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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일이 일어난 지 벌써 2년이나 되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지구대 소속 양훈모(35) 경장이 지구대 앞에서 차량절도범 검거를 위해 검문을 하던 중 도주하던 차량에 의해 의식불명이 된 사건이 말이다.

당시엔 순경이었던 양 경장은 승진시험에 합격해 임용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경장이 된 줄도 모르고 2년째 병상에 누워있다가 지난 12월 천직으로 삼고자 했던 경찰직을 그만둬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그가 소속되어 있었던 예산경찰서에서는 그를 '양 경장'이라고 부른다. 예산경찰서 사람들은 1999년 6월 12일, 경찰 입문과 동시에 예산경찰서로 발령 받은 이후 5년 동안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을 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사고 직후 의식불명상태였던 양 경장은 치료를 받으면서 다른 이들의 말을 알아듣고 반응하는 등 차도를 보였지만 그 이상의 회복은 매우 더뎌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 양경장이 병상에 누운지 2년여, 사고가 나기 전 양경장은 성격이 쾌활하고 붙임성이 좋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원안의 사진은 사고 전 양경장의 모습)
ⓒ 장선애
그의 처음 병명은 '외상성 뇌손상으로 인한 식물인간'이었다. 사고 9개월여 만에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 그였지만 한 병원에서 2개월 이상 입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서울, 천안, 대전 등지를 오가며 치료를 계속했지만 병원들마다 병상이 부족해 재활치료를 위한 장기입원은 꺼렸다.

현재 대전건양대병원에 입원중인 그는 동료경찰관들이 방문하면 알아본다고 한다. 무언가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말이 되어 밖으로 나오지는 않아 주위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다고. 몸은 여전히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한다고 한다. 그가 그렇게 재활을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국가공무원법과 경찰공무원복무규정에 따라 2004년 11월 8일자로 공상휴직발령이 나고 그 후 1년 뒤까지도 회복이 안 되자 2005년 12월 초 그의 부인이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의 소식은 부인인 천정미씨와 동료경찰관들에 의해 예산경찰서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간간이 전해지고 있다.

주민치안을 위해 몸 바쳐 일하다 쓰러진 젊디젊은 경찰 양훈모는 그 사이 일반주민들의 기억 속에서는 사라져 갔다. 아마 주민들은 병상에 누워있는 그의 치료비와 생계비를 당연히 국가가 책임져주는 줄로만 믿고 뇌리에서 지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와 그의 가족들이 싸우고 있는 것은 전신마비라는 고통만이 아니었다. 의료보험을 적용해도 본인부담금이 수천 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와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도 이들에게 닥친 냉혹한 현실이다.

공무상 특수요양비 등의 기준이 그동안 '전투훈련중'에만 해당돼 양 경장이 그 대상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양경장의 공상과 서울청 형사 순직사건 등을 계기로 그 대상이 '전투훈련 및 일반직무집행중'으로 확대, 추진됐지만 이마저도 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소급적용을 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예산경찰서를 비롯한 경찰동료들이 십시일반 모은 정성을 전달하기도 했으나 일시적인 성금으로는 막막하기만 한 현실이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 26일 동료경찰인 신충섭 경사가 양 경장 후원회를 구성해 지속적인 후원계좌를 마련하자는 제안을 하고 이어 정능용 경무계장이 호소문을 올리면서 경찰서 내에는 다시 한번 양 경장을 돕기 위한 운동이 번지고 있다.

기자는 양 경장에 대한 취재에 앞서 예산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보도됐던 기사를 검색하다가 깜짝 놀랐다. '양훈모'라는 이름으로 보도된 기사가 그 사건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2002년 2월 26일 대흥파출소에 근무하던 양훈모 순경이 목검문을 실시해 한우상습절도범 검거에 공을 세웠으며 그 후 유공표창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에도 양 순경과 그 동료경찰의 빠른 판단과 실행이 없었다면 검거에 실패, 농민들의 피해가 더 컸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대흥과 신양, 덕산 등 민생치안 최전선에서 뛰면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열정'만이 아니다. 그가 사고를 당하기 열흘 전 예산경찰서 홈페이지에 한편의 글이 올랐다.

"밤늦게 폭설로 교통이 끊겨 발을 구르던 어머니를 순찰차로 봉산면 금치리까지 태워다 주시고 이름을 알리는 것까지 사양한 젊은 경찰관을 찾는다. 친절하고 예의 있는 예산경찰이 자랑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주인공은 바로 양 경장이었다.

주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경찰, 그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려 노력하며 5년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즐겁게, 따뜻하게 일하던 한 젊은이가 근무 중에 사고를 당했다. 그러나 그와 그의 가족들은 국가로부터 온전히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예산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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