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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회 및 13회 기사에서는 그동안의 7차례 논의를 바탕으로 '야스쿠니 편'의 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를 계기로, 한국·북한·중국 등 동북아 국가들이 야스쿠니 문제에서 종래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일본 군국주의를 견제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필자 주>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은 1592년(임진왜란)에 대규모로 조선을 침략한 적이 있고 또 1875년(운요호사건)부터 본격적인 조선침략을 개시했다. 두 경우의 차이점이라면, 일본이 16세기에는 실패했지만, 19세기에는 성공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점 못지않게 한 가지 중요한 공통점이 존재하고 있다.

그 공통점이라는 것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기 이전의 300년 기간 동안 주변국들의 견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16세기와 19세기에 모두 공통된다.

여몽연합군이 일본정벌을 시도한 1274년 및 1281년 이후, 대륙 국가들은 원·명 교체기의 혼란 때문에 일본을 견제할 틈이 없었다. 주변국들의 견제가 없는 300년 기간을 활용하여 일본은 중세사회에서 근세사회로 전환할 수 있는 경제적·군사적 실력을 축적하였으며, 또 센코쿠통일(戰國統一)을 통해 대외침략의 발판까지 구축하게 되었다.

약 300년간 주위의 견제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은 대륙침략(임진왜란)을 감행할 수 있을 정도의 강국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조선 전기의 '태평성대'라는 것은, 이처럼 이웃나라의 '중무장'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이루어진 '무책임한 평화'였던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대륙에서는 명·청 교체가 일어났고, 정통성이 취약한 청나라의 만주족 정권은 대외 진출보다는 폐관정책(쇄국)을 고수했다. 조선 역시 이 시기에 폐관정책을 유지했다. 그러므로 임진왜란 이후의 300년 동안에도 조선과 청나라는 또다시 일본 견제를 소홀히 한 것이다.

이 기회를 활용하여 일본은 에도시대(江戶時代)의 번영을 이룩하고 메이지유신(1868년)을 거쳐 강력한 근대 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일본이 1870년대에 무력을 앞세워 조선·대만·오키나와에 진출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 300년간의 실력 축적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물론 일본이 16세기 및 19세기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자신의 내부적 노력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주변국들의 지속적인 견제가 없었다는 점에 크게 힘입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주변국에 불과했던 일본이 19세기 이래로 역내(域內) 핵심국가로 등장하게 된 데에는 이처럼 각각 300년씩의 '태평성대'가 중요한 작용을 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경우에도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국제적 견제가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한 것이다. 일본민족이 태생적으로 대륙을 지향하는 데다가 세계 최강의 군사력·경제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를 필두로 하는 강경파가 지지 기반을 확대하고 있으므로, 일본에 대한 국제적 견제의 필요성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할 것이다.

물론 지금도 동북아 국가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을 견제하고 있다.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미일동맹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일본 역사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그리고 이번 시리즈에서 논의하고 있는 야스쿠니 참배 비판을 통해서 일본을 끊임없이 견제하고 있다. 일본이 경제력이나 군사력에 비해 낮은 정치적 위상을 갖고 있는 것은, 그동안 미국측의 전략적 필요에 의한 측면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주변국들의 끊임없는 견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우리는 한국·북한·중국이 야스쿠니 참배를 비판하는 목적이 단지 타국에 대한 내정간섭을 위한 게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을 견제하는 데에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 군국주의를 견제한다고 해서,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상적인 발전까지 방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변국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일본 군국주의를 견제하는 것이어야 하고, 또 군국주의 세력이 일본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목표는 '평화를 위한 견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7번의 기사를 통해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북한·중국 등의 야스쿠니 접근법에는 수정되거나 보충되어야 할 부분들이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그와 관련하여 3가지 점에 대해 검토하기로 한다.

첫째, 야스쿠니 문제의 주도권을 일본이 차지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보면, 주로 일본 총리가 신사 참배를 결정하고 난 뒤에야 주변국들이 비판에 나서곤 했다. 그러나 일본 측이 사전에 시나리오를 충분히 검토하고 나오는 상황에서, 주변국들이 야스쿠니 참배를 문제 삼아봤자 이는 일본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이 문제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강조한 바 있듯이, 야스쿠니 비판을 통해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은 일본인들의 '개종'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어떤 종교를 갖든 간에 그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들이 죽은 사람을 신으로 숭배하든 말든 간에 그것은 주변국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주변국들이 목표로 하는 것은 일본 군국주의의 발호를 억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야스쿠니 문제 역시 일본이 아닌 주변국들이 주도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발호를 억제하는 쪽에서 주도권을 잡아야지, 억제당하는 쪽에서 주도권을 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지금 이 어불성설이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 주변국들이 이 문제를 주도하지 못한다면, 주변국들의 필요에 따라 일본 군국주의를 시의적절하게 견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동북아 각국의 정부들은 일본 총리가 신사 참배를 결정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한국·북한·중국 국민들은 물론 일본 국민들을 상대로 수시로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을 알리고 또 일본정부를 상대로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야스쿠니 비판의 초점을 'A급 전범' 14명에게만 국한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전에 살펴본 바와 같이, A급 전범 14명만이 일본의 대외침략에 책임을 지는 것도 아니고, 또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가 제2차 세계대전 등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일본 군국주의를 제대로 비판하려면, 19세기말부터 추진된 일본 군국주의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군국주의의 선봉에 선 일본 국왕(소위 '천황')이 비판 대상이 되어야 하고,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일본인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또 전쟁 동원에 앞장선 야스쿠니신사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야스쿠니신사에 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전사자들까지 신으로 안치되어 있다는 사실은, 일본의 전쟁 책임이 단지 제2차 대전 정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국들은 A급 전범 14명에 구애없이 야스쿠니신사 자체와 총리의 신사 참배를 꾸준히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고 해서, 일본이 야스쿠니신사 자체를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꾸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일본 국민들이 야스쿠니신사에 대해 심정적 지지를 보내거나 혹은 군국주의와 일체가 될 가능성을 끊임없이 차단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야스쿠니신사 자체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은, 야스쿠니신사와 일본 국민의 심정적 결합을 막는 기능을 할 것이다.

우리의 관심사는 야스쿠니신사나 그 안에 안치된 전사자들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야스쿠니신사를 중심으로 일본 국민들이 군국주의적 통합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셋째, 야스쿠니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정부는 물론 미국정부까지도 끊임없이 압박해야 한다. 이 시리즈에서 이미 검토한 바와 같이, 1945년 이후 일본의 패망에도 불구하고 야스쿠니신사가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결정적인 지지 때문이었다. 야스쿠니신사의 존속은 미국 패권주의와 일본 군국주의의 결합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시, 야스쿠니 불똥 미국에 튈까 우려"(제10회)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주변국들의 야스쿠니 비판은 미국의 동북아전략에까지 차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변국들이 야스쿠니 참배를 더 효율적으로 비판하려면, 미국에 대한 압박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야스쿠니 참배를 암묵적으로 지지할 경우 미국의 동북아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음을 미국 지도부에 인식시켜야 한다.

미국을 압박할 다양한 방법은 동북아 각국의 외교 주무부서에서 고민해야 할 사안이겠지만, 예컨대, 6자회담에 투입될 외교 역량을 '때에 따라' 그리고 '일시적으로' 야스쿠니 문제로 전환하는 것도 미국을 압박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국가들을 동원하여 6자회담 구도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역내 국가들이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를 이유로 6자회담에 투입될 외교역량을 야스쿠니 비판으로 전환하는 것은 분명 외교적 손실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아무튼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원초적' 책임이 있는 미국까지 동시에 압박함으로써, 미국을 통한 대일(對日) 압박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야스쿠니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북한·중국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반드시 요구해야 할 사안이 있다. 그 점에 관하여는 '야스쿠니 편'의 마지막인 제13회에서 검토하기로 한다.

일본이 군국주의적 재무장을 향해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이때, 일본의 발호로 인해 동북아 평화가 파괴되지 않도록 하려면 주변국들 역시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 그리고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 '브레이크 없는 견제'를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일본 견제에 실패한다면, 과거 16세기 및 19세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또다시 일본 대외침략의 길을 열어 주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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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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