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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알리기 위해 발목에 족쇄를 차고 상복을 입은 채 전북 고창에서 450km를 걸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 도착한 김기현씨가 국회에 쌀협상 비준관련 건의문 전달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직접 전달은 무산됐다.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알리기 위해 발목에 족쇄를 차고 상복을 입은 채 전북 고창에서 450km를 걸어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 도착한 김기현씨가 국회에 쌀협상 비준관련 건의문 전달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직접 전달은 무산됐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너희 부모 형제와 농민들 살리기 위한 건의문을 국회에 전달하러 가는 거다. 싸우러 가는 게 아니다. 이렇게 막지 마라."

21일 오전 10시50분께 서울 여의도 국회 건너편 국민은행 앞길. 전북 고창에서 서울까지 450km를 걸어온 농민 김기현(48. 한국농업경영인 고창군연합회 전 회장)씨는 국회로 나아가는 길을 봉쇄한 전투경찰들에게 여러차례 호소했지만 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상복을 입고 족쇄를 찬 김씨는 지난 14일 '우리농업 살리기 450km 대장정'에 나서 8일간 서울까지 도보행진을 했다. 21일 오전 국회의장에게 전달하는 '쌀 협상 비준 관련 대국회 건의문'을 국회 민원실에 접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회 경비 관계자들은 "상복을 입고 국회에 들어올 수 없다"며 김씨가 국회 쪽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김씨는 "족쇄는 정치인들이 우리 농업의 발목을 잡았기에 찬 것이고, 상복은 정치인들이 농업을 죽였기 때문에 입은 것"이라며 "상주가 상복을 입었다고 길을 막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항의했다.

결국 김씨는 "450km를 걸어왔는데 건의문 하나 내 손으로 전달하지 못하게 하다니…"라며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건의문은 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소속의 다른 간부 2명이 대신 전달했다.

다음은 김씨가 전달하고자 한 '쌀 협상 비준 관련 대국회 건의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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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김원기 국회의장님께!

저는 두 차례에 걸쳐 내 고장 고창에서부터 서울까지 자전거 상경투쟁을 전개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농촌의 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돼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책을 요구하면서 쌀협상 국회비준 저지투쟁을 지속해오던 상황에서 이제는 우리 농민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주곡인 쌀값이 20% 이상 폭락하는 현실에서 또다시 족쇄를 차고 상복을 입고 450km 머나먼 서울로 발걸음을 내딛게 됐습니다.

제 살이 찢어지고 발에 물집이 터지는 등 살인적인 고통은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 정용품·오추옥 동지가 세상을 등져야만 하는 우리나라 농업, 농촌의 비참한 현실은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실제 지금 우리 농촌은 생기없는 거대한 양로원이 돼버렸습니다.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갔고 아기 울음소리마저 끊긴 지 오래입니다. 마흔을 훨씬 넘긴 농촌 총각들이 그나마 외국 여성들과 결혼하기조차 힘든 지경이 되고 있습니다. 피땀으로 농토를 일구고 몸바쳐 일하며 고향을 지켜온 우리 농민형제들에게 남겨진 것은 두 주먹 맨 손뿐입니다. 해방 이후 60년, 참여정부까지 이어져온 무분별한 개방농정에 대한 불신과 분노, 미래에 대한 분노와 좌절만 남은 것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참여정부는 WTO, FTA 쌀 협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염없이 시들어가는 농촌의 모습을 직시하고 350만 농민들의 애절한 절규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립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27%도 안되는 식량자급률로 해외 거대 곡물메이저의 입김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우리 식량주권의 냉엄한 현실과 피땀 흘려 소중한 농토를 일굴수록 눈덩이처럼 켜져만 가는 농가부채에 짓눌리고 주름져 가는 350만 농민의 쓰디쓴 피눈물을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가 해결해야 합니다.

김원기 국회의장님!

지난 여름 사상 최고의 무더위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뒤로 한 채 우리들은 햇볕을 친구 삼아 논과 밭으로 나갔습니다. 살이 따가울 정도로 강렬한 태양은 지금도 우리의 얼굴을 검은 색으로 물들였고 땅에서 나오는 지열과 10시간 이상 계속되는 중노동은 농부증의 고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350만 농민들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애절한 절규를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민의 참여가 제일의 국정과제라는 노무현 정권은 우리 350만 농민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의 잘못된 예측에서 비롯된 쌀 대란과 비준 관련 대책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우리 350만 농민들도 더 이상 참고 정부의 대책만 기다릴 수 없습니다. 111년전 갑오농민항쟁의 함성을 온 몸으로 부여안고 우리 350만 농심은 성난 파도가 돼있습니다.

우리 농업의 근본 회생 및 쌀 대란 해소 대책 없는 쌀 협상 국회 비준은 철회돼야 하며 우리 350만 농민의 생존권과 식량 주권을 확보하기 위한 심도 있는 방안이 국회에서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

2005년 11월 21일
고창 농민 김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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