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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 금요일(12월 16일) 아침이었습니다.사무실로 출근하기 위해서 이제 막 현관 문을 나서려는 순간,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은 제가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서울에 살고 계시는 큰형부께서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말부터 전합니다.

큰형부께서는 몇 년 전에 뇌수술을 한 적이 있긴 하지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이라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무슨 소리냐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실 수 있느냐고 되묻는 제게 동생은 형부께서 이미 보름 전, 중환자실에 입원하기도 했었는데, 큰언니가 친정 동생들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올해 연세 70이신 큰형부. 큰형부께서는 적지 않은 그 연세에도 법대를 졸업하셨지만 당신이 지닌 역량을 끝내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홀연히 먼 길을 떠나신 것입니다.

▲ 형부에게 가는 이른 아침, 멀리 아침 달이 떠 있습니다.
ⓒ 한명라
동생에게서 연락을 받은 다음날인 토요일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서울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려고 창원역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먼 산 위로 둥근 아침 달이 떠 있었습니다.

새로운 아침 해가 떠 오르는 시간인데도 아직 지지 않고 떠 있는 달이라니…. 아침 햇살 속에 그 빛을 잃어가면서 떠 있는 달의 모습이 웬지 예사롭지 않게 느껴져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동대구역에서 KTX로 갈아타고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에는 오전 11시 30분이었습니다. 다시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고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형부의 입관이 끝나 있었습니다. 아무런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 간 제 모습을 본 큰언니는 깜짝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올해로 연세 65세인 큰언니에게 까마득히 어린 동생이 무어라고 위로의 말을 건네야할지, 그 어떤 말로도 언니의 아픔을 달래 줄 수 없다는 것이 무척 난감했습니다. 서둘러서 형부의 빈소에 들어가 영정 사진 앞에 향불 하나 피워 올려놓고 두 번의 큰절을 드렸습니다.

늦은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언니 오빠들이 모인 자리에서 큰언니는 얼마 전 형부와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형부께서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계실 때, 그날도 언니는 하루에 2번 주어지는 면회시간에 병실에 들러 형부의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이리 저리 보살펴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형부가 중환자실을 나서는 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이때 형부의 눈물을 발견한 간호사가 "할아버지, 왜 그렇게 눈물을 흘리세요? 어디 불편한 데가 있으세요?"하고 물었다네요.

그때 형부가 "저기 문을 나서는 할멈이 내 마누라여. 지금은 늙어서 저렇게 보이지만, 간호사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40년 전에 약대를 졸업했어. 지금도 약국을 하고 있는데, 나같이 무능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을 만나서 고생만 많이 했어. 지금도 저렇게 늙어서까지 내가 고생만 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서 그러네" 하셨답니다.

다음 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큰언니는 "영감이 별 소리를 다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려고 그랬나 보다고 했습니다.

▲ 형부 편안하게 쉬세요.
ⓒ 한명라
형부의 장례식이 있던 일요일 오전 11시 30분이었습니다.

벽제 승화장으로 떠나기 위해 형부의 관과 큰언니,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영구차에 오를 때, 창원으로 돌아오기 위해 오후 2시 기차표를 예매해 놓은 저는 일행과 함께 벽제에 가지 못했습니다. 막 영구차가 세브란스 병원 주차장을 출발할 때, 그 영구차를 향해서 저도 모르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습니다.

"형부, 안녕히 가세요.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이곳에서 다 펼치지 못한 형부의 꿈들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를 바랄게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제 볼에는 눈물이 주루룩 흘러 내렸습니다. 하늘에서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눈송이들이 하나 가득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내리는 눈 사이로 형부와 가족들을 실은 영구차는 이내 그 모습을 감춰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영구차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쉽게 발자욱을 떼지 못하고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일반적인 형부와 처제사이로 보기에는 나이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큰형부를 대할 때마다 항상 어렵기만 했습니다. 
생전에 큰형부께 따뜻한 인사 한마디 전하지 못했던 저는 부족하기만한 처제였습니다.  
부디 형부께서 좋은 곳에 가셔서 편안하게 안식을 취하실 수 있기를 간절하게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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