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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촬영(11월 20일) 중 덕수궁 담장이 훼손되어 SBS가 정규 방송에서 정식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문화재 관리기관인 문화재청 차원에서 문화재 훼손에 따른 관리문제 상의 해명이나 사과 등 그 후속 조치는 없었다.

물론 SBS 방송국에게 1차적인 책임이 있다. 문화재에 대한 기본 소양없이 방송국 소품인 양 '실리콘'을 사용해 담장에 종이를 붙였고 떼어지지 않자 '끌' 등으로 무리하게 긁어내어 결국에는 덕수궁 담장(사적 124호)을 훼손한 것이다.

▲ 덕수궁 담장에 촬영을 위해 실리콘으로 종이를 붙였다가 떼어지지 않자 '끌'로 억지로 긁어서 떼어내어 담장이 훼손되었다.
ⓒ 한국의재발견
그런데 관리소 측은 "새벽 촬영으로 관리 소홀이 불가피하였고 '작은 접착 종이(일명 포스트 잇)를 몇 장 붙인다'는 것에 단순 허가(?)하였다"고 해명하고 있다. 이 점에서 문화재청 역시 SBS 방송국 이상으로 문화재 보호와 관리감독을 소홀히 한 책임이 있다.

우선 방송국은 촬영 때문에 담장 활용을 요청했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관리소는 그에 따른 문화재 보호 조치를 미흡하게 취했다. '궁·능원 및 유적 관람 등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촬영자는 '촬영시 기관장의 허가'와 '안전 보호대책이 숙지된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당해 기관장은 '촬영 현장에 직원 배치 및 준수사항 이행여부를 감독'하게끔 되어 있다.

그런데 SBS 측은 촬영 전 관리소에 담장 이용을 미리 요청했지만 관리소에서는 구두 허가만 했을 뿐 신청서 접수와 감독을 철저하게 이행하지 않았다. 이는 '몇 장, 작은 종이를 붙이니까 괜찮다'는 안이한 인식에서 자초한 일이었다.

둘째, 관리소 측은 새벽에 촬영했기 때문에 관리 소홀이 불가피했다고 했다. 하지만 관리 감독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면 방송국에 문의해 촬영 시간을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즉 문화재청에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관리감독이 충분히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 덕수궁 담장(시청 별관 방향)을 따라 120여m에 걸쳐 담장이 훼손된 모습을 볼 수 있다.
ⓒ 한국의재발견
셋째,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문화재청의 문화재 활용 정책을 들 수 있다. 문화재청은 활용 만능주의 정책으로 개방과 활용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 정책을 뒷받침할 세부 시행지침은 없는 실정이다.

'궁능원 및 유적 장소 사용허가 규정'에는 문화재 유해 여부 관리 감독, 사용료 징수 등 개괄적인 내용만 있을 뿐이다. 때문에 시행 담당기관에게 '잘 하라'고 할 뿐, '어떻게 잘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문화재청은 보존관리 대책 없이 활용만을 앞세워 관리감독 소홀과 문화재 훼손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문화재 개방과 행사장 유치 등으로 문화재 활용 정책을 행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재의 가치와 본질은 외면한 채 대책 없이 활용만을 내세워 관리 감독의 문제를 계속 일으키고 있다.

올해만 봐도 술과 흡연으로 얼룩졌던 창경궁 신문협회 만찬회, 건물의 내구력 검사 없이 카메라를 천장에 매달았던 창덕궁 '바둑대회', 연례행사라는 명목으로 일반 관람객의 관람 향유권을 침해했던 '신사임당의 날' 행사, 주최측의 음식물 반입과 음주 행위가 있었던 종묘제례시 등. 문화재를 훼손한 사례가 늘어가고 있다.

▲ 지난 2005년 6월 창덕궁 바둑대회에서 건물 내구성의 검사와 허가 없이 카메라와 조명이 달려 있다.
ⓒ 한국의재발견
이러한 문화재청의 무분별한 활용 정책은 문화재 훼손과 관람권 침해는 물론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의식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한 인식이 이번 SBS가 덕수궁 담장을 소품처럼 활용하는 사태를 낳은 것은 아닐까. 결국 덕수궁 담장 훼손은 무지한 방송사의 책임이면서 관리감독 소홀과 문화유산 인식이 부족했던 문화재청의 책임이기도 하다.

문화재는 역사, 학술, 예술상의 문화적 가치를 지니며 과거의 유산을 현재에 올바로 계승, 발전시켜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遺産)이다. 또 문화재는 한 번 훼손되면 돌이킬 수 없기에 특별한 관심과 보호 감독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은 너무나 미흡하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의 가치와 본질을 올바로 인식하고 보존과 관리 감독이 잘 이루어지도록 세부적인 대책도 준비해야 활용에 따른 훼손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 활용정책이 바로 설 수 있을 때, 국민들의 호응과 문화재 보호에 동참이 가능하다. 그래야만 문화재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1문화재 1지킴이' 운동도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고 문화재를 통해 성숙한 시민사회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장영기 기자는 (사)한국의재발견 사무국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4월 말 '궁궐의 올바른 활용과 보존을 위한 시민모임'에서 논의된 사항을 정리하여 올린 기사입니다. 본 시민모임의 참가단체는 궁궐산책, 문화연대, 문화유산연대회의, 서울 KYC, 우리얼, (사)한국의재발견로 올바른 문화유산의 활용과 보존을 위한 모니터와 정책방향 제시를 하고자 결성된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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