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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설피해지역에 함께 출발한 인연들끼리 한해의 마무리를 하면서 소주를 마셨다.
ⓒ 김경건
짙은 군청색이 사방을 덮고 있을 무렵 자명종이 울렸다. 부스스한 머리를 정리하고 시간 확인을 해보니,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까맣게 칠해진 수첩을 쥐어 들고 폭설피해지역에 자원봉사를 함께 하기로 했던 사람들의 명단을 일일이 정리하고, 확인을 해보았다.

모두 정리하고, 합쳐보니 A4용지 3장분 량이 되었다. 이 사람들 모두 함께 간다면, 어디서 묵어야 하며, 어디서 식사를 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것이 바로 구성작업이었는데, 일일이 전화로 봉사 날짜와 봉사기간 별로 나누어 보는 것이었다.

일단 친형이 입원해있는 병원을 먼저 가서 아침 식사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 허둥지둥 세면을 하고, 옷가지 그리고 병원으로 가져가야할 물건들을 챙겨들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라디오를 켜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음악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날짜확인 해보니 노처녀들과 노총각들에게는 대.략.난.감! 한 200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유 없이 웃음이 나왔다. “벌써 크리스마스이브라니...” 시간이라는 것이 정말 빠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느꼈다. 형의 아침식사를 챙겨주곤 병원 앞 PC방으로 향했다. 인터넷에 올라있는 정보를 수정하고, 폭설피해지역 자원봉사지 선정하기 위해서 고창군 재해대책상황실로 연락을 했더니 자원봉사에 필요한 것과 장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일단 전북 고창지역에는 연고지도 없고, 아는 인맥도 없어, 일단 필요한 숙소에 대한 협의를 했다. 다른 봉사지역처럼 마을회관이나 체육관을 활용했음 했다. 그 후 본인이 가기로 한 곳이 선정된 곳이 있었는데, 전북 고창군 후포리라는 마을에서 숙소는 제공하기로 했다. 일단 몇 가지 문제는 해결되었고, 장비는 대형장비보다 휴대용 장비(제설용 삽, 방수가 잘되는 털 장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자원봉사자가 개별적으로 준비하기로 했고, 내용을 인터넷에 올리고 참가자분들께 통보를 해드렸다.

그리고 너무 많은 인원이 한 숙소를 사용 할 수 없었던 관계로 단체참여인원들은 별도로 전북재해대책상황실과 연결을 해서 인원을 타 지역으로 배정하기로 했다. 12월 24일까지의 참가 단체는 총8팀 정도였고, 개별 참가자 분들은 별도로 조를 구성해서 시간과 날짜 그리고 만나는 장소를 선정해서 개별 연락망을 구성해야만 했다.

최초 1팀의 경우는 2박 3일 계획으로 12월 24일 오후에 출발을 하기로 했고, 다른 팀은 24일 저녁 예배가 끝나면 출발을 하기로 했다. 개별로 구성된 팀의 경우는 자동차 동호회 분들께서 맡아주셨다.

2005년 12월 24일 하루일과는 자원봉사자 분들과 연락을 하고 재해대책상황실과의 연결 등으로 하루를 마감해야만 했다. 늦은 시간, 준비된 팀을 출발시키고 정리 명확히 언제 출발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을 구성해서 본인과 함께 출발을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하루 12월 26일이 좋을 듯싶었다. 그래서 몇몇 분들과 가까운 지인께 전화를 드리고 계획한데로 출발 날짜를 잡기로 했다.

25일 또한 전화를 붙잡고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늦은 밤까지 인터넷 곳곳에 폭설피해지역 자원봉사참여희망자들을 모집하기 위한 글을 올리고, 12월 26일 새벽 3시가 되서야 잠자리에 들어갈 수가 있었다.

2005년 12월 26일 새벽 5시 30분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가 울렸다. 늘 같은 일상처럼 병원에 들러 형의 아침을 챙겨주곤 서울 용산역으로 향했다. KTX를 타기 위해서 또, 자원봉사자들과 만나기로 한 곳이 용산역이었기 때문에, 다른 참가자 분들보단 일찍 도착해서 참여자 분들을 기다리기로 했다. KTX 역사에 들어서니.. 아직까지 와보지 못했던 KTX역사가 그렇게 웅장하리라 생각을 못했다.

개인 승용차를 몰고 다니다 보니, 기존의 철도 역사나, 버스은행 노선을 전혀 알 수가 없었기도 했지만, 역시 사람은 다양한 문화를 겪어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KTX 역사에 들어서서 커피 한잔을 뽑아 들고 역사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다녔다.

장애우를 위한 시설, 그리고 화장실 등.. 역시 우리나라가 발전은 많이 했다 생각 들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편의 시설들이 들어 차있는 광경을 보고 타인을 배려하는 문화가 벌써 우리사회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았다.

첫 번째로 도착한 사람은 양모씨였다. 행동하는 양심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고, 언더그라운드 가수이기도 했다. 물론 나중에 알긴 했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 가장 반가운 사람 중 한사람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도착한 사람들은 서울대의예과에서 학업에 열중인 친구들이었는데, 첫인상만큼이나 마음씨도 고운 사람들이었다. 당일 같이 출발하기로 한 사람들 중 4명이 펑크를 냈고, 그 분들은 개별 승용차를 가지고 오실 지인께 연락번호를 넘겨드리고서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우리나라가 자원봉사자들이 많다는 것에 놀란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참가 인원을 따진다면, 아마 상상도 못하실 만큼이고요. 우리사회의 구성원 분들께서 따듯한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아주 강하게 느낀 2005년 한해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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