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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준비하는 사람'이다. …(중략)…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 역시 대통령이 오래 전부터 예정하고 준비해온 사안 가운데 하나이다. 대통령이 유시민 의원의 입각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7월 정동영, 김근태 장관을 입각시킬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통령은 당의 차세대 또는 차차세대를 이끌고 갈 지도자의 재목으로 정세균, 천정배, 유시민 의원 등을 주목하면서 장차 이들을 입각시켜 국정경험을 풍부하게 쌓도록 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알려진 윤태영 청와대 연설기획비서관이 8일 청와대홈페이지에 올린 '준비하는 대통령'이라는 글(국정일기)의 일부이다. 이와 같은 메시지는 노 대통령이 당에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한 것으로 해석된다.

요컨대 이 글의 핵심 메시지는 노 대통령이 2004년 7월 여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분류되는 정동영·김근태 전·현직 의원을 입각시킬 때부터 이미 '유시민 카드'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차기 대권 후보 배양론'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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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 대통령에게 유시민 의원을 복지부장관으로 제청한 이해찬 국무총리는 지난 5일 MBC < 100분 토론 >에 출연해 유 의원 입각은 대선구도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강조했다.

이 총리는 이날 토론에서 "유 의원은 독일에서 사회정책을 공부했고, 제 보좌관 시절에는 국가재정을 공부했으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에 집중한 점 등을 고려해 임명한 것"이라며 "장기적인 대선구도를 (염두에) 두고 (임명)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총리는 이번 사태를 '제3의 대권주자 옹립'으로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 대통령을 해양수산부장관에 앉힐 때 그가 대선후보가 될 것으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그 사례와 비교하는 것은 (정치적) 상상력을 최고조로 발휘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결국 유 의원을 장관으로 제청한 총리의 말과, 유 의원을 장관에 내정한 대통령의 '복심'의 말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윤 비서관은 '국정일기'에서 이런 얘기도 덧붙였다.

"대통령의 이러한 판단은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가 레임덕을 두려워해 차세대 지도자를 키우는 데 소극적이어서는 안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통령 자신이 국민의 정부 시절 해양수산부장관을 역임하면서 국정의 경험을 체득했듯이, 차세대그룹에게는 가급적 기회를 열어주면서 경륜을 쌓도록 해야 한다는 확고한 인식이다. 앞으로도 대통령은 앞서 언급한 인사들 외에 우리 정치의 미래를 이끌어 갈 차세대그룹을 기회가 되면 적극 기용할 생각을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이 윤 비서관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어쩌면 이 대목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비서관은 이어 "유 의원의 입각을 둘러싸고 갈등이 적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이처럼 '준비하는 대통령'이 오랫동안 검토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더이상 소모적인 정치적 논란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끝맺었다.

열린우리당에서는 현재 2·18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부겸·김영춘·송영길·임종석 의원 등 재선의원들이 '40 기수론'을 내걸고 당권 도전의 출사표를 준비하고 있다. 결국 이 메시지는 노 대통령이 앞서 언급한 인사들(정세균, 천정배, 유시민) 외에 우리 정치의 미래를 이끌어갈 차세대그룹을 기회가 되면 적극 기용할 생각을 갖고 있으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리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에서 당·청간의 의사소통의 부조화가 발생한다.

열린우리당의 서명파 18인은 지난 4일 발표한 '입장' 제1항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을 존중하되 충분한 사전협의"를 거론하면서 제2항에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참여정부의 책임있는 공동주체다"고 선언했다. 공동책임과 함께 권한도 공유하자는 것이다.

이들은 "따라서 당은 청와대의 입장을, 청와대는 당의 입장을 상호 존중하되 남은 임기동안의 국정 목표를 명확히 공유하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바탕으로 각 부 장관들에 대한 인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 대통령의 '독주'에 더는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 위기 해결'을 최대의 개혁으로 여기는 대통령과 '정권 재창출'을 최고의 개혁으로 삼는 당과 의원들의 입장은 처음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서명파를 주축으로 열린우리당 내에 형성된 유시민 의원 입각에 대한 '공개 반대'는 구실일 뿐이고, 실제로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구상 및 방식에 대한 '반대'가 표출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런 점에서 '순번을 기다리라'는 청와대의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당·청간의 대립양상은 2·18 전당대회 시기까지 각각의 정파들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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