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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백담계곡에선 초입부터 자꾸 걸음이 그 호흡을 멈춘다. 눈이 내리면 걸음의 호흡은 더더욱 자주 끊긴다. 눈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눈과 바위에 오직 흰색만으로 그 윤곽을 따라 채색을 시작하며 그러면 누구나 그 풍경 앞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 그 순간 걸음의 호흡은 멈추고 눈의 호흡이 시작된다.

ⓒ 김동원
그 여린 가지의 어디에 발붙일 자리가 있었던 것일까. 그렇지만 눈은 오늘 그 옹색한 자리를 마다않고 어느 가지 위에서나 빠짐없이 걸음을 멈춘다. 아마도 눈은 겨울나무의 그 앙상함이 안쓰러워 가지 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눈의 느낌이 포근하고 따뜻한 것은 그것의 겉모습이 솜털을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등을 부빌 자리도 없는 듯한 앙상한 삶을 스칠 때 그 앙상함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고 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마음이 가지 끝에 앉아 오늘 눈꽃으로 피었다.

ⓒ 김동원
하늘은 파란색, 구름은 흰색. 하늘은 바다를 지날 때면 제 색을 내려 보내 바다를 파랗게 물들이지만 오늘은 백담계곡을 지나며 구름을 내려 보내 산을 하얗게 물들였다.

ⓒ 김동원
백담사 스님들께서 산책 나온 길을 중간쯤에서 접어 다시 절로 향하신다. 길가의 바위와 나무들이 조용히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김동원
마음을 닦는 다리, 수심교의 건너편에 백담사가 있다. 마음을 깨끗이 닦으면 마음은 그때부터 어떤 채색의 풍경이 되는 것일까. 수심교의 건너편에서 백담사가 말없이 사람들을 맞고 있었다.

ⓒ 김동원
만해 한용운의 뒤로 붉은 열매가 가을에 거두었을 제 빛을 그대로 간직한 채 겨울을 나고 있었다. 한용운의 앞으로 세상이 흰 눈에 덮여 있었다. 붉은 열정으로 추운 겨울 세상을 하얗고 포근하게 덮어주고 싶었던 것이 그의 안타까운 꿈이 아니었을까. 오늘 그의 눈이 유난히 슬퍼보였다. 아직도 도닥이고 위로해 주어야할 춥고 배고픈 삶이 많기 때문이리라.

ⓒ 김동원
누군가 돌 하나에 소망을 담고, 사랑을 담고, 또 꿈을 담았다. 그 소망과 사랑, 그리고 꿈이 오늘 하얀 눈밭의 한가운데서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그 소망과 사랑, 그리고 꿈을 빌어주고 있었다.

ⓒ 김동원
2월의 눈 내린 백담계곡에서 듣는 물소리는 그냥 물소리가 아니라 봄이 오는 소리이다.

ⓒ 김동원
봄이나 여름이나 아니면 가을이나 나는 항상 이곳에서 가장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었다. 그 점은 겨울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들어갈 때 하늘은 잿빛이었다.

ⓒ 김동원
나올 때 하늘은 잿빛을 걷고 푸른 화폭에 흰구름을 펼쳐들었다. 나는 다시 이곳에서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었다.

덧붙이는 글 | 이런 눈풍경은 두세 시간 정도밖에 볼 수가 없어서 눈이 그치기 일보 직전에 강원도를 찾아야 한다. 바람과 햇볕 때문에 날려서 떨어지거나 녹기 때문에 사실 가장 아름다운 눈풍경을 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가 않다.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블로그-->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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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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