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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나를 지배했던 화두는 단연 귀향이었다. 나는 내 삶의 방식을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귀농을 목표로 여러 준비를 해왔다.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결정한 일이다. 막연히 시골생활이 좋아서라기보다 내 삶의 질을 높이고 자급자족을 기반으로 내 인생의 꿈을 실현할 기회로 보았다.
고향에 가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믿음과 다른 분야보다 아는 것도 많아 활용가치가 높으니 어렵잖게 둥지를 틀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도시 생활은 늘 부족했지만 살만큼 살아봤고 시도할 일은 웬만큼 손대봤으니 그걸 바탕에 깔고 미련 없이 떠나면 남들에겐 절망의 땅이 내겐 기회의 땅이 될 성 싶었다.
아직도 그 믿음과 자신감은 내게 있다. 소비자 마음을 일부는 읽을 줄 알고 시장의 흐름을 조금은 파악했다. 시골에 정착을 했을 때 집 주변과 생활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도 안다. 내 일상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도 대충 가늠이 간다.
마흔이 되기 전에 이루려던 소박한 귀향 꿈을 작년엔 결국 이루지 못했다. 접어야 했다. 아니 1년을 더 잡아야 했다. 변변치 않는 이유 때문이다. 돈이 좀 부족하다는 핑계로 결단을 실행하지 못했다.
나를 다독이기 위해 "만 사십 살 이전에 가면 되지 않느냐?"는 궁색한 변명을 끌어안기로 했다. 사십으로 잡은 건 한 살이라도 젊고 힘 있을 때 가자는 것이다. 양치기소년처럼 거짓말 반복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이제 많아야 11달이 남았다.
지난 한해 나는 2000년처럼 그냥 맨몸으로 시골행 차를 탔다가는 또 다시 회항을 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차근차근 준비하기로 했다. 더구나 갓난아기였던 아이들도 곧 취학을 해야 하니 못난 부모 만나 떠돌이 생활을 전전했다는 근거는 제공하고 싶지 않다.
농촌, 시골, 고향의 일부가 되면 나중에 누군가 "김규환씨 가족은 백아산에 눌러 산다더라"는 말이 나오면 성공한 것으로 여기면 될 게 아닌가. 몇 사람이라도 늘 내가 살고 있는 마을로 놀러와 쉬어가게 하려면 정착을 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 중심에 산채원(山菜園)을 놓고 산나물을 모아나갔다. 아직 시장형성이 되지 않아 팍팍하겠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그쪽에서 승부수를 띄울 수도 있겠다는 판단이었다. 예전엔 웬만한 풀과 나무를 거의 다 먹었질 않았던가.
참살이(웰빙) 붐도 한몫 거들고 있으니 도시 사람들 건강과 입맛을 사로잡는 길은 배고픈 시절 먹었던 거친 음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재배도 재배지만 음식으로 어떻게 친해지도록 활용하는가가 관건이다.
마음이 바빠졌다. 서울에 있을 때 최소 중부지방에서 구해야 할 것은 마련하려고 곳곳을 쏘다녔다. 산나물을 찾아 고향 전남 화순에서 강원도까지 오가는 수고와 비용을 덜 수 있기에 흔치 않은 나물을 농가와 '강원도산채시험장' 협조를 받아 구하기를 1년여, 어떤 것은 한 포기에서부터 많은 것은 수천 그루씩 구색을 갖춰나갔다.
1년 동안 구한 가짓수가 120여 가지다. 먹어본 것으로 치면 150가지가 넘는다. 씨앗과 뿌리, 줄기를 모아 200여 평 남짓 땅을 1년에 10만원씩 주고 빌려서는 오밀조밀 심어놓았다. 버섯까지도 적당히 공부를 했다.
평소 접하기 힘든 산마늘에서 산부추, 곤드레, 누룩치에 곰취와 곤달비 참취 등이 이번 겨울을 나고 있다. 집안엔 몇 십 가지 종자가 날이 따뜻해지면 땅 속으로 들어가 발아할 채비를 한다.
또한 작년에 몇 차례 나눠 찍었던 산나물 관련 방송도 올 2월17일(금)에 방영을 앞두고 있다. 노랫말에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가자~'라는 구절이 있다. 작년 한 해 그 정도면 기초는 닦았으니 마음 느긋하게 먹고 올해 잘 준비하여 새 삶을 찾아 고향으로 내려가리라.
내겐 귀향과 귀농이 환상도 대박도 아니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이뤄지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육체를 움직여 땀을 뻘뻘 흘려야 할 고된 노동의 시작일 뿐이다. 흙심을 믿고 퇴비를 넉넉히 만들면 흙이 보답하지 않겠는가. 덤으로 건강한 몸을 얻고 건전한 정신을 갖는다면 앞으로 가는 길이 힘들지만은 않으리라. 나물 한 포기와 나누는 대화가 기다려진다.
챙겨갈 건 세 식구와 산나물뿐이다. 고향 너른 빈 땅에 내 꿈을 한 포기 한 포기 심어나가기 위해 차근히 준비할 생각이다. 내가 살아갈 골짜기에 수백 가지 산나물이 지천에 깔려 있고 가을엔 나물 꽃이 날을 바꿔가며 흐드러지게 필 생각만 하면 벌써 가슴이 떨리는 건 뭘까.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포근하고 정이 철철 넘치는 인터넷고향신문 sigoli고향을 만들고 있다. www.sigoli.com에 가면 고향의 맛과 멋을 한껏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