행히 누나가 살고 있어 어머님을 많이 도와 드렸지만 그래도 어머님의 희생은 가엾습니다.

이제까지 어머니 아버지라는 양쪽 날개를 달고 아무 탈 없이 살아왔지만 한쪽 날개가 없어진 지금, 날 수 없는 어머니를 위해 날개짓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도록 아버지만큼은 못되겠지만 최선을 다해 어머니을 모실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 걱정은 마시고 고달픈 이 세상을 잊으시고 편안하게 쉬시고 아들, 딸 그리고 손자 손녀들 커가는 모습 지켜보시면서 이 세상에서 못다 누리신 것 다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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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회사에 다니고 있으며 PB로써 고객자산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내 증권방송 앵커 및 증권방송 다수 출연하였으며 주식을 비롯 채권 수익증권 해외금융상품 기업M&A IPO 등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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