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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 기억엔 비닐하우스는 늘 따뜻했습니다. 아무리 세찬 바람이 몰아쳐도 그곳만은 따뜻한 온기가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 찬바람이 싫어 나가놀기 싫을 때는 비닐하우스 안에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투명한 비닐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에 꾸벅꾸벅 졸기도 하며 해가는 줄 모르고 놀면서, 그렇게 키가 점점 자랐습니다. 엄마는 겨울이면 빈 비닐하우스 안에 줄을 매 빨래도 하나 가득 널어 말리셨고, 가을엔 비닐 하우스 안에서 빨간 고추가 마르며 나는 매콤한 냄새에 쿨럭쿨럭 기침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세상이 꽁꽁 얼었습니다. 사람 마음이 왜 이리 간사한지 가을엔 첫눈을 기다리고, 눈이 오고 추워지면 벌써 마음은 봄을 기다립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 비닐하우스를 지나 산에 오르려다 문득 살짝 열린 비닐하우스 문을 열어보고 얼굴에 화악 쏟아지는 비닐하우스 특유의 퇴비 섞인 습한 냄새와 새파랗게 자라고 있는 야채를 보며, 채소가 꽃보다 더 예쁠 수도 있다는 것에 잠시 계절감각을 잊었습니다.
밖의 온도와 비닐하우스 온도차이 때문에 카메라 렌즈가 금세 뿌옇게 습기가 생겼습니다. 아주머니는 날씨가 추워서 어제는 비닐로 꼭꼭 덮어놓았고 오늘 햇빛을 쪼이려, 덮어놓은 속비닐과 채소이불을 열었노라고 했습니다. 난로는 피우지 않았으며 까만 채소이불은 만져보니 정말 누비이불처럼 두꺼웠습니다. 여기 있는 채소는 지난 여름부터 심어놓은 것이며, 아주머니 송년 모임에 가져갈 쌈을 뜯고 있는 중입니다.
이렇게 싱싱하고 예쁜 쌈을 한보따리 가져간 모임에서 아주머니 인기 최고일 것입니다. 쌈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인 듯 합니다. 상추, 호박잎, 깻잎, 배춧잎 등 잎이 넓적하게 생겼으면 어김없이 쌈을 싸먹습니다. 찬바람불고 눈 덮인 밖의 날씨에 아랑곳없이 비닐하우스 안에서는 맛있는 먹거리들이 싱싱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엔 꽃보다 예쁜 채소들이 지금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비닐하우스안의 채소들도 저 혼자 저절로 자라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밤이 되면 행여 추울세라 아이 키우듯 이불도 꼭꼭 덮어줘야 합니다.
비닐하우스 양쪽 끝에 서서 아버지와 함께 배추모에 이불을 덮어주던 생각이 났습니다. 채소비닐이나 이불 덮기, 서로 호흡이 맞지 않으면 이불이 꼬이기 때문에 한번에 덮으려면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겨울 채소들은 이렇게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지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서울 근교의 비닐하우스라서인지 주로 재배 농작물이 쌈종류의 채소가 많았으며,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오이,배추,딸기등 열매채소는 없었습니다.
호남지역에 내린 잇단 폭설로 쓰러진 비닐하우스 앞에서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는 농부님들 힘내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