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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천의 발원지에 대해서는 지리학상으로 정의한 학문적 규정도 없고 하천법에도 명문 조항이 없다. 그러므로 발원지를 밝혀보자면 강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면서 합수 지점을 만날 때마다 더 긴 물줄기를 본류로 잡아가기를 반복하면서 더 이상 지류가 보이지 않는 최고 상류 물줄기의 첫 물이 솟아나는 샘을 강물의 발원지로 삼는 상식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이론상으론 아주 간단명료해 보이지만 강물의 발원지를 규정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 혼란스러운 점은 발원지로 이의 없이 인정되는 곳도 막상 찾아가보면 용출 수량과 용출의 지속성 또 용출된 물이 강의 본류와 실제로 이어져 흐르는가 등을 따질 때, 과연 그 샘을 발원지로 삼아도 무리가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적은 수량이나마 샘은 솟지만 아무리 봐도 물줄기를 이뤄 흐르기에는 빈약해보여 일 년을 기다려도 물 흐름을 보기는 힘들 것 같은 샘이 있다면, 그 샘을 '물줄기로 강 본류와 이어진' 진정한 의미의 발원샘으로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 년에 일 회 이상 물이 흐른 흔적이 있는" 곳을 '하천'으로 치는 하천법상의 규정이 있으니 일 년 내내 물 흐른 흔적이 없는 곳을 물줄기로 강과 이어졌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임에도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고 발원지로 군림하는 경우가 큰 강에도 있으니, 이는 발원지의 자연 상징성을 사회적 관습으로 인정한 경우이겠다. 하늘의 강 낙동강의 진정한 발원지를 알고 싶다 진정한 발원지를 놓고 혼란스럽기는 낙동강도 예외가 아니다. 태백 시내 한복판에 있는 황지는 조선의 지리서들에도 낙동강 발원지로 적혀있고 관할 지자체인 태백시에서도 낙동강 발원지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황지에서 지도상 직선거리로 6.5km쯤 떨어진 함백산 은대봉의 '은대샘'(봉우리 이름을 딴 '은대샘'이 맞겠으나 지금은 너덜샘이 더 일반화되었다)을 많은 사람들이 발원지로 치고 있는데, 내막을 알며 모르며 이 주장을 따르는 지지 세력이 만만치 않다. 많은 인터넷 사이트가 낙동강 발원샘으로 황지는 아예 뺀 채 너덜샘 만을 알려주기도 한다. @IMG1@@IMG2@지금은 태백과 사북이 터널로 연결되었으나 두문동재(일명 싸리재) 옛 고갯길의 태백 쪽 7부 능선 도로 가에는 쉽게 눈에 뜨이는 식수대가 하나 있다. 식수대를 처음 세운 것은 주민들이라고 한다. 플라스틱 파이프로 샘물을 끌어다가 간이 식수대를 만든 것인데 그 식수대의 원수(原水) 출처가 너덜샘이다. 식수대 옆에 태백시가 세운 안내판에는 너덜샘이 낙동강 발원지로 회자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어떤 문구도 넣지 않아 낙동강 최상류 물이라는 의미심장함이 빠진 채 단순한 샘물로 격하되어 있다. 태백시가 낙동강 발원지로 계속 황지를 주장하고 싶더라도 최소한 '너덜샘을 낙동강 발원지로 삼자는 주장이 있으나 발원지로 보기엔 이러이러한 점이 미흡하다'는 안내라도 있어야 공공기관 안내판으로서의 공정성과 신뢰성이 있을 것이다. @IMG3@눈밭을 뚫고 식수대와 연결된 파이프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보니 파이프는 중간에 끊어진 채로 물만 계속 뿜어 나온다. 아마도 샘물 부근에 집수정을 만들어 간이 식수대와 연결시킨 모양인데 어쨌든 물은 너덜샘에서 솟은 물일 것이다. 갈수기임을 고려할 때 발원지가 아니라고 무시해버리기엔 끊어진 파이프에서 뿜어내는 수량이 아주 많아서 2리터짜리 생수병을 순식간에 채웠다. 노출된 검은 파이프를 따라 한참을 올라갔으나 계곡에 내린 눈이 무릎까지 빠져 여름에 찍힌 사진에서 본 기억만으로 눈에 묻혔을 작은 너덜샘을 찾기란 도저히 불가능했다. 황지가 역사적 현실적으로 낙동강의 발원지인 것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20년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이들에 의해 너덜샘이 낙동강 발원지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면 태백시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이치가 맞다. 게다가 관련 자료들은 근거가 체계적이고 주장도 논리적이다. 모두 외지인들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정성을 들여 실측하고 답사한 결과들이다. 황지와 너덜샘이 모두 태백시 관할 내에 있으므로 중요한 관광자원인 발원지를 타 시도에 뺏길 일이 아님에도 너덜샘의 발원지 논의를 꺼리는 태백시의 입장은 의아스럽다. 낙동강 발원지를 꼭 밝혀보자 전편 기사에서 황지를 "하늘의 연못"으로 표현했었다. 치기 어린 감상으로 황지를 격상시켜 그리 한 것이 아니라, 황지의 옛 명칭 '천황(天潢)'에 담긴 뜻과 황지에 대한 지역 노인들의 경외심에 가까운 증언 등을 토대로 상징적 수사를 붙여본 것이다. 단순히 낙동강 발원지라는 누대의 권위가 아까워서 너덜샘을 새로운 발원지로 거론하기를 꺼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치기 어린 소아적 행동이다. @IMG4@무수히 갈래를 뻗었을 함백산 지하수 물줄기의 하나가 지표로 나온 것이 너덜샘이고 그것이 낙동강 최상류 수계와 물길로 연계되어 있다면 다시 차근차근 조사를 해서라도 발원지를 밝혀보아야 할 것이다. 꼭 발원지를 밝히지 않아도 지리적으로나 행정적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강물의 발원지를 밝히는 일은 실체 이상의 의미가 있다. 발원지에서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까지가 강의 길이이다. 그러므로 발원지를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강의 공식적인 길이가 달라지므로 이런 면에서도 발원지를 규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낙동강의 길이는 1918년 일본제국주의가 측량한 525.15km부터 513.5km, 심지어 506.17km까지 낮게 잡는 등 자료마다 다르다. 강은 하난데 길이가 20km까지 다른 것이다. 우린 지금 내 땅에 흐르는 생명의 강이며 선조들이 '하늘이 내린 강'으로 여긴 낙동강의 길이도 잘 모르는 채 그 강에서 한국동란의 분수령이었던 다부동 전투를 치러냈고 그 강을 건너 마산의 4·19를 서울로 올려 보냈다. 낙동강의 길이가 어떠하든 발원샘부터 하구까지 강 모습이 달라질 일은 없다. 그러나 수준 높은 문명 국가였던 가락국의 동쪽을 흐른다 하여 낙동(洛東)이란 유서 깊은 이름을 얻은 낙동강의 근원샘을 밝혀보는 일은 결코 의미가 가벼운 일이 아닌 것이다. 강은 이 땅에 상징적으로 살아 숨쉬는 생명체의 하나이기도 하며 그 물은 그대로 민족의 생명수이다. 생명의 본류를 찾아 태생을 분명히 밝혀보고 싶은 것은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의 본능이기도 하다. 이 땅에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강물의 근원 샘을 밝혀보는 일은 한가한 자들의 신선놀음이 아니라 민족정기의 근원 샘을 찾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한반도의 왕성한 정기를 어떻게든 끊어보려고 일제강점기 시절 제국주의 일본은 이 땅 곳곳에 쇠말뚝을 박거나 아예 산줄기를 통째로 끊어버려 지맥을 자르고 수맥을 끊는 등 발악에 가까운 '추악'을 떨었다. 강물의 근원샘을 밝혀보고자 함이 어찌 한가한 자들의 놀이감이랴. 여러 가지 정황 증거로 보아 선조들이 '하늘에서 내린 강'으로 여긴 것이 분명한 낙동강. 이 낙동강의 진정한 출발지를 어디로 잡아야 마땅한지 자못 궁금하다.@TAG1@

덧붙이는 글 | 다음 편은 '금강'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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