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꽤 요란하게 쏟아지더니 짙은 안개가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그 안개 속으로 조그만 길이 있습니다. 거북바위까지 가는 그 길을 따라 가을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낙엽 쌓인 산은 온통 갈색입니다. 여기 저기 소나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안개에 묻혀 제 빛깔 제대로 드러낼 줄 모릅니다. 거북바위 지나 약수터 가는 길목에서 낙엽 쌓인 산보다는 새순 돋는 봄날에 어울릴 색깔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건 이끼였습니다. 가을이 떠난 뒤에도 여전히 연녹색 빛깔입니다.
하늘 향해 치솟아 자라던 매끈하고 탄력 넘치던 나무들도 그 많던 나뭇잎 다 떨어뜨리고 줄기마저 생기를 읽어 부스스한 모습입니다. 그래도 가지는 여전히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잠시 쉴 뿐이지 아주 멈춘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거북바위에 다다를 무렵 낙엽 위로 아직도 지지 않은 단풍이 보였습니다. 우뚝 자란 나무들은 모두 잎이 떨어졌는데 낙엽 위로 한 줄기 자라 겨우 잎이 자란 나무는 아직 잎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빛깔도 가을날의 선홍빛 단풍에 비할 정도는 못되지만 고운 맵시는 여전합니다.
사정없이 잘려나간 나무 밑동 옆에도 한 가닥 어린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비와 안개에 젖은 단풍 다 말리지도 못한 채 서 있습니다. 다가올 겨울 추위를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불어오는 바람에 하늘하늘 흔들립니다. 죽어 밑동만 남아 있는 나무 옆에서 또 하나의 생명이 하늘 향해 치솟아 자랄 그날을 준비하며 화사한 표정으로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