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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 앞에서 나무를 주워와서, 나무 칼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에요. 떳떳하지 않았는지 집 뒤안에서 하고 있는 모습들이지요. 어렸을 적에 나도 이렇게 했던 일들이 기억에 나요. 참 재미 있었죠.
공터 앞에서 나무를 주워와서, 나무 칼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 모습이에요. 떳떳하지 않았는지 집 뒤안에서 하고 있는 모습들이지요. 어렸을 적에 나도 이렇게 했던 일들이 기억에 나요. 참 재미 있었죠. ⓒ 권성권
나는 녀석들이 노는 모습에서 어렸을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모른 척하고 눈감아 주려고 했다. 나무토막 주인이 나타나서 내게 묻는다고 해도, 나는 누가 가져갔는지 모른다고 발뺌할 참이었다. 그리곤 녀석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잘 싸워보라고 눈짓을 보냈다. 이른바 그 나이 때에는 그렇게 재미나게 노는 게 좋다는, 격려의 눈짓이었다.

어렸을 적 시골에는, 겨울철만 되면 아이들은 동네 뒷산을 뛰어다녔다. 두 패로 나눠서 칼싸움을 하고 다녔기 때문이다. 동네 뒷산은 그리 작지 않았는데도 아이들이 한 번 휘젓고 다니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다. 소나무 가지를 비롯해 참나무 같은 것도 결코 남아나지를 않았다. 아이들이 그것들을 꺾어서 칼로 만들어 썼기 때문이다.

대부분 싸움은 아랫동네 녀석들과 윗동네 녀석들 사이에 벌어졌다. 키가 크고 등치가 큰 형들이 앞장을 섰고 나이 어른 동생들은 뒷줄에 섰다. 형들이 대장이 되고 동생들은 졸자가 되었다. 형들이 지시를 내리고 동생들은 형들의 틈 사이에서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피해 다녔다.

나무 칼을 들고 있는 녀석이 '세찬'이에요. 녀석이 아주 짱인 것 같아요. 한 명 한 명 불러 내려는 듯한 눈치잖아요? 어렸을 적 동네 형들도 이렇게 자기 힘을 과시하기도 했었죠.
나무 칼을 들고 있는 녀석이 '세찬'이에요. 녀석이 아주 짱인 것 같아요. 한 명 한 명 불러 내려는 듯한 눈치잖아요? 어렸을 적 동네 형들도 이렇게 자기 힘을 과시하기도 했었죠. ⓒ 권성권
칼싸움을 하다 보면 다칠 때가 많이 있었다. 머리에서 피가 나기도 하고, 손목을 다치기도 했다. 얼굴에 상처도 나고 다리도 절뚝거렸다. 싸울 때는 아무런 상처가 나지 않았던 녀석들도 집에 들어가서 보면 온 몸이 멍이 들어 있기도 했다. 집에서는 그맘때가 되면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두었다. 오히려 그렇게 칼싸움을 하고 크는 녀석들이 나중에 담력도 크고 남자답게 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는 여자 애들도 몇 명 끼어 있을 때도 있었다. 겁도 없는 아이들이었다. 하지만 칼싸움 때문에 끼어드는 여자 애들보다는 그저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더 재미있어서 기웃거리는 아이들이 많았다. 물론 그 당시 사내아이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싸웠다. 그 때문에 여자아이들은 잘못하여 다치는 경우도 많아, 싸움이 무르익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싸움이 한창 치열해도 끝이 나지 않을 때가 많았다. 쫓고 쫓기다 보면, 온 산을 헤집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윗동네에서 세 편으로, 아랫동네에서 세 편으로 팀을 이뤄 싸웠기 때문에 좀체 승부가 나지 않을 때가 많았던 것이다.

그때마다 하는 게 있다. 마지막 수단으로 하는 것이었는데, 윗동네와 아랫동네에서 대장 격으로 앞장 선 형들 두 명이서 싸우는 것이었다. 이른바 일대 일로 겨루기를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승부를 가리고, 이긴 형에 따라서 아랫동네와 윗동네의 체면은 세워지고 무너지기도 했다.

한 명씩 불러내 맞대결을 하려고 했다가, 이제는 두 명씩 나와서 한꺼번에 싸우는 모습이에요. 여기에서 최후 승자는 앞에 있는 키 작은 녀석이었어요. 칼싸움은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닌가 봐요. 아무튼 이 녀석들을 지켜보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 너무 좋았었죠.
한 명씩 불러내 맞대결을 하려고 했다가, 이제는 두 명씩 나와서 한꺼번에 싸우는 모습이에요. 여기에서 최후 승자는 앞에 있는 키 작은 녀석이었어요. 칼싸움은 힘으로만 하는 게 아닌가 봐요. 아무튼 이 녀석들을 지켜보면서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 너무 좋았었죠. ⓒ 권성권
하지만 칼싸움이 끝나고 날이 어둑해져서 산 아래로 내려갈 때면, 윗동네 아랫동네 할 것 없이 아이들은 모두 한 형제가 되었다. 그렇게도 심하게 싸우다가도 그 싸움이 끝나면 모두들 어깨동무를 하고 노을 빛 아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한참 동안 그것을 떠올리다, 담벼락 너머로 아이들을 보니 아이들 몇 명이 칼싸움을 하려고 대기하는 것 같았다. 마치 어렸을 적 마지막 싸움을 하는 것 같이 최후 대결자를 뽑는 것 같았다. 그런데 '세찬'이란 녀석이 '진수'란 녀석을 이미 칼로 베어 버린 상태였고, 그 다음에 누가 나와서 싸울 것인지 그 녀석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중에는 한 명 한 명 싸우기보다는 두 명씩 한꺼번에 싸우고, 거기에서 승자를 가리는 게 낫겠다고 이야기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거기에 모두 뜻을 모았는지, 이윽고 네 명이 한꺼번에 마당으로 나가서 싸우기 시작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칼싸움이었다. 옆집 마당에서 하는 아이들의 칼싸움이었지만, 어렸을 적 시골 동네에서 하는 칼싸움마냥 정말로 재미있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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