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녀가 요리 준비하는 동안 전 열심히 생강을 깠습니다.
그녀가 요리 준비하는 동안 전 열심히 생강을 깠습니다. ⓒ 양중모
그런데 이번에는 지난 번에 이어 본격적으로 요리 잔치를 벌인 그녀보다 제가 문제였습니다. 그녀가 요리를 하는 동안 제게 맡긴 과제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번 메추리알에 이어 이번에 까야 할 것은 생강이었습니다.

생강을 깐 뒤 갈아놓는 것, 이것이 제 임무였습니다. 중간 중간 설거지를 할 필요 없이, 앉아서 까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처음 시작하는 마음은 가벼웠습니다. 그러다가, 한 개, 두 개 씩 생강을 까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어깨가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생강이 여기저기 불룩불룩 튀어나와서 칼로 까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결국, 반쯤 까기 시작하자, 귀찮은 마음에 껍질 아닌 것까지 다 까버리고, 중간 중간 연결 부위에 남아 있는 껍질은 까지도 않고 작업을 마무리했습니다. 비록 '대충'이었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그녀에게 갖다주며 말했습니다.

"다했다!"

그녀는 슬쩍 보더니, 아주 담담한 어조로 살짝 미소까지 띄우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근데, 오빠, 이거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 오빠랑 오빠 아버지가 먹을 거잖아."

두 눈을 부릅뜨면서, 그녀에게 화를 내려다가 결국 내가 먹는다는 소리에 움찔 했습니다. 하긴, 껍질째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손가락이 욱신거리고, 화끈거리는 게 더 이상 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전 당당하게 그녀에게 '니가 해!'라고 말하려 했지만, 제 몸은 마치 7살 시절로 돌아가 그 시절 목소리를 흉내내며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듯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앙, 아앙, 힘들단 말야. 으응. 힘들어."

그녀 저를 보고 살짝 웃습니다. 그녀의 미소를 보고 안도감을 느끼기도 전에, 마치 엄마가 애를 달래는 듯한 자세로 상냥하게 하는 말을 듣고 절망감에 빠졌습니다.

"어이구, 우리 중모 힘들었져? 그랬져? 그럼 좀 쉬었다가 다 까."

조금씩 생강의 결과물이 나오던 도중 믹서기가 고장났습니다.
조금씩 생강의 결과물이 나오던 도중 믹서기가 고장났습니다. ⓒ 양중모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어리광과 애교를 그렇게 부렸건만, 그녀 역시나 단호합니다. 결국, 전 다시 생강에서 제대로 벗겨지지 않은 부분을 까기 시작했고, 깐 후에 믹서기에 돌려 생강가루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몇 번을 반복했을까, 믹서기가 '찌잉'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더 이상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몇 번을 더 시도했으나, 되지 않아 잠시 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의자에 털썩 앉아 여기 저기를 둘러보니, 정말 난장판이 따로 없었습니다.

여자친구가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드는 동안 생강 하나를 깠을 뿐인데, 그날 우리 집에서 하고 있는 건 오로지 생강을 까고 있는 일인 것만 같았습니다. 그야말로 생강 하나 까려고 여기저기 어지럽혀 놓은 꼴이었습니다. 청소기를 돌려야 할 상황이었으나, 청소 잘 안 하는 남성상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전, 그 상황을 고개돌려 외면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들리는 여자친구의 목소리!

생강을 까다가 온 집안을 어지르는 바람에 청소기를 돌려야 했습니다.
생강을 까다가 온 집안을 어지르는 바람에 청소기를 돌려야 했습니다. ⓒ 양중모
"더럽잖아. 청소기 좀 돌려."

'아, 좀 더러우면 어때'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러면, '어차피 배고파지는데 밥은 왜 먹냐'며 구박을 받을 것이 뻔하기에 청소기를 꺼내 돌렸습니다. 생강 까느라고 체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청소기까지 돌리자니 힘들었지만, 뭐,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여자친구가 지난번보다 많은 반찬을 만들어주었고, 너무나 기특하게도, 저랑 둘만 주말을 보내면 아버지가 쓸쓸하시다며 같이 저녁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예뻤겠습니까.

그러나 이 저녁 준비의 진짜 복병은 여자 친구의 요리 솜씨도 아닌, 제가 생강을 까며 어지럽혀놓은 집도 아닌 다른 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열심히 반찬을 만들고, 저녁 준비를 하고, 그 긴 시간 동안 혼자서 생강과 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 아버지는 결혼식에 참석하시려 외출 중이셨습니다.

식탁위도 난장판!
식탁위도 난장판! ⓒ 양중모
어찌어찌해서 기본적인 준비가 끝난 후 아버지께 전화를 했습니다. 아버지가 오시는 시간에 맞추어 저녁을 준비해둘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통화가 연결된 후 아버지가 제게 하시는 말씀, 그것이 바로 그날 같이 모여 맛있게 먹자며, 준비하던 저녁 식사의 최대 복병이었던 것입니다.

"어, 아버지 일이 있어서 좀 늦게 들어갈 것 같으니까, 여자친구랑 둘이 먼저 저녁 먹어."

하루종일 온 집안을 들썩거리게 한 결과물의 심사를 맡아야 할 아버지가 최종 심사에 불참을 선언하면서, 지난 주말의 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약간 허무한 결말이었고, 몸은 다소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의미있고 보람있는 주말이었습니다.

더욱더 중요한 건, 온갖 요리를 배우겠다면서, 속성 코스만 고집하는 제가, 여자친구의 등장으로 진정한 손맛을 내기 위해 필요한 기나긴 인내심의 시간을 배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곧 제가 만든 멋진 요리도 선보일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곧 제가 하는 요리가 옵니다. 기다려주십시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