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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팥죽이 제아무리 맛나다 한들 플라스틱 그릇에 담으면 먹지 않겠다.
이 팥죽이 제아무리 맛나다 한들 플라스틱 그릇에 담으면 먹지 않겠다. ⓒ sigoli 고향

새로 지은 건물에 두꺼운 유리가 끼워진 말끔한 식당 그곳에 과연 맛이 있을까?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건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과연 주방장은 어디서 왔을까? 김치는 손수 담가서 내놓을까? 문을 연 지는 얼마나 될까? 주인이 음식 재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했을까? 혹시 이 집에서도 단무지와 김을 반찬이라고 내놓으면 어쩌지? 갖가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요즘 TV 음식프로그램은 너무 시끄럽다

그렇다면 허름한 곳은 또 어떨까? 사람 발길이 뜸하다면 모를까, 대체로 주인 한 명이 있지만 손님과 음식, 주인장 손때가 무던히도 타 있다. 찌든 때다. 간혹 정장을 입고 나갔을 땐 먼지나 때가 묻을까 걱정이지만 최소 5년이 지난 세월과 함께 했다면 안심하고 들어간다.

왜 그 시간이 필요하다고 묻는다면 식당이 문을 열어 최소 석 달은 주위 친지나 동네사람들 어중이떠중이가 한몫 거들어 개업 턱을 톡톡히 볼지니, 시쳇말로 세 달 버티면 살아남는다는 이야기에 근거하여 오래 시간을 끌면 맛과 서비스, 질로 승부하여 실력을 갖췄을 것으로 믿는다. 몇 해를 버텨냈으니까.

강남이나 신촌, 분당, 일산까지는 신축 건물에 널찍한 실내에 모든 게 새롭다. 호객 행위를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신식으로 치장하여 한번 발을 디디면 와글와글 바글바글 촌놈 정신을 홀딱 빼놓고 음식을 먹으라고 한다. 또한 이렇게 문전성시 발 디딜 틈이 없어야 맛있다고들 하니 체인점이 아닌 단독 매장이라 하더라도 그 분위기로 계속 끌고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도 싶다.

여기에 요즘 텔레비전 음식 프로그램을 보고 있노라면 바삐 돌아가는 화면은 둘째 치고 다녀오지도 않은 성우가 카메라보다 시끌벅적하게 마구 떠들어대는 통에 여간하면 이젠 '좀 밥 좀 먹게 조용히 좀 하시오'라고 면박 아닌 내 권리를 당당히 찾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느릿느릿 느긋하게 요모조모 꼼꼼히 뜯어보도록 안내하고 결코 빠트리지 않아야 할 비법을 소개하는 게 더 적당하지 않을까?

모름지기 대사를 치르는 잔칫집에 손님이 주인이며 음식은 조용한 대화가 오가며 서로 먹으라고 챙겨주는 게 미덕이다. 아이들에게나 어른에게 좋아하는 쪽을 먼저 주고 자신은 바스라기를 먹어도 배 부르는 풍경 얼마나 좋은가.

물 따라 먹을 때도 순서가 있다. 먼저 찬물을 받고 조금 차 있으면 뜨거운 물을 받아 냉기와 온기가 적절히 섞이도록 해야 한다. 플라스틱 잔이었을 경우 절실하다. 우리 식습관과 음식문화가 더 차근히 발전하길 바라며 버려야 할 음식문화 몇 가지 경험을 가감없이 써보고자 한다.

비닐을 삶아주는 식당에서 어찌 먹을 수 있겠는가?

김 모락모락 나는 떡이 맛있는 철이지만 비닐로 덮고 뜨거울 때 플라스틱에 올려 놓으니 입맛이 싹 달아난다. 두부도 마찬가지다.
김 모락모락 나는 떡이 맛있는 철이지만 비닐로 덮고 뜨거울 때 플라스틱에 올려 놓으니 입맛이 싹 달아난다. 두부도 마찬가지다. ⓒ sigoli 고향
얼마 전 처가가 있는 전북 장수에 갔을 때다. 고만고만한 휴게소 음식 먹기가 지겨워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금산에서 한적한 국도로 갈아타고 여유롭게 식당을 찾고 있었다. 무주를 거치고 장계에 도착하는 동안 결국 발견하지 못하고 천천면에 이르렀다.

계곡이 좋기에 매운탕이나 다슬기국은 있을 법해서 소재지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다슬기 음식을 파는 곳을 찾았다. 2인분을 주문하여 놓고 손 좀 씻자고 하니 주방으로 들어오란다.

손을 씻으면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뭔가를 녹이려고 가스레인지에 물을 붓고 비닐 째 삶고 있는 게 아닌가. 물을 많이 잡지 않아 비닐이 프라이팬 위에서 탈 지경이다.

'어허 저러면 안 되는데. 뭘 하기에 팔팔 끓는 물에 저걸 담가서 끓일까?' 다시 훔쳐보니 그 안에는 우리가 시킨 다슬기 알맹이가 꽁꽁 언 채 시급히 녹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까지 본 이상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머니 저게 뭐예요?"
"예. 다슬깁니다."
"그럼 비닐을 삶는 거예요?"
"……."
"잠시 기다릴 테니까 찬물에서 녹이세요."
"예, 알았어요."

속으론 안절부절 못했지만 믿고 주방을 빠져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유명 연예인이 십수 년 전 다녀간 듯 벽엔 큰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내는 자신이 다닌 중학교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다가 밥 때가 되어 부르니 곧 되돌아 왔다.

2시를 훨씬 넘긴 때라 반찬을 먼저 깔아 달라하고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마침내 전혀 파르스름하지 않은 다슬기 국이 나왔다. 손님이 뜸하니 여기까지는 좋다. 후후 불어 아이들에게 떠먹이려는데 강제로 뜯은 듯 아까 그 하얀 비닐조각이 나오는 게 아닌가!

이때부터 난 도저히 먹을 맘이 나지 않아 이렇게 장사하면 되겠느냐고 일갈하고는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넉넉하게 잘 끓여달라기보다 기본은 지키며 끓여달라는 우리의 바람을 보기 좋게 무시했던 결과다.

아내나 나는 아이를 낳아 당장 건강에 적신호가 온다면 모를까, 크게 해가 될 일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환경호르몬 국물을 떠먹일 수는 없잖은가. 붉으락푸르락 잡친 기분으로 처갓집 식은 밥을 먹으러 떠났다.

압력솥에 플라스틱 국자를 1시간 이상 삶은 친구 아내

고운 양념 맛있는 양념에 플라스틱 국자가 담겨져 있으니 지글지글 끓고 있는 기름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보라.
고운 양념 맛있는 양념에 플라스틱 국자가 담겨져 있으니 지글지글 끓고 있는 기름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보라. ⓒ sigoli 고향
이런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일까? 예전 자장면 집엔 반죽할 때부터 주방장 기분에 따라 침뿐만 아니라 갖가지 오물이 들어간다는 근거 없는 말이 소문이 된 지 오래다. 외식이 잦고 포장음식 배달이 흔해지면서 버려야 할 게 하나 있다. 바로 비닐이다.

짬뽕이나 우동, 자장면을 그릇에 담고는 비닐 팩을 쭉 당겨 김이 빠지지 못하게 한다. 달달 볶은 음식과 한식도 남은 걸 싸달라면 마찬가지다. 무슨 해괴한 조화를 부릴지 모르고서 말이다. 그걸 맛있다고 집으로 가져오는 우리는 대체 어떤 생각들을 하고 사는 건가. 그래놓고는 아토피가 어떠니 새집증후군을 나무라는 한심한 세상을 살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친구네 농장을 관리하던 재작년 일이다. 닭백숙을 만들어 먹기로 하고 내가 오가피 등 약재와 찹쌀만 준비하면 버너와 솥, 닭 한 마리는 마련해 오신단다. 친구 가족과 어머니가 한참 김을 매고 있는데 그의 아내가 압력솥에 재료를 넣고 푹푹 끓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1시간이 너끈히 지나 배도 고파오고 땀이 범벅이었다. 손짓을 하자 우린 하던 일을 멈추고 득달같이 자리를 잡았다. 그릇과 수저를 나누고서 이제나 저제나 하며 기다리는데도 백숙이 차려지지 않는 거다.

"아가야, 왜 그러니?"
"예. 딴 게 아니라 국자가 없어졌어요."

사람마다 주위를 빙 둘러보았지만 찾을 길이 없었다. 젓가락으로 푸기로 하고 솥뚜껑을 열었다. 이건 또 뭔가? 친구 아내는 주황색 플라스틱 국자를 압력솥에 넣고 1시간 하고도 20여 분을 끓였던 것이다.

평소 나를 기절초풍하게 하는 건 펄펄 끓고 있는 상태에서 솥에 플라스틱국자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저 멀리서 보면 구미가 당기다가도 가까이 다가가 그걸 확인하면 입맛이 확 달아난다. 이맛살이 찌그러든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릇과 국자, 주걱만 봐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데 노글노글 녹기 직전이니 플라스틱 진액이 죄다 빠져나왔을 성 싶었다.

배고픔은 뒷전이다. 아랑곳 않고 아이들까지 퍼 담아 주는 할머니-친구 어머니는 또 뭐람. 분위기를 깰 수 없어 건더기 한 점에 소주만 연신 들이켜고 말았다. 왜들 이러는 걸까. 그 뒤로 그 집에 놀러 가고 싶은 맘이 싹 가시고 말았다.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식기를 버리자

국물에도 볶음이나 전을 가리지 않고 플라스틱으로 척척 해내는 솜씨 뒤엔 악마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국물에도 볶음이나 전을 가리지 않고 플라스틱으로 척척 해내는 솜씨 뒤엔 악마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 ⓒ sigoli 고향
나는 플라스틱과 비닐이 인체에 얼마나 유해한지 잘 모른다. 밥주걱과 그릇, 국자가 뜨거운 열을 받으면 얼마나 우리 몸을 열 받게 하는지 실험해 보지 않았다. 플라스틱과 비닐이 대량생산으로 마구 찍혀 나오니 편리하기 이를 데 없지만 주변을 한번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소비자는 그런 집에서 한마디쯤 하고 오는 것도 좋겠다. 주인이 기분 상하지 않게 "사장님, 다음에는 쇠로 된 식기로 차려주면 더 좋겠어요." 이 한마디를 못 알아들을 주인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단골집일수록 쉽게 바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음식점 주인도 이젠 과감한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납 김치와 기생충 알 김치가 터졌을 때 호들갑을 떨며 "우린 직접 담근 김치를 정성껏 차립니다" 따위보다 고객 건강과 위생을 최우선으로 가족에게 소중한 한 끼를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오늘은 자잘한 식품기자재를 마련하고 내일은 몹쓸 식기를 과감히 버리면 어떨까? 또한 누가 먹다 남긴 걸 포장해 달라고 하면 최대한 식혀서 포장하는 작은 노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정말이지 이젠 오염된 식품 그만 먹고 싶다. 덧붙여 주방과 식당에서 비닐과 플라스틱을 버리자. 이젠 더 이상 악마 같은 친구들이 만들고 차린 음식은 먹고 싶지 않다. 스티로폼 포장은 들먹여서 뭘 하겠는가. 정부에서도 식품에 사용 금지법을 만들 때가 되지 않았을까.

비닐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우리가 불쌍하다면 과장인가?
비닐 속에 갇혀 살고 있는 우리가 불쌍하다면 과장인가? ⓒ sigoli 고향

덧붙이는 글 | 김규환 기자는 인터넷고향신문 시골i 고향을 만들고 있다. 이달 말일 쯤 www.sigoli.com을 선보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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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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