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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어린왕자 ⓒ 민은실
비단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만은 아닐 것이다. 연륜이 쌓이면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생겼다는 것. 즉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다. 작년(2005년) 이맘때쯤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의 김문생 감독을 만났을 때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인생이라는 것이 고되지만, 과거를 추억할 수 있어서 결코 밑지는 장사는 아니다"라고. 한때의 현재였던 과거의 특별한 기억들을 추억할 수 있어서 괜찮다는 것인가.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건 순수한 자아를 의미했던 것 같다. 오직 순수함으로 무장했을 때의 자아를 추억할 수 있는 기억이 있다면 행복하다는 것.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떠올리자마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가장 순수할 때 가장 열정적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계산이나 의도가 섞여 있지 않을 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알아버린 어른들이 의욕이 상실되고 삶이 무미건조해 지기 시작하는 것은 열정을 다할 만큼 신경 쓰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진 것과 동시에 열정이 바닥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어린왕자>를 읽다보면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의 순수함에서 비롯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모른다. 유난히 숫자를 좋아하는 얄궂은 별에서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이는' 소중한 것들을 찾아 나서는 어린왕자.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어딘가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지"라고 생각하는 그 순수함은 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제발 자신을 길들여 달라고 하는 여우에게 어린왕자는 답한다. "참을성이 있어야해. 처음에는 내게서 좀 떨어져 이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너를 흘끔흘끔 곁눈질 해 볼 거야.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다가 아무 간격 없이 붙어 앉게 되면 길들이기는 완성되는 것이다. 이 완성의 단계는 진정한 소통을 의미한다.

장미꽃에게도 어린왕자가 도착한 소행성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도 어린왕자는 소통하려한다. 그들을 이해하려고 하고, 대화하려고 하는 것. 그건 마음을 연다는 것을 의미하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뜻한다.

지구에서 만난 조종사와 헤어질 때 어린왕자는 말한다.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고 그 별들 중 하나에서 웃고 있을 거야. 그러면 모든 별들이 다 아저씨에게 웃고 있는 것 같을 거야. 아저씬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가지게 되는 거야."

어른을 위한 동화 <어린왕자>는 그래서 시적이고도 철학적이다. 영혼의 샘물이 순수하고 고결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가끔 세월의 휘몰아침에 마음이 복잡해 질 때면 어린 왕자를 읽으면서 정화해보는 것은 어떨까. 어린왕자가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그만의 것이 아니다. 순수함을 잃은 것도 아니다. 세상과 타협하면서 잠깐 고이 접어둔 순수함을 슬쩍 꺼내 볼 수 있는 따뜻한 시간이 될 것이다. 어린 왕자는 영원 속에 존재하는 등불과도 같다.

어린 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이정서 옮김, 새움(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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