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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작과비평' 주간을 맡은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66년 1월, 지금은 유행이 돼버렸지만 당시엔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과'가 들어간 이름을 문패로 내걸고 "시작은 미약해도 뜻있는 여러 사람들이 합류해 우리 사회에서 좀 더 큰 기능을 해낼 수 있길 희망"하는 잡지가 나왔다.

그리고 2006년 1월인 지금, 그 잡지는 '불혹'의 나이가 되었고, 마흔 생일을 기해 새 편집주간을 맞았다.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과 백영서(53·연세대 사학과 교수) 주간이 화제의 주인공이다.

백영서 주간을 굳이 '새'라는 접두어까지 붙여 소개하는 것은 자칫 형용모순처럼 보인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분명 창비의 '새' 편집주간이 된 것이지만, 이 잡지의 자칭(?) 첫 공채 출신 편집기자로 인연을 맺기 시작하여 편집위원을 거쳐 최근까지 부주간으로 있다 이번에 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주간이 주간으로 승진(?)하는 것은 어느 잡지에서나 으레 있는 다반사로, 시쳇말로 뉴스 가치는 단신 거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그의 주간 취임 기사를 앞 다투어 비중 있게 보도했다.

참여문학의 새 지평을 열고, 민족 민중문학의 산실이었던 <창작과 비평>의 새로운 역할에 거는 기대가 크고 창비에 주간제가 도입된 1996년 이래 10년 만에 이뤄진 첫 세대교체라는 점에서 창비의 실질적 변화에 주목하기 때문일 터이다.

전임 최원식(57·인하대 국문학과 교수) 주간은 창비가 '우리 시대의 현안을 문학인과 인문사회과학자들이 협동하여 연구'할 목적으로 신설한 독립법인 '세교연구소'의 초대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회일로 일본에 갔다가 돌아오는 백영서 주간을, 1월 12일 오후 연세대에서 만났다.

한결같되 나날이 새로워진다

"창비의 40년 타성을 떨치기 위해 운동성을 재정립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창비 30주년 때 밝혔던 '한결같되 나날이 새로워진다'는 의미의 법고창신의 운동정신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워진다'에 무게중심을 두려고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창비의 새로운 각오와 의지를 책임지기 위한 대외적 약속을 한다는 기분으로 인터뷰에 응했다고 말하는 백영서 주간은 기득권을 넘어서는 자기갱신을 통해 창비의 새 역할을 찾겠다고 했다.

창비가 추구하고자 하는 '운동성'은 '제도의 안팎을 넘나드는 활력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백 주간은 "창비는 창간 40주년을 맞아 동아시아 진보지식인의 네트워크 구축에 박차를 가해 우리 담론의 소통공간을 넓히고, 문학과 사회운동의 현장에 더욱 밀접히 결합한 담론 개발과 창작활동의 산실이 되겠다"고 밝혔다.

백영서 주간의 취임의 의미는 아무래도 창비가 앞으로 '동아시아 담론' 생산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중국현대사가 전공인 그는 1990년대 초부터 연구를 시작한 누가 뭐래도 동아시아 문제를 천착해온 전문가이기에 더욱 주목을 끈다.

▲ '창작과비평' 주간을 맡은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실 제가 주간이 되어서 창비가 동아시아 담론 생산에 적극 나서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아니더라도 창비는 이미 동아시아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지난해 가을호만 하더라도 '탈중심의 동북아와 한국의 균형자 역할'이란 좌담을 싣는 등 그동안 활발하게 활동을 해왔죠. 다만 그 부분을 계속 이어가고 확장하겠다는 의미에서 제 역할이 요구된다고 봅니다."

창비는 동아시아 담론의 소통을 위해 우선 3월에 창비 일본어판을 디지털버전으로 만들어 계간지 <창비>의 목차를 비롯 책머리글, 특집 등을 번역하여 실을 계획이다. 또 중국어판도 6월중에 만들어 목차와 책머리글만이라도 번역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물론 상업적 활용이 아니면 누구든 저작권과 관계없이 전재가 가능하도록 '카피 레프트' 입장을 취한다고 밝혔다.

"대중문화 현장에서 한류는 대단하지 않습니까. 고급문화에서도 한류가 없으란 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고급문화는 아직 동아시아에서 교류가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창비의 동아시아판 창간은 창비 담론을 동아시아 쪽으로 적극 소통시켜 동아시아의 보편성에 기여한다는 취지입니다."

아울러 창비는 오는 6월경 동아시아의 진보적 잡지 편집장들을 초청하여 '평화의 동아시아와 잡지의 역할'이란 회의도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동아시아에서 진보란 무엇인가, 또 진보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등을 적극 개진하게 될 이 회의를 통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잡지의 역할을 모색하게 된다.

6·15시대의 진보의 참모습은 '변혁적 중도주의'

지난 호(2005년 겨울호)에서 '87년 체제의 극복'에 대해 집중 조명했던 창비의 40주년 기념호인 올 봄호의 특집은 '6·15시대, 무엇을 할 것인가'이다.

남북문제에 대한 창비의 입장은 '분단체제론'을 들고 나와 주목을 끌었던 백낙청 창비 편집인의 신년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백 편집인은 "2000년 6월의 감격과 거의 동시에 의료대란 등 한국사회의 각종 내부갈등이 폭발한 것은 남북대결 상태에서 꾹꾹 눌러놨던 분단체제의 뚜껑이 열렸던 탓"이라며 "6·15공동선언이 제시한 한반도 특유의 통일과정이 빈말이 아님을 실감한 2005년 하반기에 이른바 남남갈등이 전에 없이 고조되었다는 사실도 6·15시대가 격변기임을 확인해주는 사항"이라고 작금의 현실을 진단했다.

또 백 편집인은 "고착된 분단구조에 적응하여 유지되던 온갖 사고와 감정, 관행과 제도들이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점진적으로 통일시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실적 대응을 모색하는 것이 창비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백 편집인은 '6·15 시대의 진보의 참모습'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제시했다. 급진운동권 양진영(NL과 PD)과 온건개혁세력의 3자연대가 남북의 점진적 통합에 적극 참여하는 진정한 '민족대단결'의 일부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중도(中道)'에 이를 수 있다면서 그는 이를 '변혁적 중도주의'라 부름직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백영서 주간은 백낙청 편집인의 신년사의 기본정신은 공유하지만 다만 용어는 꼭 그것(중도주의)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더라도 그는 개인적으로는 쓸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여러 세력을 끌어들이는 통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분단 현실 속에서 진보진영이 담을 수 있는 현실적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실주의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창비는 참다운 진보가 무엇이지 따져 묻고 논쟁하면서 새로운 진보담론을 모색할 작정입니다."

종이호랑이 아닌 실제 포효하는 호랑이 될 터

창비는 지난 해 '개혁팀'을 가동해 계간지 <창비>에 대한 정비방안을 모색한 바 있다.

백영서 교수는 누구인가

ⓒ오마이뉴스 권우성

1953년생인 백영서 주간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다니던 중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된 상태에서 1978년 편집기자로 입사하면서 창비와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창비가 펴낸 <8억인과의 대화>가 문제가 되어 저자인 리영희 교수가 구속되자 리영희 교수 일에 관계하면서 창비의 백낙청 편집인과 알게 된 게 입사 계기였다.

1980년 3학년에 복학하게 된 백영서 주간은 기획위원으로 창비와의 인연을 계속 이어가며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림대 교수를 거쳐 1994년 연세대로 자리를 옮긴다.

학창 시절 민두기 교수로부터 엄격한 학문적 가르침을 받았던 백 주간은 지금 자신의 제자들을 엄격하게 가르치고 있다.

특히 그는 학생들에게 매주 리포트를 요구하며 학생들이 쓴 글을 직접 첨삭까지 해주는 친절함을 갖고 있기도 하다.

동아시아 연구에 매진하는 그는 지금 <(가제)20세기 동아시아 역사학의 역사>를 쓰고 있으며, 20세기 역사 교과서에 대한 분석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낸 책으로는 <동아시아의 귀환>과 공저 <동아시아의 지역질서:제국을 넘어 공동체로> 등이 있다.
기존의 문학과 인문사회비평이라는 쌍두마차를 분리하자는 것에서부터 발행주기, 새로운 글쓰기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논의를 했다. 결과는 새로운 방법들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익숙한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되 온라인을 대폭 보강하는 쪽으로 정했다.

또 백영서 주간이 비문학 전공자라는 점에서, 특히 문학의 비중이 줄어들고 정론지로 나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하는 입장도 다소 있었다.

이에 대해 백 주간은 창비가 종합지이고, 이름이 '창작과 비평'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면서 기존의 문학과 비문학의 공존의 원칙은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자신이 비문학 전공자여서 문단에서 특정 스탠스가 없기에 오히려 자유로운 운신을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면서 문단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아울러 창비에 청년정신을 불어넣기 위해 젊은 문인들로 편집위원을 보강했다고 밝혔다. 창비의 새로운 상임편집위원으로 영입된 문인은 문학평론가인 진정석(42)과 시인인 이장욱(38)이다.

백영서 주간은 '문턱이 높다, 폐쇄적이다' 등 창비에 대해 가해지는 비판을 잘 알고 있다면서 창비의 지면이 제한되어 있어 불가피한 면도 있었지만, 그런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가급적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 함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주간에 선임된 배경을 묻자 그는 창비의 운동성 회복에 자신의 학생운동 경험이, 창비가 안은 물론 바깥과도 소통해야 하는 상황에서 누구와도 잘 통하는 자신의 '코디네이터'(그는 창비 내에서 '백 코디'로 통한다)적 기질이 일정 역할을 해주길 바랐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인터뷰를 끝내며 창비 새 주간으로서의 각오를 말해달라고 하자 그는 한 제자가 이메일로 보내온 부탁성 축하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창비가 젊은 독자들에게 종이호랑이가 아니냐, 이왕 주간이 되셨으니 종이호랑이를 실제 포효하는 호랑이로 만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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