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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끼또스(Iquitos, 영문명 이키토스)에서의 둘째 날. 밀림 내 산장에 도착해 푸짐한 점심식사와 새구경을 마친 나는 동행한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다시 배에 올랐다. 가이드가 밀림내 한 마을에서 이곳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토속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있다며, 그곳으로 가보자고 제안했기 때문이다.

진황토색의 흙탕물과 열대우림 속을 누비며 달려 나가길 10분여쯤 되었을까? 배는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란 다리가 있는 한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이 다리는 나무를 잘라 조립해 만든 다리로, 강가 선착장과 밀림 깊숙이 위치한 마을을 연결한다고 한다.

▲ 강가 선착장과 밀림속 마을을 연결하는 나무로 만든 긴 다리
ⓒ 배한수
헌데 다리를 따라 한참을 걸어들어 갔는데도 다리의 끝이 보일 기미가 없다. 이 다리는 마을까지 들어가는 진입로의 길이 험하고 질퍽거려 마을 사람들이 협력해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그 길이가 장장 120여 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다리를 지나자 푸른 잔디가 펼쳐진 조그마한 로까 후에르떼(Roca fuerte)마을의 광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주위를 둘러싼 울창한 수풀에 나무로 지은 몇 채 안되는 가옥만이 보이는 평화로운 마을의 광장. 이 곳의 좌측으로는 2m는 족히 넘어 보일만한 풀들이 가득 심어져 있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일행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저쪽 건너편에 술 제조공장이 있다며 우리 일행을 수풀이 무성한 숲 속으로 안내했다.

▲ 수풀을 헤치며 걸어가고 있는 일행의 모습
ⓒ 배한수
길조차 제대로 나있지 않은 수풀을 헤치며 걸어 들어가길 1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일행은 숲 속에 작게 자리 잡은 양조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저히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깊은 숲 속에 아담하게 들어선 양조장. 이곳에서는 키가 멀대 같이 큰 아저씨 한분과 그의 가족들이 작은 공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까냐데 아쑤깔이란?

이곳은 까냐데 아쑤깔(Can~a de azucar)이라는 풀로 술을 담그는 공장이라고 한다. 풀의 이름이 생소하여 가져온 사전을 뒤져보니 까냐데 아쑤깔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사탕수수였다.

"사탕수수로 술을 만든다고?"

사탕수수가 설탕의 원료로 쓰인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것으로 술을 만든다는 사실은 나에게 굉장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도대체 어떻게 술을 만드는지가 궁금하여 양조장 주인아저씨께 여쭤보니, 지금부터 술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줄 테니 잠깐만 기다리라고 한다.

기다란 낫을 가지고 우리가 지나쳐온 밭으로 돌아가는 아저씨. 우리가 지나쳐온 풀숲은 다름 아닌 사탕수수 밭이었음을 자연스레 눈치 챌 수 있었다. 사탕수수는 열대지방에서 자라는 식물로 대나무 같이 곧게 뻗어 자라는 식물인데, 줄기에는 당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오래전부터 설탕의 주원료로 사용되어져온 식물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탕수수를 어찌 한눈에 알아챌 수 있었으랴. 신기한 마음에 양조장 근처에 심어진 사탕수수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위로 2~3m 이상 뻗은 줄기는 20여개의 마디로 이어져 있었다.

▲ 곧게 뻗은 줄기에 촘촘한 마디를 가진 사탕수수의 모습
ⓒ 배한수

사탕수수로 술을 담그는 과정

잠시 후 땀범벅이 된 채로 사탕수수 줄기를 한 아름 안고 돌아온 아저씨는 갖고 온 사탕수수를 내려놓고 입구에 있는 한 기계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마치 경운기에 시동을 거는 것처럼 손잡이를 잡고 원형으로 돌려 기계에 시동을 거는 아저씨. 딱 보기에도 상당히 오래된 것 같은 기계와 한참 씨름을 한 끝에 드디어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 사탕수수 즙을 내는 기계의 모습
ⓒ 배한수
시동이 걸리자 두개의 모터축과 여러 개의 톱니가 맞물려 만들어진 기계는 털털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아저씨는 바닥에 내려놓았던 사탕수수를 한줄기씩 톱니의 이음새에 끼워 넣기 시작했다.

▲ 기계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사탕수수의 모습
ⓒ 배한수
기계로 기다란 사탕수수가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자 뒤편으로는 톱니에 눌려 납작해진 줄기들이 국수처럼 뽑아져 나오고, 아래쪽에 받쳐놓은 플라스틱 통에는 사탕수수즙이 담겨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아저씨가 가져온 사탕수수를 정신없이 기계에 집어넣기 시작하기 몇 분 지나지 않아 통에는 진연두빛의 사탕수수즙이 반 이상 차올랐다.

▲ 즙내는 기계를 통과해 납작하게 으깨진 사탕수수 줄기의 모습
ⓒ 배한수
기계의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사탕수수즙이 담긴 통을 우리에게로 가져온 아저씨는, 유리잔으로 그 즙을 한 컵 떠서는 맛을 보라며 나에게 건넨다. 순간 먹어도 되는 것인지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이것도 이국의 색다른 경험 아니겠는가 싶어 잔을 받아들어 맛을 보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사탕수수 즙은 향기로운 풀냄새에 아주 달콤한 그야말로 한 잔의 맛있는 주스였다.

▲ 아저씨가 컵에 따라주신 진연두빛의 사탕수수즙
ⓒ 배한수
이렇게 짜여진 즙은 지붕 밑 음지에 세워놓은 드럼통에 보관되어 일차적으로 3일간의 숙성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이렇게 자연온도에서 숙성을 거친 사탕수수즙은 20도의 도수를 가진 술로 변신하게 되는데, 이 상태로 술을 먹어도 상관은 없지만 정제가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다량을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 사탕수수즙을 숙성시키는 드럼통의 모습
ⓒ 배한수
숙성중인 드럼통의 비닐을 걷어내니, 드럼통 윗부분에는 숙성되며 솟아오른 가스와 침전물이 뒤섞여 조금은 보기 역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모르는 아저씨는 숙성이 완료된 드럼통의 술을 조금 떠주시더니 맛을 보라며 건네신다. 사실 먹기는 영 꺼림직 했지만 아저씨의 정성에 못 이겨 받아든 술을 맛보니, 역시 생각대로 정제가 되지 않아서인지 맛과 향이 굉장히 시큼하고 생각보다 도수가 높았다.

▲ 비닐을 걷어내고 본 드럼통 속의 숙성된 사탕수수즙
ⓒ 배한수
이렇게 드럼통 안에서 숙성을 마친 사탕수수즙은 증류의 방식으로 최종 정제되어 까냐소(Can~azo)라는 완성된 술로 재탄생하게 된다. 최종 23도의 도수에 맑고 투명한 색을 띠는 이 술은 이곳 아마존 원주민들의 대중적인 술, 즉 우리나라의 소주처럼 널리 사랑받는 술이라고 한다.

가마솥을 이용한 증류방식

숙성된 술은 아저씨가 직접 만들었다는 가마솥 기계를 통해 증류되고 있었는데, 보기에도 오랜 세월이 흔적이 느껴지는 증류기는 이날 구경거리 중에 단연 압권이었다. 커다란 솥에 숙성된 술을 부은 뒤 직접 나무를 때어 끓여진 술은, 파이프를 따라 왼쪽 욕조로 옮겨져 식혀지게 되고, 그렇게 욕조안의 찬물에서 식혀진 술은 최종적으로 플라스틱 통에 옮겨지게 된다.

▲ 작업이 진행 중인 가마솥을 이용해 만든 증류기의 모습
ⓒ 배한수
아저씨가 열심히 까냐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는 와중에도, 이 증류기에서는 증류된 술이 플라스틱 통으로 끊임없이 쪼르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 술은 사탕수수를 원료로 해서인지 독특한 향이 났고 그리 순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소주처럼 그냥도 마실 수 있을 정도의 도수를 가졌다. 이 정도면 아마존의 소주라 불러도 손색이 없으랴.


외부와의 고립 속에 탄생한 아마존의 술 까냐소

이렇게 아저씨는 어릴 적 아버지께 술 만드는 기술을 배운 이후로 벌써 30년째 이 일만을 해오고 있다고 하셨다. 거의 떨어질 듯한 옷에 남루한 복장을 하고 계셨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아마존 사람들을 위한 이곳의 토속주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만은 그 누구보다 대단해 보였다.

이렇게 외부와의 접촉수단이 배뿐인 아마존 사람들은 대량의 물류 수송이 어려웠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자신들의 환경 속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만들어 왔다고 한다. 게다가 아마존에도 모터보트가 들어와 물류수송이 원활해진 지금도, 술과 같은 일부 품목의 제조는 이렇게 대물림되어 전해져오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외부의 질 좋고 다양한 물건들이 들어오더라도 그것과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들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렇게 아마존 사람들의 애환과 즐거움을 함께할 아마존의 소주 '까냐소'는 밀림 한 켠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제조되고 있었다. 이 술 속엔 분명 아마존 사람들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가득 담겨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끼또스 여행기는 총 11부로 연재됩니다. 

본 기사는 중남미 동호회 "아미고스(http://www.amigos.co.kr)", 
"싸이월드 페이퍼(http://paper.cyworld.com/vivalatin)" 에 칼럼으로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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