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3일 종로에 위치한 시민의신문 사무실에서 여의도통신 대표기자 겸 시민의신문 부국장인 정지환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 김진석
두어 해 전쯤 정지환 기자의 책을 읽은 일이 있다. <대한민국 다큐멘터리>라는 제목은 식상했으나 역사의 진실을 향해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열정과 성실함만은 인상적이었다. 1년 6개월간 그의 말대로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경험"했던 독립 기자라는 실험에 관한 솔직한 글을 읽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2003년 <시민의 신문>에 합류할 무렵 쓴 그 글에서 그는 자신을 '실패한 독립 기자'라고 표현하면서 '패자 부활전을 위한 출사표'를 던지겠다고 밝혔다. 나 역시 매체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독립 기자에 매력을 느끼고 있던 터라 "포기하지 않는 한 독립 기자의 꿈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말은 오래도록 남았다.

자신만의 패자 부활전을 치르기라도 하듯 그의 이후 행보는 활발했다. 시민의 신문에 합류한 바로 다음 해 '최초의 국회의원 모니터 전문 매체' <여의도 통신>을 출범시켰고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에서 뉴스 브리핑 진행을 맡았으며 조만간 기자되기 강의도 시작할 예정이다.

이 정도면 패자 부활전을 만족스럽게 치러냈다고 여기지 않을까 생각하며 지난 3일 시민의 신문 회의실에서 그를 만났다. "실패한 독립 기자로서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경험했다"며 담담히 그간의 고민들을 털어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를 그만두고 싶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딱 잘라 말하며 "이젠 내 행복을 위해 즐거운 일을 하며 살겠다"는 그에게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여의도통신, 지역 중심으로 외연 확대

ⓒ 김진석
- 현재 <여의도통신> 대표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출범 당시 인터뷰에서 2005년을 활동을 본격화하는 시기로 잡고 2006년에는 지역구 대표 243인을 모니터링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여의도통신>이 맡고 있는 국회의원은 26명으로 목표의 약 10% 정도다.
"<여의도통신>은 국회의원 모니터링을 통해 각 지역의 유권자와 국회의원을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우리는 지역 언론사가 모니터링을 의뢰하면 해당 국회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그와 관련한 기사들을 지역 언론에 제공했다. 3년 11개월의 공백을 채움으로써 국회의 일상적 모니터링, 대의민주주의의 실현 등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풀뿌리 언론사의 국회 특파원쯤 될 것이다(웃음).

물론 최초의 시도이고 출범 첫 해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다. 국회의원을 집중적으로 따라다니며 그의 활동을 보도하는 방식은 신선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국회의원 홍보라는 오해와 비판도 적지 않았다. 개인의 의정 활동에 치중하다보니 국정감사나 공청회 등 국회의 다양한 자료와 활동들을 놓치는 측면도 컸다."

- 이 같은 한계들을 어떤 식으로 해결하려고 하는가?
"기존의 국회의원 중심의 보도에서 지역 중심으로 외연을 확대하려고 한다.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활동들이 지역과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최근 오프라인 여의도통신(현재 여의도통신은 시민의 신문에 매주 4면의 기사를 제공한다)에 실리는 공청회 지상중계도 이 같은 맥락에서 시작했다. 국회에선 1주일에만 수십 개의 공청회나 세미나, 토론회가 열린다.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끼치는 주제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몇 개도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다. 여의도통신은 매주 두 개의 공청회를 보도하여 민생현안에 관해 국회가 어떤 고민과 실천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려고 한다.

공청회는 정책 입법의 예비 과정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들이 나오는데 이걸 보다보면 각각의 주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 정책이 만들어지면 여론이 어떻게 나뉠지 파악할 수 있다. 2006년부터는 풀뿌리 네트워크에 입각한 모니터링이라는 대원칙은 유지하면서 국회가 지역민들에게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기자는 내 운명, 선배들은 나의 힘

▲ 월간 <말>지 기자, 안티조선 기자, 독립기자등 정지환 기자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 김진석
- 주제를 바꾸어 정지환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한 것으로 안다. 94년 "꿈에도 그리던" <말>지에 입사한 것이 그 시작인가.
"엄밀히 따지면 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대학의 소리>라는 기관지를 냈는데 그때 기자로 참여한 것이 시작이다. 그해 3월 창간호를 냈는데 그때 썼던 기사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 하여 또 감옥에 들어갔다. 기자가 되기 전부터 필화 사건을 겪은 셈이다(웃음).

<말>지는 내게 참 중요한 공간이었다.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그 곳에서 배웠으니까. 후배의 잠재적 가능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자로서의 날개를 펼칠 수 있었다. 특히 훌륭한 선배들이 큰 힘이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조유식 대표이사나 <시사저널>에서 글쓰는 안철흥 기자나 지금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기자 등 좋은 선배들을 만났던 것은 내 인생의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 그렇게 따지면 16년 정도 기자 생활을 한 셈인데 그 시간동안 결정적이었거나 중요한 지점들이 있었을 것이다.
"99년 '21세기 희망, 지역에서 찾는다'라는 연재 기획을 7개월간 진행한 적이 있다.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역 운동가들이나 사람들의 삶을 담아보는 기획이었다. 기자들이 지역을 나누어 취재를 했는데 나는 대도시보다는 사람도 없고 꺼리도 없는, 그러니까 기사 쓰기 꽤 척박한 곳을 중심으로 다녔다(웃음). 통영, 고성, 하동, 산청 이런 데.

그저 발품 파는 것이 밑천의 전부였고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취재를 했었다. 그러면서 풀뿌리 운동에 대해 자연스레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 와중에 운명처럼 <옥천신문> 오한흥 편집장을 만났다."

- 운명처럼?
"술을 마시는데 그가 대뜸 '정지환 기자는 행복하십니까?' 묻더라. 꼭 쇠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글쎄요'하고 얼버무리는데 오 편집장이 행복한 일만 하고 살아도 부족하다고 말을 잇는 거다. 그게 내 머리 속을 통째로 흔들어놓았다.

그 일을 계기로 서서히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었다. 행복한 걸 하고 여유있게 살자고. 항상 실존적 불안감을 안고 살았는데 지금은 많이 평온해지고 초연해졌다. 그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가 공교롭게도 인생 마흔과 겹치면서 '불혹'이라는 말이 가슴 깊이 와닿더라(웃음). 이제 극한적 상황에 닥친다 해도 예전처럼 불안해하지 않을 것 같다."

ⓒ 김진석
독립 기자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그런 힘이 바탕이 되었던 것인가, 2001년부터는 말지에서 나와 독립 기자라는 실험을 시도하기도 하였는데.
"그런 건 아니고 불가피한 사정으로 말지를 떠나면서 어쩔 수 없이 독립 기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1년 6개월간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경험했다(웃음). 나의 호흡으로 한 가지 주제를 깊이있게 물고 늘어질 수 있었고 그 결과물로 책도 네 권이나 냈다. 일간지, 인터넷 언론, 라디오 등 다양한 매체에서 일을 하면서 자력갱생했던 것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당연히 배고픔이었다. 우리 언론계가 얼마나 프리랜서로 살아가기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 그렇게 힘들었다면 기자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때도 있었을 법한데.
"단 한번도 없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기자 역시 사람과 얽히는 일이라 관계 맺는 일이 늘상 어렵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를 조절하고 운영하는 셀프 리더십이다. 내가 더 노력하고 실천하면 된다고 끊임없이 생각한다. 대단한 걸 깨달은 것처럼 얘기하지만 나 역시 각종 고통과 불평불만, 애증과 질시로부터 자유로워지지 못했다(웃음)."

- 실패한 독립 기자지만 독립 기자의 실험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했었다.
"물론이다. <말>지에서 배운 가르침 중 하나가 조로증 환자가 되지 말자는 거였다. 기자를 하다보면 흔히 차장급 이상 되면 데스크에 앉아있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그 나이까지 현장에 나오는 걸 꺼리는 이들도 있다.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해져서도 현장을 누비고 싶다. 막연하게나마 진정한 독립 기자의 삶은 60쯤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오는 12월 16일 부터 풀로엮은집에서 색깔있는 기자를 강의하는 정지환 기자.
ⓒ 김진석
자기만의 글쓰기 교과서를 만들어라

- 조만간 기자되기 강의도 시작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12월 16일부터 풀로 엮은 집에서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라는 주제로 기자 학교를 연다. 강좌 소개에도 썼지만 블로그나 인터넷 언론 등 달라진 미디어 문화에서 테크니션으로서뿐만 아니라 세상을 응시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사람으로서 기자가 갖추어야 할 것들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려 한다"

- 블로그로 대변되는 1인 미디어 시대가 열렸다고 한다. 그만큼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글쓰기가 중요해졌고 글쓰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늘어났다. 그들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준다면?
"가장 기본은 심혈을 기울여 철저히 준비하고 자기만의 시각을 가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열린 마음과 인문학적 교양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가만히 앉아서 발휘하는 글재주는 금세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독서를 통해 판단력을 기르고 교양을 쌓으면서 다양한 현장을 돌아다닐 때 자신만의 독특한 글쓰기가 가능해질 것이다."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