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안의 본회의 처리를 앞둔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방청출입구에서 국회직원들이 출입기자증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사진이 붙어있지 않은 출입증을 가진 기자들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다.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안의 본회의 처리를 앞둔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 방청출입구에서 국회직원들이 출입기자증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사진이 붙어있지 않은 출입증을 가진 기자들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탄핵안 가결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23일 쌀 비준안 통과를 앞두고 본회의장 출입을 막아선 국회 경위들 앞에서 취재기자들은 이같은 성토를 쏟아냈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독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언론통제"라며 "법적 근거에도 없는 비상식적인 행위가 국회에 난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농촌 출신 의원들의 '물리적 저지'에도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협상에 대한 비준동의안은 결국 국회를 통과했다. 김원기 국회의장이 물리력을 동원해 비준안 처리를 강행할 것인가가 또 다른 관심거리였지만 "경호권과 질서유지권 발동은 없었다"고 국회의장실은 밝혔다.

김기만 공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절차상 완벽히 매끄럽게 진행된 건 아니었지만 의사일정 법 절차에 따라서 진행됐다"며 경호권 등이 발동되지 않았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의장석을 점거한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끌어내고 국회의장이 착석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평소 국회의장에 대한 경위 업무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해명이다.

탄핵 당시보다 삼엄한 통제... "10년째 국회출입하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날 쌀 비준안 처리과정은 국회의장이 경호권을 발동했던 대통령 탄핵안 가결 당시보다 훨씬 삼엄한 통제가 이뤄졌다는 것이 취재기자들의 평가다. 한 외신기자는 "내가 10년째 국회를 출입하고 있지만 취재증을 아예 끊어주지 않은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비준안 처리 하루 전 국회 경위과는 공보관실로 '근무강화방안' 공문을 전달했다. 쌀비준 관련 본회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지 못할 것에 대비해 "취재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의 지침이었다. 따라서 이날 쌀 비준안 취재를 위해 국회를 일시 출입하는 기자들의 취재증 발급은 중단되었다. 특히 상시 등록기자가 한 명도 없는 농업, 농민 전문지 기자들의 취재는 원천적으로 봉쇄된 셈이다.

이날 본회의장에는 '상시' 출입기자증을 소지한 기자가 아니면 입장할 수 없었다. 입구를 막아선 경위들은 "국회의장의 지시"라며 제지했다. 국회 출입증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상시등록 기자와 임시등록 기자. 일간지와 방송사의 경우 창간 3주년이 지난 매체에 한해 국회 출입 6개월만 지나면 상시등록증이 발급된다.

반면 인터넷 매체 등은 이러한 규정에서도 예외다. 기간 요건이 되더라도 국회의 '수용한계'를 감안해야 한다는 이유로 임시등록증으로 출입을 해야하는 처지다. <오마이뉴스> 등 몇몇 인터넷 매체의 경우 상시등록증이 발급되지만 최대 2명을 넘지 않는다. 일간지, 방송사의 상시출입증 소지자는 10명에서 15명에 달한다.

30여 명의 기자들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사이, 본회의장에서는 고성이 오갔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이러지 말라" "농민들 다 죽이고 어쩌겠다는 거냐"며 울부짖었으나 그들의 '육성'은 전파를 타지 못했다. 본회의장 마이크는 의장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 본회의장 안에서나 들리는 '절규'였다.

마이크를 잡은 김원기 국회의장은 "법은 지키세요. 민주주의를 위해서 애쓰시는 분들이 왜 민주주의 못하게 합니까. 자 토론하세요"라고 찬반 토론을 종용했으나 '반대' 없는 찬성 토론만으로 비준안은 통과되었다.

오후 3시 12분. 취재기자들의 출입이 풀린 것은 묘하게도 국회의장의 비준안 처리를 알리는 의사봉 소리가 난 뒤였다. 국회 공보 담당자들은 기자들의 항의에 떠밀려 본회의장 입장을 허가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종료된 뒤였다. "오늘 쌀협상 비준동의안을 우리가 불가피하게 통과시켰습니다만 찬성한 의원이나 반대한 의원이나 똑같이 마음은 괴롭다"는 국회의장의 해명이 이어지고 있었다.

국회의장은 국민의 알권리 앞에 겸손했어야

23일 오후 쌀협상 비준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통과된 가운데 본회의장에서 온몸으로 저지했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규탄했다. 28일째 단식농성을 벌였던 강기갑 의원이 고개를 떨군 채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23일 오후 쌀협상 비준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통과된 가운데 본회의장에서 온몸으로 저지했던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규탄했다. 28일째 단식농성을 벌였던 강기갑 의원이 고개를 떨군 채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단 대표는 여전히 마이크가 꺼진채로 "진정한 민주주의가 여기에 있냐, 국회에 있냐"며 "진정한 민주주의는 이 시간 거리에 있다"고 육성으로 동료 의원들을 질타했다.

비준안이 통과된 뒤 국회 기자실 역시 술렁거렸다. 전국민적 관심사인데다가, 350만 농민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쌀 비준안 처리 현장을 국회 방송을 통해 지켜본 기자들의 불만의 목소리였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회장 윤원석)는 즉각 성명서를 내고 "국회 본회의장 출입통제는 대통령 연설이나 외국 정상들의 국회 연설을 제외한 경우에 통제 받은 전례가 없다"며 국회의장에게 유감과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하지만 국회 관계자들의 태도는 안일했다. 김기만 국회의장 공보수석은 "의장실에서 관여한 사항이 아니"라며 책임을 떠넘겼고, 김영근 공보관은 뒤늦게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양해'를 구했다. 한발 나아가 상원종 입법차장은 "우리가 계속 (언론을) 통제한 게 아니고 쌀 비준안 처리되고 나서는 방청하라고 했지 않냐"고 '항변'했다. 여기에 한 기자는 "일년에 한번 있는 현장이야말로 기자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반문했다.

이 날로 28일째 단식농성을 벌여온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본회의장을 빠져나가며 때묻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사진이 공개돼 보는 이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김원기 국회의장은 비준안 처리의 정당성을 알리기에 앞서 국민의 알권리에 보다 겸손해야 하지 않았을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