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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출판사
"여기 이야기들은 순도 '99.9프로' 픽션이다. 이것이 진실-'뻥'이라 하니 실망하셨는가? 강한 부정은 강한 근정이라 하였으니, 이후의 말은 생략-이다. 그럼 '0.1프로'는 뭐냐면… 할 말이 없다. 그런 분들은 본문 내용 중 '멸치와 고등어' 부분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야기꾼 이인환이 쓴 <사람 맛 한 번 쥑이네>(바다출판사·2005)에 나오는 첫머리 말이다. 이 책은 그가 밝힌 바대로 순전 거짓말투성이다. 없는 일들을 완전히 그럴 듯하게 꾸며 쓴 것들이다.

하지만 어쩌랴. 여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죄다 거짓말에다 사람들까지도 갖다 붙인 이름들이지만 허투루 꾸며낸 듯한 이야기는 아니니…. 공상과학소설이나 허무맹랑한 연애소설이 아니라 진짜로 한 번쯤은 겪어 봤을 이야기들로 꽉 들어차 있다.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니 한 편 한 편 읽다보면 꼭 자기 이야기를 하거나 친구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그도 아니라면, 한 두 다리 건너 필시 아는 사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은 일을 겪었는지, 어떻게 이렇게 속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며 혀를 내두를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들이다. 훈련병 딱지를 뗀 신참 이등병이 부대에 입소하자, 최고 고참병장이 그 신출내기에게 너무 잘해준다. 먹을 것도 마구 사다 주고, 감히 이등병이 맛볼 수 없는 담배까지도 태울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다 이유가 있는 법. 그 고참은 글 쓰는 솜씨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글을 짓는 솜씨와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저 힘 꽤나 쓸 줄 알았지 문학과는 한참 멀었던 것이다. 하여, 다른 누구보다도 먹물 꽤나 먹었던 그 신참에게 연애편지를 멋지게 써 줄 것을 부탁했고, 다음날 그 고참은 신참이 쓴 대로 또박또박 베껴서 편지를 부치곤 했다.

물론 이 편지 말미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기대를 빗나가게 한다. 흔히 군 시절에 있었던 일들이니만큼, 실제로 몇몇 고참들은 그 연애편지의 여주인공들과 만나기도 하고, 또 멋진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기대를 저버린다. 그래서 더 마음 아프고 또 짠하다.

또 다른 재미난 이야기도 있다. 한 남자가 경치 좋은 산속 온천탕에 들어갔는데 손님이라고는 아무도 없다. 그저 노인 한 분만 목욕을 하고 있을 뿐이다. 머리는 벗겨져서 중인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얼굴은 조용하면서도 힘 있어 보였다. 잠시 후 그 노인이 손을 모으고 힘을 약간 주었더니, 갑자기 거품이 생기며 물이 목욕탕 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이다.

저 도인이 도대체 누구인지, 그 정체가 너무 궁금한 그 남자는 서울까지 따라가서 물어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목욕탕에서 나와 차를 타자, 아내라고 하며 한 할머니가 또 동승을 한다. 당연히 그 남자는 낀 신세가 돼 버렸다. 더군다나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누는 대화는 전혀 도술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뿐이다. 할아버지가 하는 운전 실력을 믿을 수 없다며, 할머니한테서 욕지거리가 휘날린다. 둘은 서울로 가는 동안 옥신각신 말다툼을 쉴 새 없이 한다.

그래도 그 노인의 정체가 궁금한 탓에 악다구니를 몰고 겨우 그 노인의 집 앞까지 당도한다. 하지만 그 할머니가 도무지 그를 집으로 반겨줄 것 같지 않아, 동네 놀이터 그네에서 겨우 물어 본다. 그런데 웬걸. 그 목욕탕에서 물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도술을 부린 이유 때문이 아니라 겨우 복식 호흡 때문이었다고 일러준다. 그러니 그때의 허무함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으랴.

그 밖에도 어렸을 적 말더듬이를 둔 친구들이 놀려대다 어느 순간 자신들도 말더듬이가 되어 말을 더듬고 있는 경우라든지, 군대에서 인사과라는 좋은 보직 탓에 하사관까지도 제 힘으로 주무르다시피 했던 그 사병이 정작 자신의 휴가문제 앞에서는 그 하사관에게 된통 혼쭐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라든지, 또 꽁생원 친구 한 명이 교통사고로 입원해 있는데 병원 간호사가 실수로 그만 다른 환자의 주사를 그에게 놓아 버렸으며, 그로 인해 방송국과 언론에 알리니 마니하며 옥신각신 끝에 병원 측으로부터 큰 돈을 받아내 친한 친구에게 여태껏 한 번도 못다 베푼 음식상을 크게 대접한다는, 이야기들도 담겨 있으니 정말로 재미있다.

"당시 잘나가던 때 그 친구가 나를 찾아오더니, 그 동안 신세만 졌는데 오늘은 자기가 한 턱 내겠다 하더니 소주에 삼겹살을 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거 남의 주사 대신 맞아가며 번 돈이유. 많이 드쇼'라고 했다."(160쪽)

이 세상 사람들이 엮어가는 인생 이야기가 어디 쓸모없는 게 있겠는가마는 그것을 잘 엮고 또 재미있게 풀어내는 기술을 가진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배꼽잡고 웃게 만드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뜻에서 소설가 이인환이 엮은 이 책, 허풍 같지만 실제 같은 사람들 이야기는 정말로 재미있고 웃음꽃 그 자체로 넘쳐난다. 사람 사는 맛이 이렇게도 죽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사람맛 한번 쥑이네 - 이인환의 인간유형 체험백서

이인환 지음, 바다출판사(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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