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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를 매는데 엄청난 고생을 했다.
넥타이를 매는데 엄청난 고생을 했다. ⓒ 양중모
예전에 잠시 학습지 회사를 다닐 때는 아버지나 형의 도움을 종종 받았지만, 아무도 없는 그 시점에서 넥타이를 매는 건 그야말로 도를 닦는 심정으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매고 또 매도 풀리는 넥타이를 보면서, '나 안 가!'라는 어린애 같은 투정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우울하게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얼마 안 되어 여자친구에게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혼자라고 생각해. 무조건 다 받아주고 챙겨주던 엄마는 이제 없어. 뭐든지 니가 어떻게든 알아서 해나가야 해."

다 커서 그런 얘기를 듣는 게 우습게 느껴지고, 나 자신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믿음을 못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둘밖에 없는 형제 가운데 막내라고 우기며 온갖 어리광을 피우며 자랐으니 내게 그런 요소가 분명 존재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예상대로 1년 이내에 취업을 하게 되면, 넥타이를 매일 아침마다 매야 할텐데, 그때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구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스스로를 마음을 달래고 안정시키며 형 방 장농 안에 붙어 있는 넥타이 묶는 방법을 보고 거의 15분 가까이 걸려 넥타이를 매었다. 마음에 들 때까지 몇 번이나 그렇게 고쳐 맸지만, 역시나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어쩌랴. 더 이상 지체하면 약속 시간을 어길 듯해 일단 출발해야 했다.

다행히 약속시간 안에 도착했고, 가자마자 바로 시작한 일은 직무적성검사였다. 한 취업 컨설팅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점차 기업체에서 직무적성검사를 많이 도입하고 있는 이유는 지원자들이 정작 자신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는 주관적 성향이 강하고 객관적이지 못해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말하는 것이나 글쓰는 것을 다 좋아하기는 했지만, 나 역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오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조금 생겼다. 그러나, 검사 결과 중 나쁘게 평가되는 항목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내 기대와 달리, 인성 중 '인내력이 가장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넥타이를 매는 짧다면 짧은 순간에 그 일을 포기하고 싶은 충동을 끝없이 느낀 걸 보면, 인내심이 낮다는 평가는 옳은 듯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걸 참아낼 수 있었을까 하는 강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항목들을 보니 그 이유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직무적성검사 결과를 보니 나 자신에 대한 약간의 냉정한 판단이 가능해졌다.
직무적성검사 결과를 보니 나 자신에 대한 약간의 냉정한 판단이 가능해졌다. ⓒ 양중모
다른 항목 가운데 '협조성'과 '규율성'이 높은 수치를 보였는데, 촬영을 하기로 약속했고,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규율이라는 이 두 가지 인성이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게 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취업컨설팅 강좌에서 말한 자신의 성격에 대한 장단점을 상호보완해 설명하는 방식을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가장 궁금했던 '내가 과연 언론계열 일에 적합한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높은 수치는 아니었지만, 다행히도 저널리즘이 '재무, 회계, 인사' 등 다른 분야를 제치고 일등을 차지하여 조금이나마 증명되었다. 직무적성검사가 끝난 후 드디어 방송 촬영이 시작되었다. 나중에 편집본까지 다 보고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날 이 코너에서 잡은 주요점은 '인상을 보면 직업이 보인다?'였다.

방송이 인상에 중점을 두다보니 편집당한 내용이긴 하지만, 커리어 다음 대표와 간단하게나마 면접을 본 사실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면접 경험이 부족한 나로서는 면접자를 편하게 해주는 듯하면서도 꿰뚫는 듯한 눈빛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면접 때 내 태도가 어때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 직업이 인상에 어울리는지에 대한 조언이 이어졌는데, 안타깝게도 그 조언을 듣는 과정 촬영은 별도로 이루어져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끝난 후에 방송사 사람들은 "다 좋게 말해주었다"고 했지만, 어디 그 말을 믿을 수 있던가. 그래서 할 수 없이 언제 방영될지도 모르는 그 스쳐지나가는 듯한 순간을 위해 앉아서 열심히 아침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에 대한 보람은 있었다.

"기자를 원하시는 분은 눈이 길고 날카롭다. 정확히 정보를 파악해서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인상이 기자직에 맞는 것 같다."

기사인상설명중
기사인상설명중 ⓒ 양중모
인상 전문가에게 공인받은 기자에 적합한 얼굴상이 된 것이다! 그러나, 방송을 보고 기뻐한 것도 잠시, 방송에서 빠진 부분에 대해 생각해보니 그렇게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 인상전문가가 나를 보고 한 말은 이랬다.

"저 분은 바로 기자해도 되겠네. 딱 기자 인상이야. 뭐 시험을 쳐서 붙기만 한다면!"

그렇다. 인상은 기자 느낌이 나지만, 중요한 건 인상이 그렇다고 해서 그 직업으로 거저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인상 전문가는 그 자리에서 '인상만으로 사람의 직업이 결정되는 게 아니라, 다른 여러가지 요소들도 영향을 끼치며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광식이는 '인연이 되는 사람과 만났을 때 땡땡 뭐 이런 소리 같은 게 나게 해서 이루어지게 해주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한다. 난 연인을 만나는 것보다 자신의 평생업을 찾을 때 그런 신호를 보내주었으면 싶은 생각이 들지만, 그건 쉽지 않은 일인 만큼 그 길을 찾는 건 딱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극한까지 심도있게 경험해봐야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안다.'

같이 촬영에 참가한 이 중 한 명이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라는 말을 했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어쩌면 하늘이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인상도 타고나는 것이고, 타고 나는 것을 천운, 운명이라고 본다면, 그 운명은 거저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요한 건 결국 인상이 아닌 노력과 하고자 하는 마음, 의지이다. 매번 깨닫지만 쉽게 망각하는 이 가치 잊지 않기를.

덧붙이는 글 | 그 프로그램 변호사가 한 말 하나가 와닿더군요. "마음 좋은 사람도 인상이 좋지만, 사기꾼도 인상이 좋다. 인상으로 함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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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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