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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 지면의 여성 알몸광고 중 1/4 지면
두 개 지면의 여성 알몸광고 중 1/4 지면 ⓒ 박상건
두 개 지면에 걸친 여성 알몸광고 중 일부
두 개 지면에 걸친 여성 알몸광고 중 일부 ⓒ 박상건
그것은 두 지면을 장식한 전면광고 사진이었다. 영락없이 흰 돼지들이 기어가는 모양새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수많은 알몸 여성들이 구부린 채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광고였다. 그들 가운데 한 여성이 젖가슴을 살며시 가린 채로 앉아 있었다.

알몸 사진 가운데 광고카피는 "대한민국을 벗길 스타일이 온다! 하이○○○"라는 문구였다. 광고 우측 상단에는 그 스타일이라는 것이 '일본 10~20대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백화점 스타일이고, '자유롭고 지적인 아메리칸 스타일', '우아하고 고급스런 유럽 명품 샵' 컨셉트의 신개념 쇼핑몰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쇼핑몰 임대광고였다. 건물 임대광고에 여성 알몸이 등장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80년대 후반 한때 백화점 전단지에는 여성 알몸이 당연한 것처럼 등장하곤 했다. 딱딱한 건물과 여성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것일까? 여성고객들이 '얼짱'에 매료된다면 상품소비도 늘어난다고 보았던 것일까?

이런 광고는 호기심을 유발하기 위한 일종의 티저광고(teaser advertising)로 크리에이티브 차원에서 시도한 것이다. 특히 신문광고는 기록성 탓에 스쳐지나 소멸되는 방송광고와는 차이가 있다. 사회적 공기라는 무기에 힘입어 매스 커버러지(mass coverage) 효과까지 있어 광고효과의 탄력성이 장점이다.

그러나 그 어떤 광고도 설득력 없는 메시지는 그 효과가 반감된다. 부정적 이미지를 각인하기도 한다. 그래서 불매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나친 과잉기표는 아우라가 없을 뿐더러 심리적 저항까지 불러온다.

성적 소구 광고는 늘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문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왔다. 그로인해 회사의 인지도가 높아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신뢰도가 급락한다. 브랜드 가치는 신뢰도에 비례한 것이지 그저 널리 알려진다는 사실만으로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선정성이 강한 광고를 본 소비자는 윤리적으로 부정적 반응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광고에 대한 태도와 상품에 대한 태도 역시 비호의적이고 구매 의사도 부정적이었다. 또 이런 부정적 태도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기가 매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몸을 성적 도구로 삼는 광고 지나쳐

요즈음 섹시함에 호소하는 광고는 매체를 불문하고 등장하고 있다. '입술을 클로즈업한 섹시한 입 모양', '몸매가 드러나는 짧은 치마를 입고 떨어진 과자를 향하는', '그물 침대 밑에서 누워 자는 여자 모델의 가슴 위에 떨어진 과자를 집는', "감자가 잘 자라야 ○○○", "날 빨아들여" 등등.

이처럼 아이들이 먹는 과자와 우유 광고마저 보편적 광고 컨셉트로 활용하고 있다. 최근 2년간 식품광고의 40%는 여자모델을 사용, 여성을 성적 도구로 삼고 있다.

과잉기표를 너나없이 사용함으로써 청소년의 정서에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는지 뒤돌아보지 못하고 있다. 과잉기표란, 표현하고자 하는 것 이상의 말이나 행동을 말한다. 광고주가 소비자에게 짧은 시간과 지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면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상품을 과잉기표에만 의존할 경우 실제 상품과 광고 이미지 사이에 큰 간극이 생긴다. 그 간극이 커질 경우 사회적인 파장도 커진다. 그래서 이를 법으로 제한하기도 한다.

이번 알몸 광고를 낸 업체는 2003년 12월 31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수익성과 입지조건 등을 부풀리거나 허위로 광고한 업체 10개사 가운데 하나로 적발돼 시정명령 및 경고처분을 받은 바 있다. 또한 알몸 광고를 게재한 신문사는 2004년 1월 1일자에서 이 업체가 허위과장 광고로 적발된 사실을 보도한 바 있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광고에도 윤리가 있고 법제가 작동한다. 돈으로 지면을 살 수는 있지만 사람의 마음까지 다 살 수는 없다. 언론은 광고지면을 팔 수 있지만 광고도 정보인 탓에 정보 전달매체 미디어로서 보도의 윤리적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광고도 공익저널리즘 중의 하나인 것이다.

신문도 미성년자 구독 금지?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과잉기표가 난무하고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매스미디어를 통한 수많은 기표들이 난무하고 있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모르고 조어를 사용하고 세대 간에 의사소통마저 단절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런 과잉기표가 난무하는 세상에 그들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볼 일이다.

이제 신문도 '미성년자는 절대 구독금지' 혹은 '이 신문은 15세 이하 어린이는 읽을 수 없으니 보호자 독자 지도가 필요합니다'라는 심의 딱지를 붙여야 할 판인가? 도가 지나친 사회이기에 이런 기우마저 생기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광고제작에 있어 크리에이티브는 중요하다. 특히 광고제작사와 광고주는 이런 기표를 통해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마케팅 전략을 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광고정보와 유통은 '사회적' 의사소통의 소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이런 표현이 있다.

"지나치게 색깔을 즐기다 보면 결국 시각 장애를 일으킨다. 지나치게 음률을 추구하다 보면 청각 장애를 일으킨다. 지나치게 입맛을 즐기다 보면 미각을 상실하여 입맛을 잃는다."

의미 없는 구경거리의 의사소통 망에서 소비자는 진실보다는 신기루의 기호를 욕망하고 그런 허상에 사로잡혀 과잉현실에서 허우적댄다. 그렇게 사회적 범죄 특히, 청소년 범죄를 유발한다는 사실을 한번쯤 되새겨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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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언론학박사, 한국기자협회 자정운동특별추진위원장, <샘이깊은물> 편집부장,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잡지학회장, 국립등대박물관 운영위원을 지냈다. (사)섬문화연구소장, 동국대 겸임교수. 저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섬여행> <바다, 섬을 품다> <포구의 아침> <빈손으로 돌아와 웃다> <예비언론인을 위한 미디어글쓰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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