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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상식론> 겉그림
<우리 시대의 상식론> 겉그림 ⓒ 랜덤하우스중앙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 중요성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백번 강조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요즘 누가 그 문제에 신경을 쓸 수 있을까? 천민자본주의라고 불리는 것이 지배하는, 바쁘고 바빠서 자신의 하루를 감당하기에 버거운 시대에 누가 그런 걸 신경 쓰고 살 생각을 할까? 백번 강조해봤자 백번 공허한 소리가 될 것이 뻔히 보이는 것을.

그러나 박호성은 <우리 시대의 상식론>에서 이 문제를 한 번 더 언급하려 한다. 아니, 한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이라도 더 말하겠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그렇다. 남들이 괜한 짓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박호성은 인간,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 할 것인지 말한다.

그렇다면 박호성은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을까?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은 박호성의 말마따나 '허드렛 벗'들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무슨 뜻일까? TV는 언제나 유명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을 보여주기 바쁘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 박호성이 즐겨본다는 '전국노래자랑'은 예외다. 이 방송에서만큼은 미용실누나, 백수총각, 농부아저씨, 구멍가게아줌마 누구든지 출연해서 주인공이 된다.

이 글도 '전국노래자랑'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식자층은 물론이고 살 여유가 있어 여러 정보를 여유 있게 섭취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라 허드렛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글인 것인데 이것은 의도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글의 표현이나 내용 수위에서도 실제로 적용되고 있다. 통일문제나 사회문제 등에 관한 글들 하나하나가 문제의 주인공이 평범한 사람들 모두가 될 것임을 알려주며 '누구나' 읽고 생각할 수 있게끔 꾸며진 것이다.

그럼 <우리 시대의 상식론>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책은 처음 '한국인의 생활철학'이라는 챕터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한다. 진단 결과 무엇이 나올까? 첫 번째는 대화와 토론을 앞지르는 '큰 목소리'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목소리 큰 사람이 장땡!'이라는 시장 말과 일맥상통하는데 굳이 뜻풀이를 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주 볼 수 있고, 자주 겪을 수 있는 장면이니 말이다. 뒤이어 나오는 진단들도 쉽게 이해하기는 매한가지다. 과거를 쉽게 잊어버리는 것이나 일망타진과 속전속결 정신, '간추린 전과' 정신이 팽배한 교육 이념 등이 있다.

이것들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친숙한, 말 그대로 한국인의 생활철학이다. 비판하던 정치인을 다시 뽑아놓고 후회하더니 다음 선거에서 또 뽑아주고, 교육이라는 것은 요점만 외워서 시험 잘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물건 계산할 때나 음식 기다릴 때나 "빨리! 빨리!"를 외치는 건 결코 낯선 장면이 아니다.

이러한 생활철학만 그러할까? 북한과 통일하자고 말하지만 북한은 본래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기이한 생각은 어떤가? 박호성은 묻는다. 이렇게 해서 진정 통일할 수 있겠는지 하고. 통일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떠올리게 하는 법은 어떤가?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격차는 어떨까? 결코 '좋다'고 말하기도, 어제에 비해서 '좋아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더욱이 이런 현상이 가능하도록 사람들이 놔두고 있다는 것, 혹은 체념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한다.

혹자는 이 대목에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 "어제 오늘 일이냐?"하는 자조적인 반응도 보일 수 있다. 이에 대해 박호성은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 시대의 상식론>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자고 말한다. 즉, 오래된 문제라고 체념하지 말고 직면하자는 것이다. 귀찮더라도, 불편하더라도, 힘들더라도 해보자는 주문을 던지는 것이다.

박호성은 새로운 휴머니즘을 언급한다. 신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을 위한 것에서 휴머니즘이 나왔다면 새로운 휴머니즘은 오늘날 이 사회로부터 해방된 인간을 위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철학적인 배경으로 자연주의, 문화주의, 공동체주의의 필요성을 지적한다. 또한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복지국가 체제를 말한다. 이것들로부터 한국 땅의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이쯤 되면 냉소적이거나 자조적인 반응은 더 생길 수 있다. 박호성의 말이 '이상주의'적이거나 '몽상가'의 소리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응을 바꿔보자. 그럼 이대로 살아가자는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보자. 실상 <우리 시대의 상식론>의 진가는 드러나는 부분도 그것인데 체념하지 말고 일어나 보자는 의지를 주는 것, 바로 그것이다.

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한다는 <우리 시대의 상식론>, 순진한 소리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간절한 소리라는 생각 또한 지울 수 없다. 아니, 곰곰이 생각할수록 후자의 소리가 더 강하게 묻어있다. 이유가 뭘까? 공허한 외침이 될지언정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전달될 것이라는 믿음이 보이기 때문인가? 박호성의 말마따나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인가?

<우리 시대의 상식론>은 복병이다. 이 바쁜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한국 땅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도 떠올리게 하니 강력한 복병이 아닐 수 없다. 피해야 하는가? 아니면 맞이해야 하는가? 지금 이 세상에 만족한다면 우회해도 좋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맞이하자. 해방된 인간, 아니 해방된 한국인이 될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도서정보 사이트 '리더스가이드(http://www.readersguide.co.kr)'에도 실렸습니다.


우리시대의 상식론 - 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하여

박호성 지음, 랜덤하우스코리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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