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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발족한 '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아래 수목장실천모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이 모임이 앞으로 해나갈 일은 오늘 여기서 벌어질 일들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라 현세의 삶 이후의 일, 즉 죽음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 자신의 장례를 수목장(樹木葬)으로 치르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는 필자(왼쪽에서 다섯번째)와 각계 저명 인사들.
ⓒ 수목장실천모임
인류가 역사 이전부터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제도가 결혼과 장례 문화가 아닐까. 그 가운데서도 내세 영혼, 더 나아가 종교의식과도 연관된 장례(의식과 매장)는 인간의 전통 가운데 가장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 영역에 속한다.

봉분묘 형태로 아득한 옛날부터 이어온 우리의 장묘제는 인구팽창에 따른 묘지의 기하급수적 증가, 산림과 국토의 훼손, 산사태와 환경오염 등으로 오래 전부터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 우리나라 수목장 실천운동의 기폭제가 된 고 김장수 고려대 명예교수의 수목장 모습.
ⓒ 수목장실천모임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화장을 통한 납골묘제였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호화 납골묘가 나타나고 분묘보다도 시간이 흐르면 자연훼손과 환경오염의 위험성이 더 커질 것이 분명해지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고 김장수 임종국 선생 수목장이 기폭제

그럴 즈음 2004년 9월과 지난해 11월에 중요한 사건이 벌어졌다. 어쩌면 이 두 사건은 조용했지만 우리 한반도 역사에 어떤 다른 일보다도 큰 의미를 지닌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고 김장수 고려대 명예교수와 고 임종국 친일문제 저술가(이미 1987년에 서거했으나 다시 유골을 옮겨 묻음)의 수목장이 거행되었다. 그 두 분 선각자의 수목장은 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쳐 일깨우면서 우리 장묘문화 전반을 점검케 하고 즉시 수목장을 실천해야 한다는 운동을 불러 일으켰다.

'산지보존협회'(회장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산림포럼'(공동대표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이 주축이 되어 논의가 진행되어 '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시민운동단체가 결성된 것이다.

성숙화 선진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징표

우리는 지난 40여년 동안 인류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의 맹렬한 속도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했고 지금도 항진 중이다. 그 과정에 보람과 성취도 있었지만 시행착오와 대실패도 경험해야 했다. 와우아파트,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의 붕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충 대충, 빨리 빨리, 적당히"라는 톱다운형 압축고도성장의 눈가림 폐해가 무너져 내린 것이 그 사건들이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그 뒤 감사, 감리 등의 기능이 강화되면서 날림공사, 눈가림공사의 폐해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지난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의 압축고도성장의 눈가림 폐해가 무너지는 꼴을 다시 목도했다. 황우석 줄기세포파동이 그것이다. 지식의 세계, 과학기술의 세계, 더 나아가 종교의 세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그동안 부풀려진 허풍선들이 황우석파동과 같은 파국의 임계점에 다가가고 있는 조짐을 느끼고 있다.

우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징표를 음미하게 되었다. 삼성이 자신들이 저지른 죄과를 참회하는 뜻으로 8000억원이라는 거금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발표한 일이다. 과연 앞으로 재벌 대기업들이-40년 전 한비밀수사건 이래 약속파기를 손바닥 뒤집듯 했던 것과는 달리- 정말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불법증여상속, 횡령 등을 저지르지 않는 계기가 될 것인가.

위에서 지적한 몇 가지 사례들은 우리 사회가 이제 "대충 대충, 빨리 빨리, 적당히"의 시대를 지나서 "천천히 그러나 차근차근"의 시대로, 다시 말해서 성숙화, 선진화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징표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 헤아려 본다.

자연과 하나 되는 품위있는 내세관 만들 터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 일들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일은 '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겨난 것 아닐까 생각된다. 다소 엉뚱하다고 여길 분들도 있겠지만, 다른 일들은 지금 아무리 요란스럽게 주목을 많이 끌어도 100년쯤 지나면 잊혀질는지 모르지만, 수목장이 일으키는 큰 변화는 우리 국토를 아름다운 산림으로 가꾸고 우리 삶의 환경을 쾌적하게 바꿔놓을 것이다.

죽은 조상과 살아있는 후손이 산림훼손, 자연파괴다, 효사상 말세다, 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민망한 땅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나무, 산림과 함께 선조와 후손이 영생하는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호화 분묘와 거대 납골묘로 경건한 죽음을 욕되게 하는 대신에, 자연과 하나 되고 자연에 이로움을 주며 결국 자연의 품에 안기는 품위있는 내세관(來世觀), 생사관(生死觀)을 가지게 만들 것이다. 죽음을 진지하게, 경건하고 소박하게 마중하는 사회가 역설적으로 진정 살만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부영 기자는 '수목장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공동대표이자 열린우리당 전 당의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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