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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이 21일 새만금 사업을 지속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전북 부안군 계화도 주민 100여명이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이 21일 새만금 사업을 지속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전북 부안군 계화도 주민 100여명이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안윤학

21일 서울고등법원 제4특별부(부장판사 구욱서)가 "새만금 사업을 계속하라"는 판결을 내리는데 걸린 시간은 채 5분도 안됐다.

오후 1시 30분부터 시작된 재판에서 "원고 쪽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는 판결문이 낭독되자 서울고법 309호에 빼곡히 들어찬 100여명의 방청객들 사이에서 나직한 환호와 탄식이 교차했다. 재판을 바라보던 30여명의 기자들은 일제히 휴대폰을 열고 회사에 최종 선고 결과를 보고했다.

전북도청은 승리의 'V' - 환경단체는 패배의 '한숨'

전북도청의 대리인으로 재판장에 모습을 나타낸 이석연 변호사는 판결이 끝난 뒤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변호사는 취재에 나선 기자들을 향해 손가락으로 승리의 브이(V) 자를 만들어 보였다.

이 변호사는 자신감에 찬 어조로 "1심 판결은 법리에 충실하지 못한 판결이었는데 이번 고법 판결은 법리에 아주 충실한 판결이었다"며 "원고가 대법원에 상고하더라도 이길 것을 확신한다"고 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 변호사 옆에서는 최수 전북도청 환경보건국장이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축하 전화를 받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최 국장은 지난 5년 동안 실질적으로 새만금 사업을 지휘해 '새만금 구원투수'로 불리는 인물.

최 국장은 "이번 판결로 전라북도에 획기적인 경제 발전의 발판이 마련됐다"며 "환경과 개발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 지켜봐달라"며 다소 상기된 얼굴을 보였다. 최 국장 역시 이 변호사처럼 "대법원의 판결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확신에 찬 모습이었다.

반면 '패배'를 당한 환경단체는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재판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곧바로 대책회의를 열어 상고할 뜻을 밝혔다.

최열 환경재단 상임이사는 "이번 판결은 21세기에 역행하는 판결"이라며 "유럽은 갯벌의 생태적 가치는 물론 경제적 가치를 인정해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름다운 갯벌을 파괴하고 있다"고 비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최 상임이사 바로 옆에서는 이석연 변호사가 자신에 찬 어조로 기자들과 재판 승리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 변호사를 바라보는 최 상임이사의 표정은 매우 참담해 보였다.

상경한 어민들 '눈물'

21일 새만금사업 재개판결이 나온 뒤 계화도 주민이 법원 복도에 조개껍질을 뿌린 뒤 짓이기고 있다.
21일 새만금사업 재개판결이 나온 뒤 계화도 주민이 법원 복도에 조개껍질을 뿌린 뒤 짓이기고 있다. ⓒ 오마이뉴스 박상규
이날 재판 때문에 일찍 상경한 새만금 인근 계화도 주민 100여명도 진한 아쉬움의 눈물을 삼켰다.

주민들은 재판이 끝나자마자 환경단체 회원들과 함께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의 판결을 규탄했다.

이들은 "법원이 바다와 갯벌에 의지해 살아가는 지역주민들의 삶을 무참히 짓밟았다, 경제적 개발 논리에 우리 어민들의 삶은 처음부터 철저히 배제됐다"고 탄식했다.

장승구 계화도 청년회장은 "바다는 우리의 직장이며 삶의 터전이다, 대법원에서 지면 고향을 잃는 것이기에 끝까지 투쟁해 고향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앞서 계화도 주민 10명은 서울고등법원 2층 로비에서 "새만금 사업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계화도의 한 주민은 망태에 조개껍질을 가득 채워와 법원 복도 바닥에 뿌리고 짓이기기도 했다. 법원 관계자들이 이들에게 "밖에 나가서 집회를 하라"고 요구하는 과정에서 한 때 작은 실랑이도 벌어졌다.

농림부 찾아간 주민들 "거대 농지 조성, 현실에 안 맞는다"

▲ 21일 오후 정부종합청사를 찾은 계화도 주민들이 경찰의 제지로 농림부로 못들어가게 되자 철조망에 매달려 있다.
ⓒ오마이뉴스 안윤학

21일 서울고법이 새만금 공사 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자 소송에 참여한 계화도 주민 70여명은 농림부를 찾아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이들은 서울고법 앞에서 항소심에 불복해 상고할 뜻을 밝힌 뒤 곧바로 과천 정부종합청사를 찾았다.

항의서한에서 이들은 "(새만금) 사업의 목적이 농지를 조성하는 것이 아님에도 왜 굳이 농림부가 나서서 방조제 공사를 강행하려 하는 것인지 납득할 수 없다"며 농림부가 새만금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우루과이라운드 쌀 재협상으로 기존 농민들도 농업을 포기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농림부가 새만금 사업으로 거대한 농지를 조성하겠다고 하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오후 3시 30분경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한 계화도 주민들은 청사 앞에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경찰이 "70여명 모두 종합청사에 들어갈 수는 없다"고 제지하자 이들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 왜 막고 나서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약 20여분간 대치 끝에 4명의 주민대표에게 종합청사로 입장이 허용됐지만,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아 끝내 농림부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주민대표들은 면회실 내 중앙홀에서 또 다시 20여분을 기다려서야 농림부 관계자를 만날 수 있었다.

1시간 가까이 대치하고 나서야 농림부 관계자를 만난 주민대표들은 "항의서한 전달조차 허락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농림부 관계자는 항의서한만 받아들고 곧장 자리를 떴다.

주민대표 중 한 명인 장승구(49) 계화도 청년회장은 "농림부가 막을 거라고 각오하고 왔기 때문에 실망이 크진 않다"며 "새만금 간척사업이 더 이상 정치가들에 의해 이용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안윤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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