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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히 무슨 무슨 날의 나라입니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빼로데이, 블랙데이 등등 국적 불명의 온갖 날들이 사람들의 부지런함을 재촉하지요. 누구는 얄팍한 상술의 부정적 의미 외에 더 무슨 가치 있느냐며 손사래 칠 터이고 누구는 그런 이유로라도 사람간의 정을 쌓는 기회도 되지 않는가 하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겠습니다.

이 무슨 무슨 날들은 개인적 호불호 여부를 떠나 다분히 사회 문화적인 가치를 따져볼 문제가 아닌가 하는데, 소시민의 역량으로는 도무지 감당의 범주가 아닌지라 에둘러 전하고자 하는 바를 위한 말 트기의 구실로만 여겨집니다.

이 많은 날들 중에서 나름으로 소중하게 여기는 날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내의 날'입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알게 된 이 '폼나는 날'은 저만의 '아내 사랑법'으로 의미있는 날입니다. 그리고 신문을 읽고 며칠 후 이런 말을 아내에게 전한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한 달에 한 번 떠나시라!" 월 중의 토, 일요일 가운데 일정이 맞는 하루를 '아내의 날'로 정하고 오롯이 아내를 위한 날로 보내겠다는 뜻을 전한 것입니다.

원래 말수가 적은 아내는 '기대 반, 그러려니 반'이라는 듯 읽어내기 힘든 표정으로 받아주었습니다. 그리 시작된 '아내의 날'은 처음엔 나로서도 부푼 꿈이었습니다. 아이들과 나만의 시간이란 것이 약간의 힘듦을 감수하면 재미도 쏠쏠할 듯하였거든요. 쑥스럽지만 아빠 노릇, 남편 노릇 제법 하는 남자라는 으쓱함도 기대하였습니다.

▲ 2006년 설날에 재한유엔기념공원에서 아내와 아이들~
ⓒ 오마이뉴스 박종욱
실제 아내에 대한 관심이, 말이나 마음에 그쳐 부부간에 상처가 되는 경우를 생각한다면 그 하루는 블루칩이 아닌가 합니다. 식사 준비하기, 설거지, 청소, 빨래, 다림질, 기저귀갈기, 아이들과 놀기, 공부 봐주기, 책 읽어주기 등 할 수 있는 또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을 함으로써 여자로서, 주부로서의 아내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아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여하간 전업주부인 아내, 이 상황이 별스러웠는지 딱히 정한 바 자기만의 시간이 되긴 처음부터는 어려웠던 듯 첫 '아내의 날'은 모녀의 날이 되어버렸습니다. 장모님과 찜질방 가고 영화보고 하는 일정을 잡았더군요.

2004년 9월의 첫 '아내의 날'이 파노라마 되어 스칩니다. 얼추 정한 바대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지만 부족한 경험과 지식을 메우기 위해서는 몇 푼의 추가 지출과 아이들의 인내심도 필요하였던 걸로 기억이 납니다.

아침 9시 장모님과 아내의 만남 이후 그날 저녁 7시까지의, 아이보기 별 이력 없는 아버지와 얌전한 축의 일곱 살 큰애와 고집불통 네살배기 막내의 10시간은 그야말로 한편의 리얼 휴먼 다큐멘터리였습니다.

▲ 2004년 9월의 <아내의 날>의 남자 둘 아이 셋의 추억~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같은 처지로 선배와 함께 했는데 아무래도 뒤로 보이는 엄마와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은 더 자연스럽죠?
ⓒ 오마이뉴스 박종욱
자신감도 지나쳐(저는 아직도 이를 아내에 대한 사랑이라 부득부득 우깁니다만) 나에게 주어진 아이들과의 이 시간을 아내여! 절대 간섭 마시라, 하며 오직 아내가 아내만을 위한 시간을 갖길 원하였더니 아이쿠! 대체 이 노릇을 어이 합니까? 아이들과 하루를 지낸다는 것. 그것은 애초에 의욕만으로는 턱도 없는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고도의 전문적인 분야임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게 죄라면 죄가 되어 버렸으니….

고생도 지나치니 이내 스트레스가 되더군요. 그나마 천행인 것은 자초한 일이고 사나이 눈곱만치의 옹색한 자존심은 남은지라 아내를 실망시키긴 싫었던 듯 익숙하고자 하는, 경험에 대한 의지가 더 강했던 것이네요.

수학능력시험 같았던 하루를 무난히(?)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 목욕시키고 잠시 여유를 찾는데 무심코 시선이 시계를 향합니다. 저녁 7시입니다. 이윽고 아내가 집으로 왔습니다. 화사한 얼굴로 돌아왔습니다. 일상을 기록하는 편이라 그날을 뒤져보니 이렇습니다.

▲ 2004년 9월의 <아내의 날>에 해운대에서 아이들과~
ⓒ 오마이뉴스 박종욱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않으려 애쓰다보니 눈이 아픕니다.
모래사장에서는 조심스러워 유정이를 안고 있었다 보니 팔도 아픕니다.
얼마나 걸었는지 다리도 아프지요.
이리 저리 제법 돈도 들었겠다 마음도 아픕니다.
매일 이리도 아플 아내는요?
조심스레 아내의 애씀을 읽어봅니다.

오늘 하루 아내에게 작은 기쁨이었길 못내 바래보고
그 기쁨 사이 사이 한시도 놓지 못하였을 아이들 걱정, 내 걱정
이 다음엔 그마저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경험에 의하면 아내의 날이 단지 아내를 위한 하루의 휴가라지만 저로서는 우리 가족에게 그 이상의 가치가 있음을 충분히 느낍니다. 해서 권해 봅니다. 한 달에 하루 아니면 분기에 하루라도 아내의 날을 정하여 아내에게 그 하루만이라도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 놓을 수 있는 여유, 선물해 보실 것을 말입니다.

단언하건대 살만하다는 것! 행복하다는 것! 이 소중한 의미를 '아내의 날'을 선물하는 남편이나 선물 받는 아내 모두 공감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2004년 9월의 첫 <아내의 날> 예상 일정과 결과
나름으로 알찬 준비... 실제로 훨씬 힘들어

▲ 사랑의 끈을 묶어 달리는 장애우와 자원봉사자들~

[예상일정]

할인 마트 들리기 → 아이들 간식거리 사고, 시간도 좀 보내고~
부산시립미술관 방문 → 아이들에게 새로운 세계 보여주려고~
해운대 바다 발 담그기 →제법인 더위야 물렀거라~
동백섬 시각 장애우 달리기 교실 봉사 → 아이들의 눈에도 자원봉사의 아름다움 느껴지겠지?

[결과]

할인 마트 들리기 → 간식에 더하여 큰 애 장난감 추가 구입으로 재정에 막대한 손실 발생
부산시립미술관 방문 → 아이들 눈에, 마음에 감성의 싹 돋았길...
해운대 바다 발 담그기 → 이럴 줄 알았으면 수영복 준비하는 건데... 수온도 높고 수영하기 딱!
동백섬 시각 장애우 달리기 교실 사진 봉사
→ 아이들 응원에 사뭇 화기애애한 가운데 내 안의 또 다른 나에 대한 찰나적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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