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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투자협정저지와 스크린쿼터지키기 영화인대책위는 1월 26일 오후 서울 남산 영화감독협회 시사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규탄했다.
한미투자협정저지와 스크린쿼터지키기 영화인대책위는 1월 26일 오후 서울 남산 영화감독협회 시사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을 규탄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장면 1

지난 1일 밤 9시께 영화계가 스크린쿼터 사수 밤샘농성을 시작한 서울 남산 영화감독협회 사무실. '국민배우' 안성기(55)씨와 한 기자 사이에 '보기 드문' 인터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 기자는 "○○단체가 영화계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비판했다"는 서두로 시작해 영화계를 비판하는 기자회견문과 자료를 조사 하나 빼지 않고, 박력 있게 낭독한 뒤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식으로 물었다.

안씨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질문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질문이라기보다 '일장연설'다운 인터뷰가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20여분이 지나자 동료 영화인 두 명이 나섰고, 인터뷰가 끝났다.

나는 그 난감한 상황에서 안씨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유심히 살폈다. 처음엔 대스타니 "좀 바쁘니 다음에 얘기합시다", "약속 있어 가봐야 합니다"며 자리를 피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안씨는 선 채 기자의 말을 하나하나 경청하고 친절하게 대답했다. 가끔 "그건 모르겠는데요", "글쎄요"라는 답변이 나오긴 했지만,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상대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 장면 2

지난해 7월 10일 미군기지 확장반대 평택집회에서 모 국회의원을 만났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진보정당 소속 의원이다. 단상에서 연설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그에게 말을 건냈다.

그런데 "(인터뷰) 좀 있다 하자"며 얼굴을 찌푸렸다. 지인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활짝 웃는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연설을 마치고 내려오는 그와 다시 인터뷰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주변이 시끄러우니 말 못하겠다는 시늉으로 답변을 대신 하고는 사라졌다.

그는 역시 '국민배우'였다

안성기 '스크린쿼터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4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항의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안성기 '스크린쿼터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이 4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항의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홍기
안성기씨는 스타 배우로서 여러 기자들을 대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1일 밤 저돌적인 그 기자의 질문을 경청한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

어떤 이는 "스크린쿼터가 절박한 위기에 처했으니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 그랬겠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실 따지고 보면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고 해서 안씨가 당장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니다.

연기력 있고, 성실하고, 무리한 출연료를 요구하지 않는 것(2000년까지 한국영화 제작여건을 감안해 '1억원 이하' 고수)으로 정평이 난 배우이니 금새 수입이 주는 타격을 받지도 않을 터. 게다가 20년 연기생활을 하면서 생활할 만큼 벌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영화를 위해 스크린쿼터 사수에 나섰다"는 그에겐 절박함이 묻어났다. 그는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가 밤샘농성을 시작한 지난 1일과 발족 기자회견을 연 2일, 몰려드는 취재진과 수많은 인터뷰를 했다.

1일 밤엔 한 방송사와 긴 인터뷰를 끝내고 다소 지친 기색이었는데도 <오마이뉴스> 인터뷰에 성심성의껏 응했다.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쑥스러운듯 "아까 했던 말이긴 한데"라며 말을 이어갔다.

2일 현장에서도 그는 어김없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가만히 엿듣자니 질문은 비슷했다. "스크린쿼터가 꼭 필요한 이유가 뭐냐", "이번엔 반대여론이 만만찮다" 등등. 똑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있을까. 그럼에도 그의 성실한 자세엔 변함이 없었다.

한랭전선이 서울을 급습한 4일. 안씨는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섰다.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릴레이 1인시위'의 첫 주자로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문화는 교역의 대상이 아니라 교류의 대상입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서 4시간 동안 계속 시위를 벌였다. 그는 취재진 질문에 일일이 답하며 스크린쿼터 지키기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안씨는 5일에도 나타났다. 후배인 박중훈씨가 1인시위 주자로 나서자 그를 독려하기 위해 광화문 거리로 나온 것. 안씨는 "(1인시위) 4시간 동안 지나가는 시민들이 많을 때는 괜찮지만, 없을 때는 외롭더라"며 박씨 곁을 지켰다.

그는 박씨의 1인시위가 끝날 때까지 있다가 같이 밥을 먹으러가겠다고 했다. 박중훈씨는 따뜻한 선배의 격려에 "나는 안성기 선배가 시켜서 1인시위에 참여했다, 20년 동안 시키는 대로만 산 것 같다"고 농담을 건넸다.

이번 영화계의 스크린쿼터 사수 투쟁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예전과 달리 좋지 않다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또 총대를 메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다. '국민배우'의 이름을 걸고 말이다.

그는 8년 동안이나 스크린쿼터 영화인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 활동했고, 이번에 새로 꾸려진 대책위에서도 공동위원장을 맡은 대표적인 '스크린쿼터 지킴이'다. 역시 '국민배우'는 인기나 연기력만 갖고 되는 게 아님은 분명하다.

전날 스크린쿽터 축소에 항의하며 1인시위를 벌였던 영화배우 안성기씨가 박중훈씨를 격려하고 있다.
전날 스크린쿽터 축소에 항의하며 1인시위를 벌였던 영화배우 안성기씨가 박중훈씨를 격려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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