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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조림을 위해 등장한 간장은 곧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감자 조림을 위해 등장한 간장은 곧 구경꾼으로 전락했다. ⓒ 양중모
그래도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잘라야지'라는 결심을 세우는 순간, 내 눈에 확 들어오는 감자 요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감자튀김!'이었다. 사실 감자조림을 하기 위해 삶는 과정이 있어 기다리는 게 싫었던 내게 감자를 물에 담가두고 기다려야 한다는 감자튀김도 그리 구미에 당기는 요리는 아니었다.

만약, 누군가가 '감자를 자르고, 기름을 두르고, 튀긴다'는 아주 간단한 요리법을 써놓지 않았다면, 아주 오래 세월을 베란다에서 세탁기와 대화했을 감자는 쓰레기통과 열렬한 사랑에 푹 빠지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결심했어. 감자튀김을 하는 거야.'

'남자가 뭐 그렇게 잘 삐지고, 변덕을 부리냐'며 '그래서 여자친구 사귀겠냐'는 어머니 말이 떠올랐지만, 이건 '변덕이 아닌 선택'이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쨌든, 감자를 손에 쥐고 껍질을 칼로 벗기려고 하는 순간, 다소 난감한 기분이 들었다. 감자를 아무렇게나 팽개쳐 놓아 싹이 났는데, '싹 난 감자 먹으면 독 있어 죽어'라는 친구의 말이 번쩍 스치고 지나갔다. 초등학교 시절 자연을 무지하게 싫어했던 난, 수능을 위해 꼭 봐야 할 생물도 심하게 싫어했기에,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길이 없었다. 순간 두려움에 사로 잡혔고,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본래 이 상태에서 꽤 기다려야 하지만, 배고픔에 넣자마자 빼버렸다.
본래 이 상태에서 꽤 기다려야 하지만, 배고픔에 넣자마자 빼버렸다. ⓒ 양중모

"야, 싹 난 감자 먹으면 죽어?"
"응."

"그러면 그 감자 싹 자르고 먹으면 괜찮아?"
"어 괜찮아."

그런 바보 같은 문답을 할 바에야 차라리 인터넷을 이용해 물을 걸 그랬다. 그 후에 포털사이트들을 배회하는 도중 '감자 싹 난 거 자르고 먹었다가 식중독 걸렸다'는 글을 보고 그 친구가 '날 미워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도 잠시, 결국 감자튀김을 해먹은 난 왜 멀쩡할까라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야 했다.

어쨌든 감자 싹을 잘라내고 감자 껍질을 벗기고, 감자를 잠시 물에 담가 불리는 작업까지 마쳤다. 다음 작업은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잠시 가열한 후, 감자를 올려 튀기는 것이었다. 이 작업만 끝나면, 맛있는 감자튀김을 먹을 수 있으리. 처음엔 어머니 손맛을 재현하겠다는 굳건한 결심을 하고 감자를 꺼내 칼을 잡았지만, 감자를 프라이팬 위에서 튀기면서 내 머리 속의 감자튀김은 점차 '패스트푸드표 감자튀김'으로 변해갔다.

위가 노릇노릇 익었다는 판단이 들 무렵 재빨리 불을 껐다. 지난 번 계란말이처럼 다 태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좋아 이번에는 성공이군!'라며 기분 좋게 감자튀김을 한 입 베어 먹는 순간, 저절로 "으…"라는 소리가 나오며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겉으로는 노릇노릇한 것이 맛있어 보였지만, 속은 전혀 익지 않았던 것이다. 감자는 살짝만 해도 금방 익는 계란말이가 아닌지라, 속까지 적절히 익혀야 하는데, 태우지 않겠다는 생각에 제대로 익히지 못했던 것이다. 하긴, 좀 더 프라이팬에 오래 둔다 해도 속까지 잘 익힐 자신은 없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고 한 쪽이 검은 색으로 변하자 마자 껐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고 한 쪽이 검은 색으로 변하자 마자 껐다. ⓒ 양중모
어머니가 했을 때는 어떤 음식이든, 금방 금방 쉽게 하는 듯했는데, 정작 만들어 먹으려니 요리 난이도가 최하라는 것들도 이렇게 만들어 먹기가 힘드니... '요리는 정성이다'라는 것이 그저 요리 만화책에서나 나오는 얘기인 줄 알았건만, 실제로도 그런가 보다.

내가 이렇게 연전연패하는 동안, 아버지는 김치찌개도 된장국도 심지어 수제비까지 만들어내는 신기를 보이고 있는데, 어째서 난 그렇지 못할까. 뭐 물론 아버지가 만든 음식들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김치찌개는 의외로 맛있었다.

'부전자전'이라는 말도 있는데, 어찌하여 이리 요리가 어렵단 말인지. 아버지는 반찬 가게에서 멸치 볶은 것을 사다 드시면서 그 맛을 재현하겠다고 연구 중이신데, 나도 그래야 할까.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요리를 만드신 후 내게 '괜찮지?'라는 질문을 꼭 하시곤 한다. 아마 그건 자신뿐 아니라 자식들도 함께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지금 어머니 손맛을 재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요리법이 숙달되지 못해서라는 표면적 이유보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드셨던 어머니의 그 마음을 전혀 이어받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당신의 남편, 아이들이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뜩 담겨 있었기에, 그러한 마음으로 준비하셨기에 나처럼 대충 재료 준비하고, 대충 만들지 않았기에 가족 모두를 만족하게 했던 맛이 나온 것이었으리라.

내가 만든 요리를 아버지가 드실 리는 만무하고, 일단 나 자신을 사랑하니까라는 이유로 다음 작품을 만들어 봐야겠다. 3년 이내에 내 가정을 만들어, 나도 사랑 넘치는 요리를 만들어 사랑 받는 남편, 사랑받는 아빠가 되고 싶으니, 더욱더 절치부심하련다.

덧붙이는 글 | 세 번째 도전 음식은 된장국인데, 잘 되려나 모르겠네요. 그냥 빨리 결혼 해버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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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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