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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지로 110만원에 맞춘 학생들의 가계부 내역을 보고 강연자와 학생들이 웃고 있다.
ⓒ 김수원
"자신이 40대 후반 정도 됐다고 가정하고 4인 가족 기준으로 한 달 소득을 써보세요."

지난 12일 부산 동의대에서는 등록금 인상 문제를 주제로 부산경남지역 대학생연합(준)이 준비한 '1차 대학생 교육아카데미'가 열렸다. 첫 강의를 맡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전 교육국장 조성주(27·연세대)씨는 150여 명의 대학생들에게 가정 설계를 주문했다. 조성주씨는 "교육비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자신에게 들어간 돈을 생각해 보라"고 한 뒤 "그 항목들을 다시 월 소득 110만 원에 맞춰서 만들어 보라"고 골머리 아픈 과제를 냈다.

학생들은 머리를 싸매고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미란(울산대·21)씨는 "아이들 용돈까지 아무리 줄여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며 "그동안 부모한테만 의지해 못 느꼈는데 그 입장이 돼 보니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조성주씨는 "110만 원은 비정규직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라며 "약 800만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12% 인상, 대학가 등록금 폭탄 터지나

6일 연세대는 최근 5년간 6.5% 이하의 인상률을 유지하던 등록금을 올해 12%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의학계열은 374만원에서 419만원으로 오르고, 공학계열은 354만원에서 397만원으로 인상된다. 다른 계열도 30만~40만원 인상된다.

연세대 측은 "낮은 등록금 인상이 재정 악화의 요인으로 작용해 올해 단호하게 결정했을 뿐"이라며 "연세대는 서울 소재 비슷한 규모의 대학들과 비교해도 등록금이 낮은 편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립대학들도 등록금 고공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국대는 18% 인상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생들의 큰 반발에 부딪혔으며 한양대, 서강대도 각각 9.3%, 8.29%의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연세대의 12% 인상에 이어 사립대학들의 등록금 고공 인상이 이어지고 있다.
ⓒ 최인수
지방 사립대학들도 5∼8%의 인상안을 검토하고 있다. 작년 5.7%에 이어 올해 8% 인상을 검토 중이라는 지방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기부금도 많이 들어오는 연세대가 두 자릿수로 올렸다는 소식이 다른 대학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같은 등록금 인상율은 2005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2.7%와 올해 정부 목표치인 3%를 크게 웃도는 수치. 대학생들은 "그래도 설마 우리 대학이 연세대보다 높게 잡겠느냐"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고 있다. 서주영(22·부산외국어대)씨는 "등록금이 자꾸 오르니까 다들 학점 경쟁에 목숨을 건다. 이번에도 장학금을 놓쳐서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하는 친구도 봤다"고 전했다.

학생들은 빠져나가고, 정부 평가는 속속 추진되고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은 매우 높다.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지난 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4년 사립대학 운영 수입에서 등록금과 수강료는 평균 74.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재단 전입금이 운영 수입의 1%도 미치지 못하는 사립대학은 4년제 사립대학 156곳 중 72곳으로 44.2%를 자치했다.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지원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0.3%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1%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황인성 선임연구원은 "학생 수는 감소하고 휴학생은 느는 상황에서 기부금도 잘 들어오지 않는 대학들은 등록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며 "사립대학은 안정적인 재정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학들이 등록금을 인상해 재정을 확보하려는 데는 교육부가 추진하는 각종 대학구조개혁방안과도 무관하지 않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고등교육법 개정안에 포함된 '대학정보공시제'는 각 대학의 신입생 충원율, 교원확보율, 취업률, 재정 현황 등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제도다. 학생들의 대학 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된 이 제도는 교육환경과 재정상황이 열악한 몇몇 사립대학에게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되고 있다.

대전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취업률 등이 공개되는 정보공시제는 신입생 모집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취업률이 낮으면 신입생 모집도 어려울 거고 그러면 미달되는 대학은 계속 미달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확률이 크다"고 밝혔다.

또 지난 2004년 교육부는 오는 2009년까지 전임교원확보율 65%를 맞추지 못한 사립대는 각종 재정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4년간 국·공립, 사립대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학 편제 정원 대비 전임교수 확보율'은 57% 정도.

올 하반기 교육부는 '고등교육평가원'을 설립해 BK 21, 누리사업 등 대학지원사업에 필요한 평가업무를 전담케 할 계획이다. 고등교육평가원은 대학의 학생 충원과 취업, 학문, 특성화 사업 등 대학 자체 발전가능성을 평가해 지원여부를 결정한다. 교육부 평가지원과 황성환씨는 "대학들에게 평가가 부담되는 건 이해하지만 기존처럼 과중한 부담은 주지 않는 방향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렴한 등록금, 국립대 신화 깨지나

▲ 각 사립대학들은 2005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3%를 웃도는 수치로 등록금을 인상할 예정이다. 사진은 지난 12일 부산에서 열린 등록금 인상반대 집회 장면.
ⓒ 김수원
국립대라고 해서 이러한 흐름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지난해 국립대 평균 신입생 등록금은 300여만 원으로 사립대의 630만 원의 절반 가량이었지만 앞으로는 '국립대=저렴한 등록금'이라는 등식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 상반기 국립대학의 특수법인화를 내용으로 하는 '국립대 운영체제 개선 관련 법안'을 추진 중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법인화한 국립대는 대학이사회를 포함한 재정, 인사, 행정 등 대학 운영 전반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또 대학운영 성과에 대한 책임과 임무를 담보하기 위해 법인회계가 도입되고 총장 선출 방식도 간선제로 바뀐다.

학생들을 비롯한 대학 관계자들은 국립대 법인화는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대학측이 자율권을 확보한 만큼 등록금 인상이 되지 않겠냐는 것. 법인화 소식을 접한 김영철(24·부산대)씨는 "곧바로 사립대만큼은 아니겠지만 매년 상당한 등록금 인상은 불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모든 국립대를 법인화하는 것은 아니"라며 "법률에 지속적인 재정 지원을 약속하고 있고 등록금도 인상 가이드라인을 통해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해 국립대 평균 등록금 인상률은 8.4%로 사립대학의 4.8%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대학 졸업장과 학자금 대출, 그 고달픈 빅딜

이처럼 대학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지난 해 2학기부터 정부는 '부모마음 정부학자금대출'을 운영하고 있다. 예전보다 수혜자도 늘리고 대출한도는 2천만 원에서 4천만원으로, 상환거치기간도 최대 20년까지 늘어난 반면 학생들의 이자 부담은 4%에서 지난 학기 7%로 오히려 커졌다.

이는 학자금대출이 전체 8.5%의 이자 중 4.5%를 정부가 대신 부담하는 '이차보전 방식'에서 이자 부담 없이 신용보증만 해주는 '정부보증방식'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물적 담보 없는 대출이다 보니 이자율이 더 떨어지면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라며 "올해도 7%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년부터 학자금 대출을 신청했다는 박정수(23·동의대)씨는 "대출을 받아도 높은 이자 때문에 빨리 취업해서 갚아야겠다는 부담이 무척 크다"고 밝혔고 김지혜(21·동명대)씨도 "방학만 되면 부모님은 등록금 마련에 노심초사하신다"며 "매년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어떻게 갚을지 막막하다"고 털어놓았다.

정부는 지난 해 18만여 명이었던 학자금 대출 수혜자를 올해 1학기 25만 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조성주씨는 "등록금 대출이 일반화되어 있는 미국에서는 (학자금 상환이) 이미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도 수천만 원씩 빚을 지고 졸업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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