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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트렌디 드라마의 한계는 지나친 소재주의다. 볼거리에만 발목이 잡혀 비현실적인 설정과 안이한 플롯이 넘쳐난다.
SBS 트렌디 드라마의 한계는 지나친 소재주의다. 볼거리에만 발목이 잡혀 비현실적인 설정과 안이한 플롯이 넘쳐난다. ⓒ SBS
<파리의 연인>이나 <프라하의 연인>처럼 얼핏 보기에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소재를 로맨스의 공식으로 풀어내는데 독보적이던 SBS에게 있어서 인생역전, 신분상승의 환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의 설정은 그야말로 SBS 트렌디 드라마의 스타일에 딱 맞는 소재였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소재주의 그 자체에 있다. 단순한 게임의 법칙을 반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리얼리티 쇼와 달리, 드라마는 좀더 다원화된 갈등구조와 에피소드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SBS 트렌디 드라마의 한계는, 보통 초반에 독특하고 자극적인 설정으로 시선을 끌지만 중반을 넘어서기도 전에 벌써 가진 밑천을 다 드러내놓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역시 SBS 트렌디 드라마의 전통적인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원작의 설정을 따라, 리얼리티 쇼의 가짜 백만장자 역할을 연기하게 된 영훈(고수)과 어린 시절 첫사랑 은영(김현주)이 재회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 구도, 시청률 지상주의에 눈이 먼 방송사의 음모 등이 개입된 해외에서의 초반부는 제법 흥미진진했다.

리얼리티 쇼가 끝나고, 무대가 다시 한국으로 옮겨온 7회를 기점으로, <백만장자와 결혼하기>는 이미 보여줄 만한 것을 다 소비한 채,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급급해 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다보니 인물들의 상황이나 선택에 대하여 필연성이 떨어지는 설정이 한둘이 아니다.

은영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리얼리티쇼에 참여하게 되는 과정이라든가, 방송이후 영훈과 은영이 부득이하게 계약연애를 하게 되는 설정. 영훈의 짧은 성공과 스캔들로 인한 위기 등은 억지로 이야기를 끌어나가기 위해 작위적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고수와 김현주의 스타 파워는 시대착오적인 캐릭터에 가려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
고수와 김현주의 스타 파워는 시대착오적인 캐릭터에 가려서 빛을 발하지 못한다. ⓒ SBS
드라마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주인공 캐릭터의 매력이 신세대에 맞지 않게 너무나 고루하다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항상 타인을 위해 희생만 하는 선한 영훈의 캐릭터는 너무 답답해서 미련해보이고, 초반 쾌활하고 억척스러운 것 같았던 은영의 캐릭터 역시 주위 환경과 남자들의 선택에 따라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수동적인 여성상에 머물고 있다.

사각관계의 축을 형성해주어야 할 유진하(윤상현)과 정수민(손태영)의 비중이 애매하다는 것도 지적할 부분. 특히 이젠 제법 오래된 경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사 소화가 '낭독의 발견'인 손태영의 연기는 극의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초반에 설정되었던 감초 조연들을 활용하지 못한 채 고루한 사각관계에만 매달리고 있는 드라마의 전개는 중반을 넘어서며 생기발랄함을 잃고 '우울 모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화나 단막극에나 어울릴법한 설정을 무리하게 16부~20부작 규모의 미니시리즈로 만들겠다는 근시안적인 소재주의가 오히려 이야기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결국 긍정적인 신세대식 로맨스의 모습도, 이렇다할 볼거리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이 드라마를 통하여 과연 제작진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역시 인생은 한 방이다? '백만장자와 결혼하기'처럼 기회에 있을 때 인생역전의 찬스를 놓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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