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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불황으로 인해 50대들의 가정이 가족해체 위기를 겪으면서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설명절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친지들이 다함께 모여 설날 아침이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새배를 드리는 모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문화일보DB
경기불황으로 인해 50대들의 가정이 가족해체 위기를 겪으면서 과거와는 다른 모습의 설명절로 급격히 변하고 있다. 친지들이 다함께 모여 설날 아침이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새배를 드리는 모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문화일보DB ⓒ 우먼타임스
[이재은 기자] “설이요? 특별한 거 없어요. 아이들하고 집에서 먹을 것 좀 만들어서 먹고… 설 특집 TV 프로그램이나 보면 그걸로 끝이에요.”

김호연(54·서울 여의도)씨의 명절은 단조롭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두 딸과 동갑내기 남편이 있긴 하지만 언젠가부터 특별히 할 일 없는 명절을 맞이하고 있다. 허리가 휘어지게 일해야 할 생각에 명절 일주일 전부터 몸살이 났던 명절증후군도 더 이상 앓지 않는다. 시댁에서 설을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처럼 명절 가사노동에 더 이상 시달리지 않는 50대 여성들이 늘고 있다.

“남편이 명예퇴직 후 몇 년 간 집에서 놀면서 부부 사이가 급격히 나빠졌어요. 50대 재취업은 하늘의 별따기라며 퇴직을 영원한 실업으로 받아들이는 남편 모습에 많은 실망을 했어요. 수입 단절에서 오는 경제적인 문제들도 부부 갈등을 악화시켰죠.”

김씨는 남편의 퇴직과 함께 찾아온 부부관계 악화와 경제적 문제로 명절맞이에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김씨처럼 명예퇴직, 실업, 가족 해체, 이혼 및 별거 부부 확산 등의 문제로 과거와는 다른 설을 맞이하는 50대 중년층이 적지 않다. 더 이상 온전한(?) 가족을 꾸리지 못하는 중년층이 증가함에 따라 시댁과 친정식구들을 찾아뵙고 새해인사를 나누던 과거의 명절 모습도 사라지고 있는 것. 이들은 가정이 해체 위기에 있는데 명절을 제대로 즐길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

별거 중에 있는 박모(55·경기도 분당)씨도 특별하지 않은 설을 맞이할 계획이다.

몇년 전 남편의 외도로 별거 중인 박씨는 설날 아침 아직 미혼인 아들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에 새배 오는 것 이외에 설 명절의 분위기가 날만한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들 때문에 아직 이혼을 하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이혼 상태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명절이 돼도 시댁을 방문할 일은 없어요. 남편이 아들만 데리고 차례를 지내러 잠깐 시댁을 방문하는 걸로 명절 인사는 끝이 나죠.”

박씨는 명절이면 괜히 우울해지기 때문에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웃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찜질방에 가서 실컷 수다를 떨곤 한다고 덧붙였다.

남편의 사업부도로 지난 2003년 전셋집으로 이사를 한 김광희(55·부산 동래구)씨도 아직 결혼 전인 두 딸과 조촐한 설을 보낼 예정이다. 사업이 기울면서 친척들과의 사이도 소원해졌고, 남편과도 사이가 악화돼 명절이라 할지라도 별다른 왕래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 김씨는 “형편이 어려워진 후부터는 설이라고 해도 친정 부모님께만 설 인사 전화만 하고 있다”며 “남편과 사이가 소원해진 뒤부터는 시댁식구들 보기가 불편해져 아예 시댁에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족전문 상담가들은 50대들은 제1차 베이비붐 세대로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용성을 강조하는 30대와 달리 주변의 눈치를 보며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에 가족해체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 가장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즉 겉모습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 정상 가족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별거, 가정 붕괴 위기 등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홍숙 가족경영연구소 연구원은 “50대 부부들의 경우, 폐경기와 맞물리면서 희생적, 순종적 아내상에서 탈피해 사회활동을 펼치기를 원하는 여성들이 증가하는 반면 남성들은 퇴직 후 가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는 모습을 나타내기 때문에 갈등을 빚는 사례가 많다”며 “또한 이들 세대는 가정해체를 경험하더라도 참고 인내하는 경향이 강해, 부부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전문기관에 상담을 의뢰하는 특징도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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