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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먼저 왔는데도 내가 앉겠다고 고집 피우는 모습. 어린 시절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형이 먼저 왔는데도 내가 앉겠다고 고집 피우는 모습. 어린 시절에는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 양중모
그러다 내 말썽이 극한에 이르고 어머니가 아무리 말을 해도 듣지 않을 때면 어김없이 어머니 손에는 긴 구두 주걱이 들려 있었다. 아직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는다고 무조건 소리부터 지르던 기억이 난다. 당시 어머니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최근 모 방송국에서 하고 있는 아이의 못된 버릇을 고치는 프로그램을 보며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 심정을 가늠해보곤 한다. 내가 어린 시절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우리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당당히 7살에 TV에 데뷔하지 않았을까라는 엉뚱한 상상도 든다.

어머니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 내 허벅지를 구두주걱으로 때릴 때면 난 늘 '엄마,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며 울었다. 아프거나 무서운 일이 있을 때면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는 심리가 발동되었기 때문이겠지만, 당시 내 위기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은 엄마였지 않는가. 지금 생각해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내가 맞으면서 '엄마'를 애타게 찾을 때마다 어머니는 '엄마 앞에 있는데 엄마는 왜 찾아?'라는 그 말을 하곤 하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말은 '엄마'에서 '잘못했어요'로 바뀌던 기억이 난다. 어린 시절 엄마가 바랐던 말은 바로 '잘못했어요'였을테니까.

나는 이 어린 시절 맞을 때마다 했던 '엄마, 엄마'를 찾는 소리를 지난 여름 어머니가 세상을 뜨신 후 반년 동안 되뇌어야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은 내 자신도 놀랄 만큼 덤덤하고 차분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는 아무는 게 아니라 더 커졌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느꼈고, 그로 인해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00야 수능 시험 잘 봐라!"

쌀을 씻다가, 켜놓은 TV 속에서 한 어머니가 자식에게 들려주는 응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머리 속으로는 '수능 시험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쌀을 씻는 물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자 적잖이 당황했다. 솔직히 당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그냥 TV 속 장면과 쌀을 씻고 있는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내 가슴은 슬픔을 느꼈나 보다. 아마도 20년이 넘도록 자식 뒷바라지하느라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생각을 가슴이 먼저 했나 보다.

나름대로 요리했으나 다 태워버렸다.
나름대로 요리했으나 다 태워버렸다. ⓒ 양중모
"죽이네, 탔네, 짜네, 뭐 먹지? 아 귀찮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집안에서 빨래, 설거지 등은 주로 내가 담당해야 했다. 어머니가 아프실 때부터 해오던 밥이지만, 물 조절을 잘못해 죽이 되는 경우가 많았고, 혼자서 요리를 해먹는다고 난리치다가 태우고, 짜게 만드는 일도 제법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설거지나 청소 등도 깨끗이 하기란 생각보다 퍽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어머니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그렇게 깔끔하게 하셨던 것일까.

그래도 어떻게든 해나가고 있었는데, 드디어 대형 사고 하나가 터졌다. 어머니께서 '속옷 등은 매일 빨아라'라고 그렇게 충고했건만, 귀찮음을 견디지 못해 빨래를 쌓아두었다가, 한꺼번에 빨았고, 오랜만에 작동한 세탁기는 돌아가다 자꾸 멈추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A/S 센터에 전화해 세탁기가 왜 그런가를 물어보니, '배수하는 쪽이 얼어서 그러니, 녹여주어야 한다'는 답변을 해주었다. 그때부터 세탁기와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배수하는 호스를 빼서 뜨거운 물로 몇 차례 녹이고, 드라이기를 배수구에 갖다 대놓는 등 별 희한한 방법을 다 동원한 끝에 3일만에 세탁기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사실 요령만 있으면 금방 끝낼 일인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혼자서 별짓을 다 했다.

세탁기와의 전쟁을 끝마치고 나니, 또 절로 엄마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살아 계셨더라면, 이런 일은 애시당초 일어나지도 않았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약한 난, 또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엄마, 앞에 있는데 엄마는 왜 찾아?'라며 날 혼냈던 어머니를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지금도 내 곁에 계신지도 모르겠다. 그 어린 시절 회초리를 피하는 방법은 잘못을 인정하고 다음부터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었던 것처럼, 지금 내게 위기일발의 집안 일들을 피하는 법은 어머니가 가르쳐준 집안일 요령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 아닐까.

세탁기 배수구가 얼어 녹이려고 여러 노력을 했다.
세탁기 배수구가 얼어 녹이려고 여러 노력을 했다. ⓒ 양중모
어린 시절 어머니께 매를 맞을 때면 어머니는 늘 굳게 입을 다무시고 눈시울이 발갛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울음을 참고 계셨던 것 같다. 자식이 더 많이 잘못하기 전에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했지만 금쪽같은 자기 새끼이니 때리면 때릴수록 울면서 아파하는 모습을 보기란 퍽이나 괴로운 일이었으리라.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그렇게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커서도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 아들 걱정을 하셨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세탁기를 고장 내고 요리를 태워먹는 날 보면 편히 쉬시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5년 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머니와의 이별'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엄마, 엄마'를 부를 때는 아닌 것 같다. 새해가 오기 전에 어린 시절 '잘못했어요' 하던 마음으로 돌아가, 어머니가 가르쳐준 여러 지혜들을 잘 살려 나 자신을 물론이고, 집안일도 잘 챙겨야 하겠다.

내년에는 어머니가 하늘에서만큼은 마음 편히 쉬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덧붙이는 글 | <2005 나만의 특종 응모글>입니다. 한 친구가 사회적 유명 인사들이 세상을 뜬 것이 왜 특종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한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대답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그가 영향을 미친 사람이나 사회가 많았기 때문이거나, 또는 가슴이 훈훈해지는 업적을 많이 남겨 그 사람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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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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