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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네빌, 디 에이트 1권 표지
캐서린 네빌, 디 에이트 1권 표지 ⓒ 자음과모음
<다빈치 코드>열풍을 타고 각종 역사 추리소설들이 붐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역사 추리소설이면서 체스 소설인 <디 에이트>가 재출간되었다. 이미 오래전에 한 번 출간되어 추리소설 애독자들 사이에서 간간히 회자되었던 책으로 '다빈치 코드'류의 책을 따라다녔던 독자들이라면 서평이나 각종 책 정보에서 그 이름을 한 번 정도 들어보았을 유명작품이다. 체스와 역사, 연금술, 고도의 심리전 등 많은 코드들이 한꺼번에 들어있는 역사 추리소설의 진수라 일컬어지는 소설.

소설엔 두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 많은 역사적 굴곡을 겪으며 몽글란 체스의 행방을 좇는데 일생을 보내게 되는 수녀출신 미레유와 전문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써 알제리에 OPEC자문요원으로 참가하게 되는 현대인 캐서린. 평범한 삶을 사는 듯하던 이들의 일상에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힘'을 가졌다는 몽글란 체스가 등장한다. 그리고 이 체스의 행방을 쫓아가던 이들이 만나게 되는 것은 인류의 거대한 역사이다. 먼 옛날의 샤를마뉴 대제부터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 나폴레옹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많은 이들이 몽글란 체스를 차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미레유와 캐서린은 그 역사적 소용돌이에 자신도 모르게 휩싸여 들어가게 된다.

...어디로 사라진 거지? 정원에서 나갈 곳은 들어온 곳을 제외하곤 없었다. 나는 천천히 뒤로 돌아 다시 광장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랐다. 할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나는 검은 형상 하나가 UN회관의 일반인출입용 입구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 문 옆의 자전거 보관대에는 그 남자의 자전거가 묶여 있었다. 어떻게 나를 지나쳐 거기까지 갔지? 나는 서둘러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회관의 로비는 안내 데스크의 젊은 안내원과 잡담하며 서 있는 경비원 한명을 제외하고는 텅 비어 있었다...

캐서린이 사라진 미스터리의 남자의 증발을 깨닫고 아연해하는 순간이다. 소설 전반에 걸쳐 이렇게 묘한 수수께끼 같은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 장면은 결국 후속으로 이어지는 다른 장면에서 개연성 있게 연결되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스스로 보여준다. 연결의 정확성과 교묘함으로 인해 책은 체스 소설이 가지게 되는 난해하고 수학적인 냄새를 더욱 진하게 풍긴다. 독자는 마치 복잡한 미적분을 풀어가는 것처럼 머리 아픈 게임에 본격적으로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책은 그다지 쉽게 읽히는 편이 아니다. 일단 '체스'라는 게임의 룰에 기반 해 소설의 뼈대가 구성되어져 있기 때문에 체스게임의 기본 규칙조차 모르는 사람은 이해하기 거의 불가능하다. 체스뿐만 아니라 갖가지 종류의 역사적 암시, 종교와 연금술에 얽힌 다양한 단서들, 그리고 상이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묘한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체스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보기에도 그렇게 만만한 책은 아니다. 작가가 역사와 현대정치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스토리 구성능력이 그다지 탄탄한 편도 아니다. 분량도 적지 않아 두 권을 꽉 채운다. 중간에 손을 놓아버리게 하는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는 셈이다.

생소한 체스 용어들을 따라 겨우겨우 스토리를 쫓아가면서도 읽게 만드는 강력한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깜짝 출현이다. 작가는 정말로 작품 곳곳에 많은 역사적 인물들을 배치했다. 책을 포기할 만 하면 대화 상대의 정체가 장자크 루소라고 밝혀지고, 또 포기할 만 하면 주인공과 얘기를 나누는 키 작고 볼품없는 남자의 성이 보나파르트임이 밝혀진다.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각종 인물들의 다양한 인간적인 면면도 이 책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등장인물들의 성격도 그다지 성공적으로 형상화되어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나마 현대인 주인공인 캐서린의 성격이 비교적 입체적인 편인데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 왜 그녀의 성격이 비교적 생생한지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작가인 캐서린 네빌은 수년 동안 에너지 분야의 국제적인 컨설턴트로 활동했던, 주인공과 동일한 직업을 가졌던 사람인 것이다.

책에 대한 기존 애독자들의 평도 다양하다. 역사추리소설의 원조이자 진수라는 평에서부터, 엉망인 구성과 빈약한 등장인물의 캐릭터 설정이라는 평까지. 이만큼 상반된 평가가 공존하는 책도 드물 것이다. 아마도 책을 읽는 독자들의 배경지식의 차이, 또는 소설로서의 짜임새에 대한 가치관 차이 등이 이렇게 상반된 평을 불러오는 것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참고영화: <나이트 무브>, <위대한 승부>


디 에이트 1

캐서린 네빌 지음, 조윤숙 옮김, 자음과모음(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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