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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제주도 성읍민속마을에 핀 동백꽃입니다.
한겨울 제주도 성읍민속마을에 핀 동백꽃입니다. ⓒ 서종규
동백꽃은 사람들 마음의 고향이다. 동백꽃에 어려 있는 향수에 빠지면 다소곳이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누나의 모습이 보인다. 참빗으로 곱게 빗은 머리에 동백기름 바르는 누나는 동백꽃이 되어 거울 속에 들어가 곱디곱게 앉아 있다.

시인들이나 소설가들이 가장 많이 젖어드는 꽃이 동백꽃이다. 늘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머릿속에 살아나는 대상이 되고,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나는 언어가 된다. 그 붉은 꽃잎도 시가 되고, 꽃잎이 떨어지는 것조차 언어가 된다. 시린 겨울에 피어나는 것도 시가 된다.

동백나무의 특징은 많다. 사철 푸른 것이 그것이요, 겨울에 꽃이 피는 것이 그것이다. 꽃이 가지 끝에 한 개씩 달리고 붉게 피는 것이 그것이요, 꽃잎이 5~7개가 밑에서 합쳐져서 비스듬히 퍼져 피다가 떨어질 때 함께 떨어진다. 붉은 꽃잎 속에 노란 암술과 수술이 있어 동박새가 꿀을 찾는 것이 그것이다. 즉 새가 꽃가루를 수분하는 꽃이다.

꽃망울 속엔 아름다운 생명이 잉태되어 있어요.
꽃망울 속엔 아름다운 생명이 잉태되어 있어요. ⓒ 서종규
특히 문인들이 늘 아쉬워하는 것은 한 송이의 꽃이 뚝 떨어지는 것이다. 즉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꽃 채로 뚝 떨어지는 것이다. 고재종 시인은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라고 꽃잎 떨어지는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그렇게 지는 꽃잎이기에 많은 시인들과 문인들의 글에 아쉬움과 그리움이 가득 묻어 나는 것이다.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 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않겠다는 너인가
그리하여 동박새는
동박새 소리로 울어대고
그러나 어리석게도 애진 마음을
바람으로든 은물결로든
그예 씻어 보겠다는 나인가
- 고재종의 시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중에서


미천굴에 핀 화려한 동백꽃입니다.
미천굴에 핀 화려한 동백꽃입니다. ⓒ 서종규
제주도에는 한 겨울에 동백꽃이 만발해 있다. 만발이란 말을 써도 무방하다. 제주공항에서 빠져 나오는 길목에서부터 붉은 동백꽃이 길가에 도열해서 환영하고 있다. 지난 1월 15일 오후에 제주도 성산읍에 있는 미천굴에 찾아갔다.

미천굴은 제1굴의 길이가 398m 이고, 제2굴은 약 1320m이다. 굴엔 종유석, 석순, 연못, 다층굴, 용암계단 등이 분포하는 화산 동굴로서는 다양한 형태를 갖고 있다. 현재 공개되고 있는 구간은 365m이다.

'원초적인 암흑의 지하 공간은 인간으로서의 정신적인 원점에서 인간의 본질과 미래에 대해서 사색하고 추상하는 창조의 공간이라 자부합니다'라는 안내와는 달리 굴 안엔 조명등이 설치되어 있어서 주변을 잘 관찰할 수가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굴속에서 자라고 있는 이끼류와 고사리류의 식물들이었다. 작은 고사리잎들이 푸른 빛을 띄고 있었다.

미천굴에 동백꽃 여러 송이가 어우러져 있으니 더 화려하지요.
미천굴에 동백꽃 여러 송이가 어우러져 있으니 더 화려하지요. ⓒ 서종규
미천굴 관광지구를 일출랜드라고 부르고 있다. 동백, 철쭉, 팽나무, 소나무, 담팔수, 후박나무 등 제주 토종 수목과 울창한 야자수를 심어 놓고 산책길을 만들어 놓아 어느 곳에서든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30만 그루가 넘는 나무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단다.

산책길에 붉게 피어 있는 꽃이 눈에 띄었다. 바로 동백꽃이었다. 겨울철에 볼 수 있는 꽃이 거의 없는데 붉게 만발한 꽃이 당연히 눈에 띄었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보았다. 가지 끝마다 한 송이 씩 나온다는 동백이 나무 가득 피어 있지 않은가?

제주도엔 한겨울에 이렇게 많은 동백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어요.
제주도엔 한겨울에 이렇게 많은 동백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어요. ⓒ 서종규
더구나 동백꽃이 만발한 나무 밑엔 많은 꽃잎들이 떨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꽃이 통째로 모감모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꽃잎이 떨어져 흩어져 있었다. 분명 동백꽃잎이 붉게 땅에 흩어져 있었다. 꽃이 통째로 떨어져 있는 경우는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나무 가득 피는 동백꽃, 그 꽃은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꽃이 아니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있는 꽃은 꽃잎이 단아하게 둘러 있고, 안엔 노란 꽃술들이 있는 꽃이다. 그런데 이 꽃은 꽃잎이 겹겹이 포개져 피어 있었다. 화려한 동백꽃을 보려고 나무를 개량한 꽃이었다.

미천굴에 이렇게 많은 동백나무들이 심어져 있었어요.
미천굴에 이렇게 많은 동백나무들이 심어져 있었어요. ⓒ 서종규
그래, 그랬던 것이다. 도심의 아파트 주변이나 정원에 동백꽃이 오랫동안 피어 있는 것이 생각났다. 분홍동백꽃도 있고, 하얀 동백꽃도 있었다. 모두 꽃잎이 겹겹이 포개져 있었다. 꽃이 떨어지는 것도 누렇게 바랜 뒤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미천굴에 핀 동백꽃은 꽃이 통째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꽃잎 하나 하나씩 떨어져 있네요.
미천굴에 핀 동백꽃은 꽃이 통째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꽃잎 하나 하나씩 떨어져 있네요. ⓒ 서종규
미천굴에서 나와 제주도 성읍민속마을로 갔다. 제주도 옛 민가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유형, 무형의 많은 문화유산이 집단적으로 분포되어 있고, 옛 마을 형태의 민속경관이 잘 유지되어 민속마을로 지정, 보호하고 있는 마을이다.

제주도 성읍민속마을에 도착하자 안내원이 우리를 맞았다. 이 마을 출신으로 10년 동안 안내를 맡아야 한다고 했다. 그 대신 무료로 자랐고, 학업도 마을에서 지원하여 마쳤다고 했다. 말똥을 바른 벽이 아궁이의 불을 흡수하여 따뜻하다고 했다.

성읍민속마을에서 만난 동백꽃입니다. 위 꽃과는 조금 다르죠?
성읍민속마을에서 만난 동백꽃입니다. 위 꽃과는 조금 다르죠? ⓒ 서종규
안내원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동안에 옆에 핀 동백꽃을 보았다. 별로 화려하지 않았다. 동백나무엔 꽃도 몇 송이 피어있지도 않았다. 나무도 여러 그루가 심어져 있지도 않았다. 군데 군데 한두 그루 나무가 표나지 않게 서 있었다. 그런데 그냥 기억 속에 피어 있는 그 꽃이었다.

너무 반가웠다. 바닥엔 아직 모감모감 통째로 떨어진 꽃도 없었다. 다가가 카메라를 들이댔다. 수줍은 듯 렌즈를 자꾸 피하는 것 같았다. 고재종 시인이 노래한 백련사의 동백이나 김용택이 노래한 선운사 동백과 같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그 붉음을 전해 주었던 바로 그 동백이었다.

성읍민속마을에서 만난 동백나무엔 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성읍민속마을에서 만난 동백나무엔 꽃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 서종규
안내원에게 핀잔까지 들어가면서도 동백나무 주위를 맴돌았다. 어쩌다가 핀 한 송이의 꽃을 계속하여 바라보았다. 꽃잎이 겹겹이 포개져 피어 있던 꽃에 비하여 그리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속에 깊음이 있었다. 계속하여 내 마음이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꽃잎의 붉음도 어찌 그리 따뜻한지, 깨끗한 느낌의 단아함이 드러났다. 붉은 꽃잎이 에워싸고 있는 꽃술은 더욱 노랗게 떨렸다. 동박새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 꽃은 그렇게 피어 있었다. 관광버스가 출발한다고 경음기를 몇 번이나 눌러댈 때까지 그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려함보다는 꽃이 통째로 모감모감 떨어지는 동백꽃이 더 그리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화려함보다는 꽃이 통째로 모감모감 떨어지는 동백꽃이 더 그리운 이유가 무엇일까요? ⓒ 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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