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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차려 먹었던 산나물 밥상. 얼레지와 참취, 참나물, 홑잎, 다랫잎, 고구마줄기, 두릅, 메밀싹, 어린무김치에 갖가지 장아찌 등 스무가지 넘게 차렸다.
작년에 차려 먹었던 산나물 밥상. 얼레지와 참취, 참나물, 홑잎, 다랫잎, 고구마줄기, 두릅, 메밀싹, 어린무김치에 갖가지 장아찌 등 스무가지 넘게 차렸다. ⓒ sigoli 고향
작년 한 해 나를 지배했던 화두는 단연 귀향이었다. 나는 내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귀농을 목표로 여러 준비를 해왔다.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결정한 일이다. 막연히 시골생활이 좋아서라기보다 내 삶의 질을 높이고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내 인생의 꿈을 실현할 기회로 보았다.

고향에 가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다른 분야보다 아는 것도 많아 활용가치가 높으니 어렵잖게 둥지를 틀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도시 생활은 늘 부족했지만 살만큼 살아봤고 시도할 일은 웬만큼 손대봤으니 그걸 바탕에 깔고 미련 없이 떠나면 남들에겐 절망의 땅이 내겐 기회의 땅이 될 성 싶었다.

아직도 그 믿음과 자신감은 내게 있다. 소비자 마음을 일부는 읽을 줄 알고 시장의 흐름을 조금은 파악했다. 시골에 정착을 했을 때 집 주변과 생활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도 안다. 내 일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도 대충 가늠이 간다.

마흔이 되기 전에 이루려던 소박한 귀향 꿈을 작년엔 결국 이루지 못했다. 접어야 했다. 아니 1년을 더 잡아야 했다. 변변치 않는 이유 때문이다. 돈이 좀 부족하다는 핑계로 결단을 실행하지 못했다.

나를 다독이기 위해 "만 사십 살 이전에 가면 되지 않느냐?"는 궁색한 변명을 끌어안기로 했다. 사십으로 잡은 건 한 살이라도 젊고 힘 있을 때 가자는 것이다. 양치기소년처럼 거짓말 반복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이제 많아야 11달이 남았다.

산나물의 꽃 곰취가 노랗게 피었다. 올해 얼마나 퍼질지 지켜봐야겠다.
산나물의 꽃 곰취가 노랗게 피었다. 올해 얼마나 퍼질지 지켜봐야겠다. ⓒ sigoli 고향
지난 한해 나는 2000년처럼 그냥 맨몸으로 시골행 차를 탔다가는 또 다시 회항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했다. 더구나 갓난아기였던 아이들도 곧 취학을 해야 하니 못난 부모 만나 떠돌이 생활을 전전했다는 근거는 제공하고 싶지 않다.

농촌, 시골, 고향의 일부가 되면 나중에 누군가 "김규환씨 가족은 백아산에 눌러 산다더라"는 말이 나오면 성공한 것으로 여기면 될 게 아닌가. 몇 사람이라도 늘 내가 살고 있는 마을로 놀러와 쉬어가게 하려면 정착을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중심에 산채원(山菜園)을 놓고 산나물을 모아나갔다. 아직 시장형성이 되지 않아 팍팍하겠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그쪽에서 승부수를 띄울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예전엔 웬만한 풀과 나무를 거의 다 먹었질 않았던가.

참살이(웰빙) 붐도 한몫 거들고 있으니 도시 사람들 건강과 입맛을 사로잡는 길은 배고픈 시절 먹었던 거친 음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재배도 재배지만 음식으로 어떻게 친해지도록 활용하는가가 관건이다.

이젠 맛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고려엉겅퀴로 만든 곤드레밥, 또 먹고 싶다.
이젠 맛을 조금은 알 것 같은 고려엉겅퀴로 만든 곤드레밥, 또 먹고 싶다. ⓒ sigoli 고향
마음이 바빠졌다. 서울에 있을 때 최소 중부지방에서 구해야 할 것은 마련하려고 곳곳을 쏘다녔다. 산나물을 찾아 고향 전남 화순에서 강원도까지 오가는 수고와 비용을 덜 수 있기에 흔치 않은 나물을 농가와 '강원도산채시험장' 협조를 받아 구하기를 1년여, 어떤 것은 한 포기에서부터 많은 것은 수천 그루씩 구색을 갖춰나갔다.

1년 동안 구한 가짓수가 120여 가지다. 먹어본 것으로 치면 150가지가 넘는다. 씨앗과 뿌리, 줄기를 모아 200여 평 남짓 땅을 1년에 10만원씩 주고 빌려서는 오밀조밀 심어놓았다. 버섯까지도 적당히 공부를 했다.

평소 접하기 힘든 산마늘에서 산부추, 곤드레, 누룩치에 곰취와 곤달비 참취 등이 이번 겨울을 나고 있다. 집안엔 몇 십 가지 종자가 날이 따뜻해지면 땅 속으로 들어가 발아할 채비를 한다.

또한 작년에 몇 차례 나눠 찍었던 산나물 관련 방송도 올 2월17일(금)에 방영을 앞두고 있다. 노랫말에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라는 구절이 있다. 작년 한 해 그 정도면 기초는 닦았으니 마음 느긋하게 먹고 올해 잘 준비하여 새 삶을 찾아 고향으로 내려가리라.

명이(命이)나물이라고도 하는 산마늘 구하기가 제일 어려웠다. 오대산과 울릉도 산으로 나뉜다.
명이(命이)나물이라고도 하는 산마늘 구하기가 제일 어려웠다. 오대산과 울릉도 산으로 나뉜다. ⓒ sigoli 고향
내겐 귀향과 귀농이 환상도 대박도 아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뤄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육체를 움직여 땀을 뻘뻘 흘려야 할 고된 노동의 시작일 뿐이다. 흙심을 믿고 퇴비를 넉넉히 만들면 흙이 보답하지 않겠는가. 덤으로 건강한 몸을 얻고 건전한 정신을 갖는다면 앞으로 가는 길이 힘들지만은 않으리라. 나물 한 포기와 나누는 대화가 기다려진다.

챙겨갈 건 세 식구와 산나물뿐이다. 고향 너른 빈 땅에 내 꿈을 한 포기 한 포기 심어나가기 위해 차근히 준비할 생각이다. 내가 살아갈 골짜기에 수백 가지 산나물이 지천에 깔려 있고 가을엔 나물 꽃이 날을 바꿔가며 흐드러지게 필 생각만 하면 벌써 가슴이 떨리는 건 뭘까.

산나물 박사 김종환 연구원과 강원도산채시험장에서 함께 한 컷 찍었다. 그는 내게 많은 정보를 줬고 식구를 늘리는데도 기여했다.
산나물 박사 김종환 연구원과 강원도산채시험장에서 함께 한 컷 찍었다. 그는 내게 많은 정보를 줬고 식구를 늘리는데도 기여했다. ⓒ sigoli 고향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포근하고 정이 철철 넘치는 인터넷고향신문 sigoli고향을 만들고 있다. www.sigoli.com에 가면 고향의 맛과 멋을 한껏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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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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