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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과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이 지난 12월 6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만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이 지난 12월 6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에서 만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당

"세계 평화 만세! 한반도 평화 만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 5돌을 기념한 특별강연의 맨 말미에 붙인 일종의 격문(檄文)이다.

김 전 대통령은 '위기에 처한 평화, 어떻게 지킬 것인가'(Peace in Crisis, What is to be done?)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의 말미에 이렇게 호소한 뒤에 '평화 만세'를 불렀다.

"우리 한민족은 남북의 화해협력을 절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나아가 민족의 평화적 통일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평화만이 이를 해낼 수 있습니다. 평화에 대한 소임을 다합시다. 조상과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우리들이 됩시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 마지막 인생을 정리하고 있을 김 전 대통령은 강연 모두(冒頭)에서부터 '단도직입'(單刀直入)으로 말했다.

"평화는 인류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입니다. 평화 없이는 정치적 안정도, 경제적 번영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안전도 평화 없이는 바랄 수가 없으며, 가족과 이웃과의 행복한 생활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불가결의 조건입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런데 이 세계는 그 평화가 지금 전면적으로 위협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평화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답은 여전히 그의 특유한 어법대로 "첫째, 둘째, 셋째"였다. 첫째, 종교간·문명간의 전면적인 대화. 둘째, 빈부격차의 해소. 셋째, 테러행위 근절.

아니 이번에는 '넷째'까지 나갔다. 김 전 대통령은 평소에 강조해온 이 세가지에다가 '지구환경의 보존과 개선'을 보탰다. 그는 "환경은 평화로운 삶에 대한 뺄 수 없는 조건"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단도직입'으로 들어갔다.

"신사숙녀 여러분! 우리의 힘을 다해 평화를 지킵시다. 우리 모두가 평화수호의 용사가 됩시다. 평화만이 희망이자 살길입니다."

젊은 정치인 시절의 연설투 그대로였다. 특별강연 뒤에 윤현봉 해외원조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이 북한 인권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해 물었을 때도 그는 "제일 어려운 예상질문이 북한 인권문제인데, 아니나 다를까 이 질문이 나왔다"고 곤란해 하면서도 거침없이 정면으로 대답했다.

이번에도 역시 첫째, 둘째, 셋째였다.

그는 먼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공산권 인권문제의 역사적 교훈이 무엇인지를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얘기한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는 초강대국인 '철의 장막' 소련이 총 한방 안쏘고 무너져 동구권 붕괴와 독일통일로 이끈 것은 대소(對蘇) 봉쇄정책이 아니라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로 소련 사회에 싹튼 각성과 내부 동요였음을 강조했다.

거대한 죽(竹)의 장막 중국과 초강대국 미국과 싸워 이긴 월남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것 역시 봉쇄가 아니라 관계 정상화였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반면에 미국이 쿠바를 50년 봉쇄했으나 여전히 쿠바를 바꾸지 못했고,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부시 대통령에게 얘기했다고 전했다.

두번째로는 한국이 북한 인권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바른 평가가 아니다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가 해마다 북한에 식량과 비료, 의약품, 생필품 등을 보내고 북한도 엄청난 덕을 보고 있다"며 "지금 우리는 북한의 원초적, 사회적 인권에 상당히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이산가족 상봉자가 200명이었으나 지금은 1만2천명으로 늘어났다면서 이 또한 인도적 차원의 인권 지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는 탈북자 7천명을 데려왔다"면서 "(북한 인권을 얘기하지만) 현재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탈북자를 안받는다"고 꼬집었다.

세번째로는 "우리가 아무리 얘기해도 정치적 인권은 결국 북한이 변화하기 전에는 이룰 수 없다"면서 북한에도 중국처럼 경제·사회적 인권에 대한 공헌을 토대로 정치적 인권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론을 펴 '점진적 개혁'을 주장했다.

그의 신념은 여전히 단호하고 결연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인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전 독일 대통령은 30년 전 첫 방한 시절에 강원룡 목사의 소개로 당시 젊은 국회의원 김대중을 만난 일화를 소개하며 "저와 김 전 대통령은 친구로서 두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하나는 민주화이고 다른 하나는 한반도 평화다"라고 밝혔다.

역시 김 전 대통령의 오랜 동지이자 후원자인 강원룡 원로목사는 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그의 불굴의 의지를 소개했다.

"중앙정보부가 도쿄에서 김대중을 납치해 수장하려 했던 납치 사건 당시에 그가 정치를 포기할줄 알았는데, 나를 만나자고 해서 만났는데 '목사님, 굴하지않고 꼭 해내겠다'고 말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그는 마침내 대통령 당선과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노벨평화상 세가지를 해냈다."

강 목사는 이어 지난 8월 김 전 대통령이 폐렴증세로 한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할 때 "통일은 못보더라도 한반도 평화가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 우리가 적어도 3년은 더 살아야 한다"고 부탁한 적이 있다면서 그의 건강을 염려했다.

"세계 평화 만세! 한반도 평화 만세!"라는 만세 2창은 '민주투사'에서 '평화 수호의 용사'로 외연을 넓힌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노익장'을 과시하는 구호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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