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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전주 인후동 자택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윤여주씨
2일 오전. 전주 인후동 자택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윤여주씨 ⓒ 김현상
지난해 4월 말 만기 전역한 지 20여일 만에 간암말기 판정을 받은 윤여주(전북 전주 인후1가. 26)씨가 사경을 헤매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2일 오전 기자가 찾은 윤여주씨는 전역 한 달도 채 되기 전인 지난해 4월 말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고, 이후 병세가 악화돼 전북 전주시 인후동 자신의 아파트에서 처참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

윤씨는 W보건대 1학년 영상애니메이션과 재학 중이던 2002년 2월 군에 입대, 2004년 4월 4일 제대했고, 같은 달 27일 간암 판정을 받았다. 윤씨는 전주 Y병원에서 세 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지만 병원에서도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어, 가족들은 애끓은 심정으로 외아들인 윤씨를 하루하루 돌보고 있다.

윤씨의 가족과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신체검사 이전부터 윤씨가 B형 간염보균자였고, 군대 생활 동안 여러 차례 복부 통증을 호소했지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간암을 키우고 있었던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윤씨는 군복무 기간에 이미 간암과 1년 반 동안을 넘게 싸웠지만 의무대에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병이 악화될 무렵에는 자주 복통을 호소했지만 제대로 된 정밀검진도 받지 못하고 도리어 자주 온다며 면박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의 부친 재호씨는 2일 오전 "군대에서 '꾀병부리고 쉬려고 한다'는 핀잔을 아들이 들었다고 한다. 제대로 치료하지 못했다. 일찍 알았어야 하는데…"라며 "오히려 자대에서 시달림을 많이 당해 많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했다. 이런 사실을 어제서야 알았다"고 말했다.

윤씨의 부친은 "제대 후 가만히 보니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서 보름 정도 지나 검사를 받고 그때서야 암인 것을 알았다"며 "군대 있을 때 알았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기자와의 인터뷰 도중 부친에게 간이식 제안 등의 전화가 걸려왔다. 부친은 "(간이식이)되고 안 되고를 떠나 이런 상의를 한 자체로만으로 만족한다"며 "아들을 살릴 수 있다면 뭐든지 해야죠"라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주위의 관심에 고마움을 표했다.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원호 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병상일지 등 객관적인 입증 자료 등이 없다며 공상군경 요건에 해당되지 아니한다는 내용.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원호 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병상일지 등 객관적인 입증 자료 등이 없다며 공상군경 요건에 해당되지 아니한다는 내용. ⓒ 김현상
윤씨의 가족은 지난해 6월 말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원호 대상자 신청을 했지만 병상일지 등 '객관적 근거 불충분'의 이유로 기각 당했다.

"만기 제대한 자로서 군복무로 인해 병을 특히 악화시켰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없고… 공무와 관련하여 발병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병상일지 등 객관적인 입증 자료가 없다는 점… 군 공무수행과 상다인과 관계가 되어 발병한 것으로 인정하지 아니하며 이는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 등에 의한 공상군경 요건에 해당되지 아니함"


이에 대해 부친 윤재호씨는 "군부대 자체 시설이 부족해서 검진도 못하고 병을 키워 와서 이렇게 된 것인데, 병상일지를 요구하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현재 윤씨 가족들은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오는 15일 전주지방법원에서 행정재판을 앞두고 있다.

한편, 지난 2002년 육군 학사장교로 임관하여 제9보병사단에서 소총소대장으로 복무하고 올해 9월 말 중위로 만기 전역한 예비역 육군중위 김기철씨는 자신의 소대원이였던 윤씨(경기도 파주, 육군보병부대)의 '제2의 노충국' 사연을 세상에 알렸다.

김씨는 지난달 30일 국방부 홈페이지를 통해 '어느 예비역 육군 중위의 반성과 호소'는 제목의 글을 통해 "제2의 고 노충국씨가 이 땅에 없기를 바라며"라는 참회의 글을 올렸다.

김씨는 이 글에서 "당시 군대 있으면서 배가 아프다고 할 때나 어지럽다고 했을 때 단순히 의무대에서 진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정밀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소대장으로서 소대원의 병세 징후를 찾아내지 못한 저의 책임에 뼈저린 반성을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국가 및 국방부가 국민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지 못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될 것"을 바라며, "아울러 저 역시 부하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평생을 안고 가야할 죄책감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글을 올린 이유를 밝혔다.

반면, 이와 다르게 "군 대대 고위급은 처음엔 도와주겠다 했지만 2~4번 전화하고 그 뒤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발뺌한 것에 사람 같지 않아 말도 하기 싫다"고 아버지는 전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북인터넷대안신문 참소리(http://cham-sori.net)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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