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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은 24일 국회에서 정책의원총회를 열어 논란이 된 금산법을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안에 대해 '분리대응안'을 권고적 당론으로 채택했다. 사진은 정세균 원내대표 주재로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정책의원총회.
열린우리당은 24일 국회에서 정책의원총회를 열어 논란이 된 금산법을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개정안에 대해 '분리대응안'을 권고적 당론으로 채택했다. 사진은 정세균 원내대표 주재로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정책의원총회. ⓒ 오마이뉴스 이종호
삼성그룹 지배구조와 연관되면서 수개 월 동안 국민적 논란을 일으켰던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금산법) 개정을 두고, 24일 열린우리당은 삼성생명과 삼성카드의 지분을 분리해 대응하는 이른바 '분리대응안'을 당론으로 확정했다.

지난달 4일 청와대에서 내놓은 분리대응안은 삼성생명의 금융계열사 초과지분은 인정하고 의결권만 제한하며, 삼성카드의 경우는 일정기간의 유예기간을 준 다음에 처분을 명령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우리당이 이날 확정한 금산법 개정안을 두고 정치적 고려에 따라 법률이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특히 대표적 경제개혁 입법으로 꼽혀온 금산법 개정안에 대해 여당 스스로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을 적당히 봐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다. 이와 함께 그동안 각종 개혁입법 추진 과정에서 잡음을 보였던 우리당 내부의 정체성 논란도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권고적 당론?... 현실과 원칙사이 고심 끝 '분리대응'

ⓒ 오마이뉴스 한은희
지난 97년에 만들어진 금산법은 재벌 금융회사가 가지고 있는 비금융계열사 지분 가운데 5% 이상을 강제 매각하도록 하거나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을 담고 있다.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 원칙에 따른 것이다.

금산법 개정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던 이유는 법 개정이 삼성그룹의 소유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에버랜드라는 사실상의 지주회사를 정점으로 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생명과 카드라는 금융계열사가 전자와 에버랜드라는 비금융계열사의 지분을 법을 어겨가며 지분을 초과해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은 전자 지분 2.2%, 카드는 에버랜드 지분 20.6%를 초과보유한 상태다.

그동안 나온 해법은 크게 세 가지 갈래다. 재정경제부는 삼성생명 지분은 합법화, 카드는 의결권만 제한하자는 입장이었고, 박영선 의원이 내놓은 안은 3~5년간 유예기간을 둔 다음에 예외없이 초과지분을 매각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청와대는 지난달 4일 생명 지분은 인정하되 의결권만 제한하고, 카드는 일정기간을 두고 매각하는 분리대응 방안을 내놓았다. 정부와 박영선 의원 사이의 절충안인 셈이다.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관계자는 "정부안은 삼성 봐주기식 지적이 너무 강했고, 박영선 의원 안은 원칙에 공감하지만 위헌 소지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청와대에서 내놓은 분리대응안이 일정 부분 명분은 살리면서 현실을 감안한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은 물건너 간 것"... 정체성 논란일 듯

여당이 확정한 금산법 개정안은?

열린우리당이 24일 당론으로 확정한 금산법은 '청와대안', '생명-카드 분리대응안'으로 불려왔다. 내용은 97년 금산법 제정 이전에 삼성생명이 취득한 비금융계열사의 5% 초과 지분에 대해선 의결권만을 제한하자는 것이다. 삼성전자 지분 2.2%가 이에 해당 된다.

또 금산법 제정 이후 삼성카드가 취득한 초과 지분은 유예기간을 두고 자율 매각하도록 한뒤, 유예기간이 끝나면 금융감독위원장이 강제 매각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에버랜드의 20.6%가 해당된다.

만약 유예기간 후에도 강제 매각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초과 지분의 시가총액 대비 1만분의 1씩을 매일 강제 이행금으로 지불해야한다. 삼성카드가 매각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매일 7억 원씩을 내야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날 우리당 지도부가 채택한 권고적 당론은 기존의 강제성을 띤 당론보다는 강도가 약한 것으로, 개별 의원들이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 김종철 기자
하지만 열린우리당이 이날 확정한 금산법 개정안을 두고 법과 원칙에 따른 판단이 아닌, 정치적 고려에 따른 '장고 끝에 악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라고 전제하고 "열린우리당은 이번 금산법 개정과정에서 원칙에 따른 법률 개정이 아닌 정치적 고려에 따라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삼성공화국 등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원칙론에 입각한 반응을 보였다가, 청와대에서 안을 내놓자 다시 그쪽으로 분위기가 쏠렸다"면서 "이어 재보선 선거에서 참패한 후에는 원칙론이 나왔다가 결국 분리대응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꼬집었다.

특히 대표적 경제개혁 입법으로 꼽혀온 금산법 개정안에 대해 여당 스스로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을 적당히 봐준 것 아니냐는 비판도 거세다. 이와 함께 그동안 각종 개혁입법 추진 과정에서 잡음을 보였던 우리당 내부의 정체성 논란도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김 소장은 "삼성생명과 카드를 분리 대응해서 법률을 고치는 것이 과연 금융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는 법의 당초 취지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생명의 (전자 초과) 지분을 인정해주는 것은 사실상 삼성 지배구조를 그대로 봐준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열린우리당 내 개혁세력인 신진보연대 쪽도 "금산법은 재벌의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한 개혁 의지를 상징하는 법안"이라며 "법이 정한 한도를 넘어선 초과지분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해소하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라고 밝혔다.

김형식 공보이사는 "특정기업에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기업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규칙이 지켜진 전제 위에서 고려돼야 한다"면서 "공통의 규칙에 먼저 예외를 인정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면서 분리대응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삼성 "정부안보다 강해진 것 아니냐" 우려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과 삼성생명 등 삼성계열사의 빌딩이 밀집한 지역.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그룹 본관과 삼성생명 등 삼성계열사의 빌딩이 밀집한 지역.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삼성은 일단 공식적인 반응은 자제하고 있다. 아직 법률로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이고,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의 논의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당의 당론이 기존 정부안에 비해 내용이 강해진 것 아니냐며 향후 개정 방향에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아직 법률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뭐라 입장을 말하기 어렵다"면서 "아직 국회 상임위의 심의 과정과 본회의 통과 등의 절차가 남아있는 만큼 향후 추진 과정을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여당에서 일단 당론으로 확정됐지만,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는 재경부에서 올라온 안도 아직 있지 않느냐"면서 "우리 입장에선 그래도 정부안이 현실적"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여당안이 그대로 법으로 만들어질 경우 삼성전자 등 그룹 경영권 안정에 타격을 입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삼성생명이 가지고 있는 전자 지분 7.2% 가운데 2.2%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 당할 경우,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 타깃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사모펀드인 소버린은 1700억 원으로 50조 원에 달하는 SK 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하지 않았느냐"면서 "(전자의) 외국인 지분이 고루 분포돼 M&A가 힘들것이라고 하지만 2.2% 정도의 의결권은 결정적인 순간에 매우 큰 지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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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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