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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해를 서로 축복하면서
지난 한해를 서로 축복하면서 ⓒ 유성호
신발은 더 이상 놓을 자리가 없어 신문지를 깔고 2층으로 쌓는다. 겨울의 두툼한 외투 역시 만만치 않은 짐이다. 벗어 놓은 외투가 작은 방을 겹겹이 채웠다. 여자들은 주방에서 저녁 상을 차리기 바쁘고 아이들은 한 방에 몰려 들어가 또래끼리 어울려 게임이나 책을 본다. 모임의 주체인 남자들은 자리를 잡고 찬송과 기도, 그리고 서로에게 축복을 내리는 찬양으로 성탄의 의미를 되새긴다.

출장부페가 울고 가는 '포틀럭 만찬'

이번 모임의 하일라이트는 각자 집에서 한가지 음식을 장만해 나눠 먹는 '포틀럭' 만찬. 주인 집에서 60명 분의 음식을 준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초대받은 사람들도 '입만 달고가는 것'이 미안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는데, 좋은 아이디어였다. 사전에 필요한 음식 목록을 정하고 각자 한가지씩 맡아 당일 들고 오면 된다.

각자가 준비해 온 음식, 포틀럭 파티
각자가 준비해 온 음식, 포틀럭 파티 ⓒ 유성호
주인 집에서는 밥과 국 그리고 바다의 우유인 싱싱한 굴을 준비했다. 손님들이 준비해 온 음식 꾸러미를 풀자 야채샐러드, 팔보채, 잡채, 통닭, 닭찌개탕, 골뱅이무침, 김밥, 각종 전(煎), 피자 등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 집에선 마침 처갓집에서 보내 준 도토리 가루가 있어서 도토리묵을 준비했다.

음식들을 식탁에 올려 놓으니 웬만한 뷔페음식을 능가했다. 게다가 손수 정성을 다해 준비한 음식이다보니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얼추 올 만한 가족들이 다 모이자 식사를 시작했다. 교회에서 빌려 온 커다란 접시에 뷔페식으로 음식을 담아 먹었다. 보탬없이 표현하자면 '그래~ 이 맛이야!'였다.

비장의 엉덩이 춤을 보여주마!
비장의 엉덩이 춤을 보여주마! ⓒ 유성호
속이 노란 배춧잎에 초장을 바른 싱싱한 굴을 올려 놓고 한 입 베어물자 육지와 바다의 싱그러운 향기가 뱃속까지 퍼진다. 거기에다 얼큰한 닭찌개탕 국물과 잘 익은 감자를 털어 넣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음식 맛에 숨은 서로의 정성에 감사하면서 함포고복의 식사시간을 마치고 후식을 먹으면서 준비한 선물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이 시간에 사람들은 1만 원 미만의 선물을 주며 받는 이에게 여러가지 '주문'을 했다. '가족과 함께 노래하며 춤추기',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뽀뽀하기' 등 재미난 주문들이다.

함께 하는 가족은 아름답다
함께 하는 가족은 아름답다 ⓒ 유성호
선물 나누기는 '해적칼꽂기' 장난감을 이용해 당첨되는 사람이 가장 먼저 원하는 선물을 골라갔다. 가장 먼저 당첨된 이가 고른 선물은 자기로 만든 접시세트. 마침 미혼이라서 혼수에 보태면 되겠다며 이구동성으로 내년에는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기원했다.

폭소만발 가족 장기자랑

선물을 받은 가족들은 주문카드에 써있는대로 재미난 장기를 발휘했다. 온 가족이 율동을 곁들인 노래를 부르거나 그동안 갈고 닦았던 비장의 엉덩이춤까지 보여주는 등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즉석에서 데뷔한 화랑대시스터즈의 공연
즉석에서 데뷔한 화랑대시스터즈의 공연 ⓒ 유성호
그 사이 초등학교 저학년 또래 여자아이 세 명은 다른 방에서 자기들만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어른들을 위해서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갸륵한 마음의 발로다. 교회에서 배운 찬양에 화음까지 넣고, 그것도 모자라 앙증맞은 율동으로 어른들의 혼을 빼놓은 이른바 '화랑대 시스터즈'. 열정적인 공연이 끝나자 앵콜은 끝없이 이어졌고 이들은 혼신을 다해 커튼콜을 모두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웃고 또 웃고, 그리고 서로에게 감사하며 보낸 저녁시간은 동지 무렵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짧았다. 마지막으로 성탄노래 메들리를 부르면서 구주 오신날을 축복했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축복과 가족의 사랑을 재확인했다.

60여명의 가족이 모여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고 축복했습니다
60여명의 가족이 모여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고 축복했습니다 ⓒ 유성호
준비해 온 음식은 모자람 없이 깔끔하게 비워졌고 빈 그릇을 챙기는 시간, 마음은 넘치는 복으로 모두 채워져 있었다. 내년에는 소원하는 모든 기도가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나누고 헤어지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겨울은 간 데 없고 사위가 훈훈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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