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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로 인해 숲이 사라졌습니다
도로공사로 인해 숲이 사라졌습니다 ⓒ 유성호
가까이 들리던 새들의 지저귐이 언제부터인가 멀어졌습니다.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새들의 지저귐이 알람시계를 대신할 만큼 새벽이면 창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낭랑한 목소리를 뽐내던 새들이 가을 무렵 도로공사가 시작되자 모두 사라졌습니다.

새들은 그러나 멀리 떠나지 못하고 도로가 가로지르는 길 건너편에서 못내 아쉬운 목소리를 전합니다. 이유는 새들이 넘어오지 않고 있는 이편에는 모이가 부족한 척박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나무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욤나무 한 그루와 새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로공사는 작은 환경 변화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숲과 함께 사라진 새들

제가 살고 있는 집 옆에는 감의 원조라고 일컬어지는 고욤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차고 뒤편이라 고욤나무는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온전히 열매를 맺어 고스란히 새들의 겨울 모이로 먹이사슬을 엮고 있습니다.

고욤나무 열매는 감의 축소판입니다. 여름내 땡볕 아래 익어가는 모습은 감과 똑같습니다. 꽃이 피고 진 자리에서 생겨난 초록색의 단단한 열매는 여름을 보내면서 어른 손톱만하게 자라서 가을로 접어들면 노릇한 색을 내면서 익어갑니다.

숲이 사라지자 새들도 둥지를 잃고 모두 떠났습니다
숲이 사라지자 새들도 둥지를 잃고 모두 떠났습니다 ⓒ 유성호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욤열매는 약한 것들을 땅 위로 낙과시키고 겨우살이를 위해 잎사귀마저 훌훌 털어버립니다. 그러면 나뭇가지에는 노란 고욤열매만 주렁주렁 매달리게 됩니다. 마치 먹기 성가신 뼈를 발라낸 순 살코기만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새들은 고욤열매에 입을 대지 않습니다. 알맞게 여물어서 부리만 갖다대면 쉽게 터트려 먹을 만도 한데 새들은 고욤 열매를 '겨울 도시락'으로 아껴두는 듯합니다. 고욤 열매는 새들의 기다림 속에 한 겨울을 지내면서 얼다 녹다를 수차례 반복하면서 쪼글쪼글하고 까만 곶감처럼 변합니다.

길 건너 고욤 열매는 '그림의 떡'

사진 왼쪽은 늦여름 때 알토란 처럼 달린 고욤 열매이고 오른쪽은 최근 얼다 녹다를 반복하면서 새들이 가장 먹기 좋은 때 모습입니다
사진 왼쪽은 늦여름 때 알토란 처럼 달린 고욤 열매이고 오른쪽은 최근 얼다 녹다를 반복하면서 새들이 가장 먹기 좋은 때 모습입니다 ⓒ 유성호
이때부터 새들의 만찬이 시작됩니다. 이곳은 불암산 산자락 밑이라 참새, 까치, 산비둘기 등 텃새를 비롯해 이름모를 멧새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새들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아끼다가 먹는 것은 겨울이 깊어갈수록 모이가 부족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해와 견주어볼 때 이맘때면 새들이 고욤 열매의 절반쯤은 먹어 치웠음직한데 올해는 어쩐 일인지 열매가 온전히 달려 있습니다.

이상하다 싶어 경비실 할아버지에게 여쭸더니 도로공사 때문이지 싶다고 하십니다. 그러고 보니 고욤나무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아름드리 밤나무가 모두 잘리고 고욤나무만 휑하니 서 있습니다. 새들이 고욤 열매를 쪼아 먹을 동안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던 은폐 엄폐물이 사라지자 발길을 끊은 것입니다.

숲이 사라지고 시뻘건 속살을 드러낸 자연은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주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숲이 사라지고 시뻘건 속살을 드러낸 자연은 아무리 작은 변화라도 주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 유성호
도로공사 전에는 고욤나무 뒤편으로 빌라 5층 높이의 밤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로를 내기 위해 숲은 사라졌고 이제는 시뻘건 황토가 속살처럼 드러나 있습니다. 봄이 되면 시커먼 아스팔트 포장이 그 위를 덮겠지요. 그러면 언감생심 눈길을 주면서 아쉬워하던 새들의 시선마저 사라질 것입니다.

도로공사의 필요성에 의문

주택 코 앞을 가로질러 막다른 길로 향하는 도로. 새들의 빈곤을 강요하는 경계선입니다
주택 코 앞을 가로질러 막다른 길로 향하는 도로. 새들의 빈곤을 강요하는 경계선입니다 ⓒ 유성호
아쉬운 것은 이 도로공사의 필요성입니다. 관할구청에 문의 결과 도로개설사업은 1978년 도시계획시설(도로)로 결정된 후 구 재정여건상 투자가 미루어진 도로사업이라는 답변입니다. 30년 가까이 예산이 없어서 공사를 미뤘다가 지난해 말에야 예산이 생겨(?) 공사를 할 수 있게 됐다는 말입니다. 연말이면 예산 소진을 위해 멀쩡한 보도블록 교체작업을 하는 사례에 비춰볼 때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답변입니다.

도로는 200여m 정도에서 불암산에 가로막힌 막다른 길입니다. 교통량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얼마 전 서울시에서 우회도로를 확장했고 기존 도로 등 이미 2개의 도로가 막다른 길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때문에 이번 도로공사로 인한 새들의 보금자리와 먹이사슬 파괴는 더더욱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한적한 동네의 작은 도로공사가 이처럼 새들의 생활환경에 여파를 미치는 것을 보면서 천성산과 새만금 등 거대한 국책사업이 자연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어렵지 않게 유추하게 합니다. 더 널찍한 도로를 쾌적하게 달리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무욕의 새들을 빈곤으로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짧지만 깊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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