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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자녀와 함께 중국, 티베트 등 오지에서 '체험여행'을 즐기는 울산 북구 최해동·강문심씨 가족.
해마다 자녀와 함께 중국, 티베트 등 오지에서 '체험여행'을 즐기는 울산 북구 최해동·강문심씨 가족. ⓒ 김정숙
"올해는 꼭 떠나자."

빡빡한 일상에 짓눌려 이 말을 늘 되뇌이면서도 일 년에 한 번 선뜻 여행길에 나서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일상에서 과감히 벗어나 해마다 연초면 가장 먼저 여행계획부터 세우고 어린 자녀들과 함께 티베트와 시베리아 등 오지여행을 떠나는 가족이 있다.

울산 북구 양정동에 사는 최해동(45)·강문심(40)씨 부부는 딸 희주(10)와 아들 상훈(8)이 각각 여섯 살과 네 살이던 지난 2000년 처음으로 가족 전체 여행을 감행했다.

'여행광'인 최씨는 두 아이가 함께 여행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젊어서부터 혼자서는 우리나라 곳곳과 해외여행을 다녔지만 자신이 가봤던 아름다운 곳들을 아내와 아이들 모두 동행하겠다는 것이 최씨의 오랜 꿈이었고 드디어 그 꿈에 한발짝 다가선 순간이었다.

몽골에 들렀던 중 전통 가옥 '게르' 앞에서 찍은 사진.
몽골에 들렀던 중 전통 가옥 '게르' 앞에서 찍은 사진. ⓒ 김정숙
처음 함께 간 나라는 중국. 톈진(천진), 베이징(북경) 등 다양한 곳을 20일 넘게 함께 다녔다. 최씨 부부는 미래의 큰 잠재력을 갖고 있고 광활한 땅에서 경험할 것이 많다는 생각에 중국을 택했다.

또 관광하기 편하고 좋은 나라를 가는 것보다 몸으로 직접 '불편'을 겪으며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여행도 제 힘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 견문을 넓히는 데 여행보다 좋은 게 없거든요. 해외에서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접하며 세계적인 분위기에 익숙하고 국제무대에서 주눅들지 않는 당당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었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해마다 한 번 혹은 두 번 가족 모두 20일에서 한 달씩 해외여행을 다녔다.

중국 여러 도시를 다니기도 했지만 산시성(산서성), 네이멍구(내몽고), 간쑤성(감숙성), 칭하이성(청해성) 등 중국 내에서도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을 많이 다녔다. 티베트도 몇 번이나 다녀왔고 실크로드도 엿봤다.

지난해 5월에는 가족 모두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랐다.

몽골에서 낙타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
몽골에서 낙타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 ⓒ 김정숙
부산에서 배로 출발해 베이징에 가서 모스크바까지 8박 9일을 달리는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서 보는 바깥 모습이 나날이 달라졌다. 기차가 베이징에서 하얼빈을 지나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등의 도시를 거치면서 동양의 차분한 풍경이 서양의 거친 땅으로 바뀌는 것도 느꼈다.

이들이 이런 경로를 선택한 것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여행 과정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에 당도해서 내처 유럽까지 가고 싶었지만 유럽은 이미 다녀왔기 때문에 욕심을 접었다.

모스크바에서 다시 몽골로 넘어와 고비사막도 들르고 백두산에도 함께 올랐다. 아이들도 벌써 백두산을 몇 번이나 올라봤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타고 여행하려면 인내심을 길러야 합니다. 성질 급한 사람은 엄두를 못 내지요. 기다리는 여유를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그러다 보면 삶 자체를 여유있게 바라보게 되죠. 무엇보다 그 긴 시간을 가족과 함께 대화하며 보낼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2003년에는 가족 모두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다. 영국,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이탈리아 등 주요 국가는 섭렵했다. 편하게 다니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잠은 주로 밤기차에서 해결하거나 새벽기차를 기다리며 역에서 '노숙'도 서슴지 않았다.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 하우스' 같은 데서 자는 게 가장 편한 잠자리였을까.

아무리 초등학생이라도 여행을 위해 20여일 넘게 결석하기란 쉽지 않다. 공부가 뒤처질까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지난 해 5월 탔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찍은 기념 사진.
지난 해 5월 탔던 시베리아 횡단열차 안에서 찍은 기념 사진. ⓒ 김정숙
"그 순간엔 뒤처질 순 있겠지만 여행을 통해 배우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고 생각하죠. 자식에게 10년, 20년 후에 물질적인 것을 지원하고 물려주는 것보다 체험을 통해 얻은 것이 더 큰 재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씨 부부의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현지에서 외국어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아이들이 굳이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외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나선다는 것이다. 중국 여행을 많이 다닌 아이들은 3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고 이제 둘이서는 제법 유창하게 중국어로 떠들어댄다.

아무리 아낀다 해도 외국여행 경비도 적잖게 들 테다. 남보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남편 최씨는 여행경비조로 작은 적금도 들고 개인 용돈도 아낀다. 가족들 모두가 작은 것에서 아끼는 것이 몸에 배있다.

남들이 돈 모아서 집 사는데 보태고 살림 늘리는 데 쓸 때 이 가족은 그 돈을 아낌없이 여행에 쓰는 것뿐이다.

이들 가족이 '여행가족'이 된 것은 여행광인 최씨에서 비롯됐고, 대부분 여행가가 그렇듯이 그의 여행은 젊었을 때 '역마살'에서 시작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전국 여러 산을 두루 섭렵하고 서른다섯 결혼 전까지 혼자서 우리나라 구석구석 많이도 다녔다.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90년대 들어와서 일본, 중국 등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

회사에 장기휴가를 내야 할 때는 '여행계획서'까지 제출하며 공인을 받고 떠났다.

해외여행을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외국어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굳이 하라고 하지 않아도 한단다. 희주와 상훈이는 3년 전부터 중국어 공부를 시작해 둘다 중국어로 곧잘 얘기하곤 한다. 사진은 집에서 단란한 한 때.
해외여행을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 외국어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굳이 하라고 하지 않아도 한단다. 희주와 상훈이는 3년 전부터 중국어 공부를 시작해 둘다 중국어로 곧잘 얘기하곤 한다. 사진은 집에서 단란한 한 때. ⓒ 김정숙
지인의 소개로 만난 부인 강씨는 직장일로 바빠 평일에 틈틈이 데이트 한 것이 다이다 보니 남편이 그렇게 여행을 많이 다니고 좋아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일 때문에 바빠 신혼여행도 남편이 준비하고 결정해서 떠났다.

달콤한 허니문을 꿈꾼 강씨가 95년 3월 결혼해 신혼여행지라고 떠난 곳은 대만 아리산 트래킹이었다나. 특급 호텔도 아닌 우리나라 여인숙 같은 곳이나 산장에서 잤고 "중국말만 할 줄 알았으면 집에 혼자 왔을" 정도로 힘든 일도 있었단다.

결혼 몇 달 뒤 제2의 신혼여행이라며 떠난 두 번째 여행도 '아무 것도 모른 채' 남편 손에 이끌려 갔다. 가보니 티베트로 가고 있더라고. 고산병 때문에 사흘 동안 누워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가장 가고 싶은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두말 않고 티베트라고 말할 정도로 강씨는 그곳의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사람들에게 반했다.

강씨는 "돈 많이 벌어서 얘들한테 빌딩 물려주는 게 꿈일 정도로 부자가 되는 게 예전의 삶의 목표였다. 그런 내가 티벳의 맑은 정신을 좋아할 정도로 변했다. 그렇게 순수한 사람들과 자연을 접하다 보니 조그만 일에도 화낼 줄 모르고 늘 즐겁게 산다"고 말했다.

최씨는 "열심히 일하고 또 아내와 자식들과 즐겁게 여행하고, 그게 내 인생의 최고 행복"이라며 "물질적인 것에 욕심없이 앞으로도 가족과 여행하며 눈 맞추고 대화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최씨 부부는 중국 곳곳을 다 돌고나면 앞으로 인도에 가볼 계획이다. 여행 '과정'이 60% 이상을 차지한다는 이들 가족이 물론 비행기 타고 훌쩍 갈 건 아니다. 일단 중국으로 가서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과 파미르고원을 통과해 인도로 갈 작정. 그 이후에도 세계 곳곳을 그렇게 가족과 함께 '산을 넘고 바다 건너' 돌아보고 싶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울산 북구 웹진 <희망북구>(www.hopebukgu.ulsan.kr)에도 올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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