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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앞바다 배예요. 여러 배들 가운데서 그날 한 배가 점심 시각에 맞춰 출항에 나서는 것 같았어요.
서귀포 앞바다 배예요. 여러 배들 가운데서 그날 한 배가 점심 시각에 맞춰 출항에 나서는 것 같았어요. ⓒ 권성권
드디어 서귀포 앞 바다에 다다랐다. 수많은 배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파도에 여러 배들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울 엄마와 함께 점심을 먹을 횟집에 들어갔다. 점심치고는 꽤 값 나가는 곳이었다. 그래도 모처럼만에 하는 여행길이니 그 정도는 괜찮을 듯싶었다. 하지만 울 엄마는 언짢은 표정이었다. 돈을 낭비한다는 눈치였다.

“그냥 밥 먹제 뭐 하러 비싼 것 시킨다냐.”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한 번 회도 먹어 줘야죠.”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제, 다르다냐?”
“돈 걱정 하지 말고 그냥 드세요.”
“근디 썩 내키지는 않는다. 그 해녀 못 봤냐?”
“아까 그 해녀 말이에요. 봤지요.”
“…….”

제주 해녀의 모습이에요. 울 엄마보다는 조금은 젊은 듯 하지만 그래도 많이 드신 해녀의 모습 같았어요. 아직까지 저 분에게는 당당한 힘과 기운이 있는 듯 했어요.
제주 해녀의 모습이에요. 울 엄마보다는 조금은 젊은 듯 하지만 그래도 많이 드신 해녀의 모습 같았어요. 아직까지 저 분에게는 당당한 힘과 기운이 있는 듯 했어요. ⓒ 권성권
점심으로 회를 먹으려는데, 뜻밖에 해녀 이야기가 튀어 나왔다. 사실 서귀포로 오기 전에 우리 식구들은 송악산 아래 자락에서 해녀를 봤다. 말로만 듣던 제주 해녀였는데, 나이는 꽤 들어 보였다. 등 뒤엔 그물 걸망이랑 물 위에 뜨는 하얀 통도 매고 있었고, 옷도 고무로 된 통옷이었다. 옷이 많이 낡아서 그런지 여기 저기 땜질한 곳도 많았다. 그 옷을 입고 깊은 물 속에 들어가서 해삼 같은 것을 따오는가 싶었다.

그곳에서 해녀를 바라 본 울 엄마는 괜스레 눈시울을 적셨다. 마치 자신이 살아 온 옛 모습을 보는 듯했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나이에 홀로 되어 억척스레 일곱 자녀들을 돌보았던 지난 옛 모습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비싼 회를 먹는다는 게 왠지 목에 걸리는 듯했던 것이다.

“엄마, 그래도 이왕 시켰으니, 그냥 드세요.”
“알았다야. 허지만 느그들끼리 밥 먹을 땐 아껴 먹어라 이.”
“예, 그러니까 드세요.”
“맛은 쪼까이 있다 이.”
“그러죠, 맛은 좋죠.”

제주민속박물관 앞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엄마 얼굴에 웃음꽃이 일어난 듯하네요.
제주민속박물관 앞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엄마 얼굴에 웃음꽃이 일어난 듯하네요. ⓒ 권성권
점심밥을 먹고 차를 돌려 곧장 ‘제주민속박물관’으로 갔다. 서귀포에서 그곳까지는 삼십분 정도 걸렸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더니 바람도 좋고 뱃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더부룩한 것들도 사르르 뚫리는 것 같았다. 어른들 뱃속이야 어떻든 상관없이 두 아이들은 벌써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민속박물관은 그야말로 제주를 알리는 곳이었다. 제주 집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배와 그물, 돌하르방은 어떤 모습인지, 깊은 물 속으로 뛰어드는 제주 해녀들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제주 사람들이 쓰고 있는 농기구들은 또 무엇이 있는지, 거기에 덧붙여 제주도로 유배 온 추사 김정희는 어떤 것을 남겼는지, 그리고 대장금을 찍은 곳들도 가끔 가다 소개해 놓고 있었다.

두 어르신이 멋진 혼례식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에요.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울 엄마와 함께 멋진 혼례도 치러드렸을텐데, 아쉬움이 많았어요.
두 어르신이 멋진 혼례식을 치르고 있는 모습이에요.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울 엄마와 함께 멋진 혼례도 치러드렸을텐데, 아쉬움이 많았어요. ⓒ 권성권
그 박물관 한 곳에서 나이 지긋한 두 어른이 비단옷을 입고 혼례를 치르는 것을 봤다. 신혼 혼례가 아니라 그곳 방식으로 왕과 왕비가 되어 다시금 혼례를 올리는 모습이었다. 물론 자녀들이 부추겨서 한 일이라 응원해 주는 사람도 많았다. 심지어 손자와 손녀들까지도 축하해 주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뜩 내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나도 저렇게 울 엄마와 멋진 혼례식을 올리게 해드렸을 텐데…. 아쉬움이 가득 남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멍하니 그 분들을 좋아라하며 바라만 볼 뿐이었다.

민속박물관 안에 있는 집이에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곳이 중간산촌 집 가운데 한 곳이 아닐까 싶네요. 왼쪽에 우비 '도롱이'가 걸려 있네요.
민속박물관 안에 있는 집이에요.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이곳이 중간산촌 집 가운데 한 곳이 아닐까 싶네요. 왼쪽에 우비 '도롱이'가 걸려 있네요. ⓒ 권성권
민속박물관 안에 있는 제주 집들은 제각각 특색이 있었다. 산촌 막살이 집이라든지 사냥꾼 집도 있었고, 어촌에는 어부 집과 해녀집도 있었고, 중간산촌에는 서당과 종가집도 있었고, 무속신앙촌에는 점집과 해신당도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집들 앞에는 제 각각 이름과 쓰임새가 적혀 있었고, 그 구조 또한 달랐다. 그리고 어떤 농부 집에는 ‘연자’라든지 눈에 빠지는 것을 막아 주기 위해 칡 줄로 엮어 만든 ‘태왈’도 걸려 있었다.

겨울철 집 안에다 무나 고구마를 저장해 놓는 짚무덤이에요. 일종의 창고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겨울철 집 안에다 무나 고구마를 저장해 놓는 짚무덤이에요. 일종의 창고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 권성권
그 민속박물관을 둘러보고서야 제주가 어떤 곳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물론 그 다음 코스에서 봤던 ‘성산일출봉’이라든지, ‘섭지코지’ 같은 곳들도 제주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곳이긴 했다. 하지만 제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모습과 그 냄새를 맡아보기에는 그곳들이 조금은 멀지 않나 싶었다. ‘소인국테마파크’와 ‘조각공원도’, 그리고 ‘미니미니랜드’도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좀 더 제주다운 제주, 제주에 사는 사람들과 그 맛과 멋을 알려면 민속박물관과 같이 제주사람들이 부대끼며 살았던 곳들을 둘러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섭지코지예요.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서 오고가고 하는 모습이지요.
섭지코지예요. 관광객들이 줄을 지어서 오고가고 하는 모습이지요. ⓒ 권성권
그래서 저녁 늦게, 한라산 산등성이를 넘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씁쓸한 무언가가 밀려들었다. 이번 여행길에 좀더 제주를 알 수 있는 곳들을 택해서 돌아보았더라면 울 엄마도 무척이나 흡족했을 것이고, 나와 아내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래서 제주도로 가기 전에 누군가 권해 줬던 ‘종달리’와 ‘용눈이오름’, 중문에 있는 ‘주상절리대’, 그리고 ‘돌하르방공원’과 ‘비자림’들이 내 눈에 내내 밟힐 뿐이었다.

내가 그런 저런 빈말을 혼자 하자, 울 엄마도 맞장구를 쳐 주는 듯했다. 게다가 제주도 땅이 그렇게 넓을 줄은 몰랐다는 말과, 미리서 잘 알아보고 왔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란 말도 빼놓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하랴.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을 무슨 수로 돌이킬 수 있단 말인가. 다음에 기회가 생긴다면 모르겠지만, 이번 여행길은 그것으로 족해야 할 것 같았다.

저녁 무렵, 잠자리에 들기 전 울 엄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여행길에 관련된 이야기도 주고받았지만, 대부분은 우리 집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형들과 누나네,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칠남매에 딸린 손자 손녀들 이야기였다.

모든 여행을 마치고 되돌아 올 때, 기내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엄마,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더 좋은 곳에 함께 가요. 알았죠. 그때까지, 오래오래 살아 계셔야 해요."
모든 여행을 마치고 되돌아 올 때, 기내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엄마,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더 좋은 곳에 함께 가요. 알았죠. 그때까지, 오래오래 살아 계셔야 해요." ⓒ 권성권
“괜찮았어요. 제주도 여행.”
“좋긴 하다야. 제주도 땅도 무쟈게 크고. 이러코롬 큰 줄은 몰랐는디 이.”
“그렇지요. 나도 몰랐어요.”
“느그 형들이랑 누나랑 다 같이 왔으면 좋았겄다 이.”
“그러게요. 섭섭하죠.”
“아먼, 글제. 글지만 그 식구들이 비행기타고 어쯔게 다 오겄냐.”
“오면 오지, 못 올 것도 없지요.”
“느그 형들도 일하는 것들이 다 잘되야 헐 텐디 모르겄다 이.”
“뭐가 잘 안 된대요?”
“큰 성이 돈을 많이 띠껬다드라.”
“셋째 형은 몸이 더 괜찮아졌을까요?”
“더 좋아졌다고는 헌디, 모르제. 봐봐야 알제.”
“엄마가 이제 기도 많이 하세요.”
“내가 문 기도헌다고 된데야. 즈그들이 잘 히야제.”

모든 것들을 뒤로 한 채 마음 편히 떠난다고 떠나 온 여행길이었지만, 울 엄마는 그렇게 맘 편히 여행을 했던 게 아니었다. 어디 울 엄마만 그렇겠는가?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엄마들이 다 똑같지 않겠나 싶다. 맘 편히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도 자식들 걱정에 한시름도 놓지 못하는 엄마들이지 않겠는가….

그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울 엄마와 함께 잠이 들고 말았다. 하지만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아이들 울음소리가 났고, 이내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가야만 했다. 모처럼 만난 울 엄마와 함께 잠이라도 함께 자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그 틈새를 봐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도 칠순 넘은 울 엄마와 함께 떠난 이번 제주도 여행길은 정말로 뜻 깊은 여행이었다.

무엇보다도 이번 여행길을 계획하고, 모든 돈을 보내며 미리서 예약한 내 아내가 고맙고 사랑스러웠으며, 칭얼대면서도 꿋꿋하게 따라다녔던 민주랑 민웅이도 참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아픈 다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삥아리 자식’이 가자고 하면 이곳저곳으로 그저 믿어주며 따라가 주던 울 엄마도 그지없이 고마웠다. 다음에 기회가 닿을지 모르겠지만, 그땐 더 좋은 곳으로, 더 알찬 곳으로 모시고 싶다는 생각 간절했다.

등 뒤엔 무거운 그물 걸망을 매고
군데군데 땜질한 거무스름한 고무 통옷 한 벌 입고
열길 바다 물속으로 들어 들어가는 제주도 해녀
쭈글쭈글 깊게 패인 얼굴 흉터
절뚝절뚝 제대로 걷지 못한 발걸음
제 자식 먹이고 입힌 흔적일터니
그 늙은 해녀의 걸음걸이에서
울 엄마 모습을 본다
일찍 떠난 아버지 몫 대신하여
일편단심 칠남매 자식만 바라보며
자신의 몸 군데군데 충난 지도 모르고
땜질해야 했던 그 때도 다 놓쳐 버린 채
이젠 하고 싶어도 할 힘조차 없는 울 엄마
그 모습에서 제주도 해녀를 본다
함께 마주한 저녁 잠자리에서
만져보고 싶던 그 어렸을 적 젖무덤
이젠 늙고 늙어 한없이 쭈글쭈글해졌으니
만져볼래야 만져볼 수 없고
그저 민망할 뿐이네…
울 엄마는 왜 이토록 늙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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