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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걷히지 않은 설경
어둠이 걷히지 않은 설경 ⓒ 성락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이지만 기온은 크게 내려가지 않았다. 넉가래를 들고 집을 나섰다. 녹으면서 쌓인 눈이라 빗자루로는 쓸어지지 않는 '찰눈'이다. 넉가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보지만 무게가 만만찮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무렵 완전히 날이 밝았다. 눈이 만들어 낸 한 폭의 동양화가 사방으로 펼쳐진다. 초겨울에 많은 눈이 내려 그리 낯설지는 않은 설경이지만 새벽안개가 눈 덮인 산허리를 감싼 모습은 묘한 신비스러움을 연출하고 있다.

설경
설경 ⓒ 성락
아직 폭설로 인한 비닐하우스 붕괴 등 피해상황은 보도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나무 가지가 힘겹게 눈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저기 안타까운 눈 피해 소식이 터져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고 보니 강원 내륙에 속하는 이곳은 이번 겨울 들어 비교적 눈이 적게 내렸었다. 남부지방의 폭설 피해가 연일 보도됐지만 이곳은 강추위만 기승을 부릴 뿐 눈은 번번이 피해갔다. 오랜 겨울가뭄 때문에 축사에 물이 모자라 큰 걱정을 하고 있던 터였다.

설경
설경 ⓒ 성락
사십여 년 간 이곳(강원 횡성 안흥)에서 모진 겨울을 살아오신 아버지에게 이 정도 눈은 대수가 아니다. 예정된 외출에 나서시는 아버지를 1킬로미터 남짓의 버스 정류장까지 모셔다 드렸다. 평소 같으면 쓸데없이 왜 차를 움직이느냐며 예의 빠른 발걸음을 내 닫으셨을 테지만 오늘은 마다치 않으신다.

"길이 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미끄러울 게다. 매사에 조심해야지…."
"예."

설경
설경 ⓒ 성락
'찰눈'이 자동차 타이어와 도로 사이에서 녹아 내리며 미끄러움이 핸들을 통해 전해온다. 내리막길이 이어져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사방 펼쳐진 설원풍경 때문에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다. 하룻밤 사이 자연이 만들어 낸 위대한 예술품이다.

설경
설경 ⓒ 성락
큰길에는 이미 모래가 듬뿍 뿌려졌지만 오가는 차들의 걸음은 조심스러워 보인다. 아니 끝도 없이 펼쳐진 거대한 예술작품을 감상하느라 일부러 걸음을 늦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설 연휴가 끝난 후에 많은 눈이 내렸음에 안도하는 편안함도 엿보인다.

설경
설경 ⓒ 성락
골짜기를 되돌아 오르며 눈앞에 목격한 장면은 더욱 장관이다. 나뭇가지 위에 쌓였던 눈이 떨어져 날리며 눈보라를 만들어 낸다. 작은 나무넝쿨에 눈이 덮이면서 눈 터널을 만들어 내고 앙상했던 풀씨 위에는 하얀 꽃이 만개했다. 그 새 눈 무게를 지탱하지 못한 소나무가지가 찢겨 길 위에 떨어져 있다.

눈 무게에 찢어진 소나무 가지
눈 무게에 찢어진 소나무 가지 ⓒ 성락
벌써 1월 마지막 날이다. 한차례 추위가 지나가고 나면 곧 봄이 시작될 것이다. 이번 눈은 겨우내 땅 속 깊이 얼어붙었던 풀뿌리들에게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리는 부드러운 속삭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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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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