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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생계 점포를 강제철거당한 서울 청량리수산시장 일부 상가 세입자들이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101일째 천막농성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생계 점포를 강제철거당한 서울 청량리수산시장 일부 상가 세입자들이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101일째 천막농성하고 있다 ⓒ 석희열
강제철거를 놓고 비와이씨(BYC)와 마찰을 빚고 있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1동 청량리수산시장 일부 상가 세입자들이 넉 달째 길바닥에서 천막농성하고 있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이들이 한뎃잠을 자는 이유는 그동안 장사를 하던 생계 점포가 강제철거되면서 생활터전을 잃었기 때문이다. 양쪽의 갈등은 비와이씨가 2004년 2월 23일 청량리수산시장 상가가 딸린 부동산 550평을 사들이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곳은 서울시가 2003년 12월 도시공간구조의 다핵화를 추진하면서 시 조례로 지정한 청량리 균형발전촉진지구에 포함된 곳.

비와이씨는 이틀 후인 2월 25일 세입자들에게 상가를 비워줄 것을 통보했으나 입주상인들이 이를 거부하자 명도소송을 제기해 2005년 5월 승소했다.

2005년 7월까지 5차례 진행된 협상에서 입주상인들은 점포에 따라 500~3000만원의 이주대책비와 함께 2006년 6월까지 영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조건을 제시했고 비와이씨 쪽은 이주대책비 300~1500만원, 영업기간 2005년 12월까지로 맞섰다. 결국 비와이씨는 9월 3일 자사 소유의 22개(비어 있던 점포 6개 포함) 점포를 모두 강제철거했다.

재산피해 보상 요구 100일째 농성

졸지에 철거민 신세가 된 입주상인들은 "예고도 없이 강제집행하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며 거세게 반발했지만 이 가운데 13명은 개별 협상을 통해 투쟁을 포기하고 나머지 세 사람만 남아 지난해 9월 26일부터 철거현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재산피해 원천 보상 ▲강제철거에 대한 공식 사과 등을 요구하며 101일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두 평 남짓한 비닐천막에서 석유난로 하나로 영하의 한파를 견디고 있다
이들은 두 평 남짓한 비닐천막에서 석유난로 하나로 영하의 한파를 견디고 있다 ⓒ 석희열
3일 밤, 이들이 농성하고 있는 비닐천막을 찾았다. 두어 평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냉기가 콧잔등을 할퀴었다. 이들은 전기가 없어 휴대용 발전기로 불을 밝힌 천막에서 석유난로 하나로 추운 겨울을 버티고 있었다.

강제철거는 이들의 가정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의 수입이 없어진데다 가족들이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져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 21년간 장사하던 생선가게를 철거당한 이흥연(46)씨의 경우 부인과 아이들이 생활고를 피해 절로 들어가 있다.

이씨는 "비와이씨 쪽에서 명도할 때는 반드시 그 시기를 사전에 통보하고 2005년 12월 말까지는 장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해 안심하고 있었는데 추석 대목에 갑자기 집행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예고없이 강제집행해 피해 커져

16평 생선가게를 운영했던 신익균(37)씨는 "재산권 행사도 중요하지만 법 이전에 인간을 먼저 생각해야 되는 것 아니냐"며 "비와이씨의 재산권 행사로 하루 아침에 점포를 빼앗기고 엄동설한에 다 굶어죽게 생겼다"고 하소연했다.

가구점을 철거당한 이근수(56)씨의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 이씨는 물건값만 5000만 원의 손실을 봤다. 보증금도 5500만 원 가운데 5400만 원은 이른바 '깔세'(임대할 때 임대 기간만큼의 돈을 한꺼번에 지불하는 월세) 등으로 물고 겨우 100만 원만 건졌다.

박정복 빈민해방철거민연합 조직국장은 "충분한 협상을 통해 적절한 보상이 먼저 이루어져야 했음에도 비와이씨가 강제철거부터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상가 세입자들의 보상 요구가 계속해서 묵살된다면 대규모 집회 및 1인 시위 등을 통해 비와이씨를 압박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9월 3일 서울북부지방법원이 300여 명의 용역인력을 투입해 명도집행을 실시하자 이에 항의하는 입주상인들이 하늘색 모자를 쓰고 있는 용역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2005년 9월 3일 서울북부지방법원이 300여 명의 용역인력을 투입해 명도집행을 실시하자 이에 항의하는 입주상인들이 하늘색 모자를 쓰고 있는 용역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석희열
비와이씨 "강제집행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

그러나 비와이씨 쪽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강제집행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입주상인들의 재산 피해 보상 요구에도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종복 관제부 과장은 "큰 돈을 들여 땅을 사놓고 재산권 행사를 마냥 미룰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협상을 통해 원만히 해결하려 했지만 입주상인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 어쩔 수 없었다"고 강제집행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그는 "이사비용과 영업기간 연장에 대해 의사 타진을 해봤지만 입주 상인들간에도 의견 차이가 커 합의할 수가 없었다"고 강조하고 "철거당한 사람들한테는 도의적으로 안타깝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안 과장은 이어 "상인들에게 보관창고에 있는 물건을 찾아 가라고 해도 안 찾아가고 있다"면서 "합법적 강제집행에서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면 법에 따라 정식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의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재개발이라는 이름하에 벌어지는 강제철거로 원주민들이 생계를 온전히 보장받지 못하고 밀려나는 것은 모순"이라며 "지역에 사는 사람들 위주로 지역 개발이 진행될 수 있도록 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들의 상권보장 및 생계 대책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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