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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6주년을 기념해 만든 제 홈피에는 예쁜 사진들이 많이 담겨져 있답니다.
결혼 6주년을 기념해 만든 제 홈피에는 예쁜 사진들이 많이 담겨져 있답니다. ⓒ 유영수
지난 일주일간 저는 엄청 바쁘게 지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니홈피 싸이열풍에 너도나도 빠져 일촌순회 하느라 정신없을 때도, '사진 찍는 건 무지 좋아하면서 왜 미니홈피 하나 없느냐'고 주위 사람들에게 질책 아닌 질책을 받을 때도 무심코 외면했었던, 저만의 홈피를 만드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 줄 모를 정도였지요.

엄밀히 말하면 누구나 본인의 미니홈피는 다 만들어져 있답니다. 포털사이트에 개인아이디가 생성됨과 동시에 이미 자신만의 공간은 마련되고, 다만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따라 생동감 있는 혹은 죽어버린 홈피가 되느냐가 판별될 뿐이죠.

그런 면에서 꽤 오랫동안 숨죽이고 있었던 제 여러 홈피 중, 가장 사진 올리기 좋고 다른 글을 퍼 담기도 수월한 한 포털사이트의 블로그를 부활시킨 셈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한 주간 매일 퇴근 후 컴퓨터가 있는 작은방에서 몇 시간을 보내며 결혼기념일 아침 아내에게 선물할 예쁜 미니홈피를 완성해 내기 위해 공을 들였습니다.

지난 일요일 여의도공원에서 마지막 단풍을 감상하고 있을 때...
지난 일요일 여의도공원에서 마지막 단풍을 감상하고 있을 때... ⓒ 유영수
물론 아내는 이 사실을 감쪽같이 모르고 있답니다. 비밀리에 홈피를 만들고 기념일에 제 사랑과 정성이 듬뿍 담긴 홈피를 선물하면 감동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한 것이지요. 아내 몰래 홈피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는 TV드라마도 일조를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제 아내는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 심지어 아침드라마까지 드라마라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푹 빠져 살거든요. 그래서 마치 자신이 드라마 속의 비정한 연인으로 혹은 외교관으로 활동하는 대통령의 딸이 된 것인 양 슬퍼하며 때론 눈물을 흘리며 극중 상황에 몰입하곤 한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작은방에서 뭘 하는 지 별로 신경을 안 쓰기에 비밀유지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여러 날 정성스럽게 홈피를 꾸민 후 제가 활동하고 있는 여러 동호회의 게시판에 글을 올려, 제 미니홈피에 들러 결혼기념일 축하멘트를 남겨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 웬만해선 그냥 움직여 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상품을 주기로 했습니다.

거금을 들여 상품을 걸고 '홈피 오픈기념 선물팡팡 이벤트'라는 게시판에 여러 가지 이벤트를 마련한 것입니다. 재미있고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를 해서 당첨이 되면 컬러링과 벨소리 선물은 기본이고 영화예매권과 양질의 고급 다이어리, 게다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담아 만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러브미니 캘린더' 등 정말 푸짐한 선물을 준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제 노력이 기특했던지 매일 많은 지인들이 게시판을 들러주었고 방문자수는 오픈 4일만에 400여 명을 돌파하는 등 꽤 성과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이벤트에는 정작 아무도 참여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안부 남기기'란에도 홈피오픈을 축하하는 지인들의 메시지만 답지할 뿐, 결혼기념 6주년을 축하하는 멘트는 거의 남겨지지 않은 게 문제였던 겁니다. 아내를 감동시키려는 계획이 성공하려면 포커스가 그쪽으로 맞춰져야 하는데 말이죠. '결혼기념일에 선물 뭐 줄 건데?'라는 아내의 질문에 '기대나 많이 하고 있어. 깜짝 놀라게 해 줄 테니까'라며 큰소리 치곤 했으니 조바심이 날 수밖에요.

커플링을 맞추러 나갔던 어제 종로 어느 영화관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
커플링을 맞추러 나갔던 어제 종로 어느 영화관 앞에서 함께 찍은 사진 ⓒ 유영수
결국 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와 누나들, 그리고 친조카와 외조카에 처형들까지 제 주위의 사람들은 모두 제 전화를 받고 컴퓨터 앞에 앉아야 했을 겁니다.

평소 인터넷에 익숙한 조카들이야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바쁘게 사느라 정신없어 컴맹이다시피 한 작은누나와 어머니는 제 홈피에 들러 안부 남기는 것도 결코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결국 작은누나와 어머니가 축하멘트를 불러주면 아이들이 대신 자판을 두드려 글을 남기는 식의 일종의 대필까지 동원됐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고마운 일입니다.

근데 이쯤에서 글을 읽으시던 분들이 궁금해질 것도 같습니다. 도대체 결혼기념일 6주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그렇게 요란스럽게 준비를 하느냐고 말이죠. 물론 거기엔 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습니다.

거실에 있던 이 두 마리의 돼지를 잡아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거실에 있던 이 두 마리의 돼지를 잡아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 유영수
벌써 6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1999년 11월 21일. 아내는 제가 성실하고 멋진 청년이라는 믿음과 저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평생을 저에게 맡기기로 하고, 많은 친지들 앞에서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한창 아름다움을 꽃피울 26살의 젊디젊은 시절 늦가을이었죠.

6살 연상인 저는 그 당시 힘들게 준비한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서초동 관공서에서 의기양양하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청년이었습니다. IMF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을 때라 취업의 벽은 높아지기만 했고, 덕분에 인기신랑감 순위에 상위권으로 랭크되는 직업 중의 하나였던 공무원이 되었으니, 결혼 당시 저에 대한 아내와 처가의 기대도 컸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결혼 후 채 2년도 못돼 저의 섣부른 판단으로 '평생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생활은 끝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한동안 백수로 지내야 했고요. 뜻한 바가 있어 다른 자격증 시험을 준비해 전업을 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겪은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지만, 말없이 곁에서 지켜보며 감내해야 했던 아내의 고통은 더 컸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아내는 내색 한번 하지 않더군요. 그랬기에 아내에 대한 제 미안한 마음은 더 커져만 갔고요.

아무튼 지금은 안정이 되어 다른 일을 하며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어쨌거나 저를 믿고 자신의 인생을 올인한 아내에게는 참 못할 짓을 한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직장을 옮기면서 공백기간이 있어 아내의 월급으로 생활해야 할 때가 꽤 많았으니까요.

원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못 참고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지닌 저는, 진득하게 한 가지에 매진하지 못하는 탓에 아내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별 불평도 없이 묵묵히 제 뒷바라지를 해온 아내는 저에게 고마운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저의 잦은 이직으로 인해 살림 꾸려나가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억척스럽게 저축을 해, 내년 봄에는 작지만 아늑하고 전망이 탁월한 우리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요.

몇달간 고생해가며 정성스레 만들어 부모님 이사하실 때 선물했던 십자수 벽시계. 부모님을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 고맙게 느껴집니다.
몇달간 고생해가며 정성스레 만들어 부모님 이사하실 때 선물했던 십자수 벽시계. 부모님을 생각하는 아내의 마음이 담겨져 있어 고맙게 느껴집니다. ⓒ 유영수
그러기에 부모님과 누나를 비롯한 제 가족들은 아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냅니다. 때론 오히려 제가 소외감을 느낄 정도지요.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며 저는 흐뭇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고부갈등이나 시누이와의 감정싸움 같은 불미스런 상황은 제 가족들에겐 남의 일처럼 느껴질 뿐이니까요.

회사에서 단체로 관광을 갔던 괌에서 찍었다는, 앳된 모습이 선명한 처녀 때 아내의 사진
회사에서 단체로 관광을 갔던 괌에서 찍었다는, 앳된 모습이 선명한 처녀 때 아내의 사진 ⓒ 유영수
제 뒤에서 묵묵히 가정을 지켜온 아내는 지난 6년간 제법 아줌마 티가 날 정도로 변했습니다. 처녀 때는 나름대로 귀엽고 보조개가 예쁘게 들어가는 모습이었는데, 고단한 직장생활과 살림살이에 군살도 많아졌고 신경질도 가끔 부리는 30대 초반의 전형적인 주부가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런 아내에게 이 정도의 이벤트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더 좋은 선물과 훨씬 감동적인 이벤트를 선사하지 못한 게 미안할 따름이죠. 그래서 제가 한동안 열심히 모아왔던 돼지저금통을 깨기로 했답니다. 500원짜리 동전을 꽤 많이 넣어두었던 예쁜 돼지 두 마리가 희생양이 된 셈이죠.

그런데 도리어 제가 더 큰 선물을 아내에게 받게 됐지 뭡니까. 1주일 전부터 '나는 선물 뭐 줄건데?'라고 제가 물어보면 '글쎄... 하는 거 봐서'라며 궁금증만 유발하던 아내가 어제(20일) 오후 제 손을 잡고 종로로 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결혼할 때 받았던 패물과 결혼반지까지 모두 팔아버려, 지금은 우리 부부의 손가락에 기념반지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던 차였습니다. 저도 그게 마음에 걸려 이번 결혼기념일에 커플링을 맞춰주려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냥 예쁜 외투 하나만 선물하고 내년 결혼기념일을 기약하려던 참이었지요.

제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아내 역시 직장에서 열심히 모아온 돼지저금통을 깨 거금 27만원을 마련했고, 그 돈으로 우리의 커플링을 맞추기 위해 귀금속 도매상이 밀집한 종로3가로 저를 이끌고 간 것입니다. 정말 너무 고맙고 미안해 별다른 말을 건넬 수도 없었습니다.

셋팅을 마친 커플링을 끼고 기념사진 하나 찍으려 하자, 주위상인들 모두 '저런 커플 처음 본다'며 웃으십시다.
셋팅을 마친 커플링을 끼고 기념사진 하나 찍으려 하자, 주위상인들 모두 '저런 커플 처음 본다'며 웃으십시다. ⓒ 유영수
반지 값이 워낙 비싸 조금 더 돈을 보태야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다행히 예쁘면서도 예산을 초과하지 않을 수 있는 커플링을 찾아 서로에게 끼워주며 다짐했습니다. 신혼 때보다 더 예쁘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자고.

평소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저는 제가 애지중지하는 디카를 아내가 조금 함부로 다루기라도 하면 "내 보물1혼데 소중히 좀 만지지 그래"라며 무안을 주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별소리 없던 아내가 어젠(20일) 정색을 하고 저에게 반문하더군요.

"겨우 이게 자기 보물1호야?" 순간 저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굉장히 미안하기도 했고요. 이제 진실을 말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마눌! 원래 보물1호보다 국보1호가 더 중요한 거 알지? 내 국보1호는 마눌이거든. 국보1호 사랑한다'

결혼기념일인 오늘 저녁 데이트할 때 멋지게 입고 나오라며 준비해 준 아내의 또다른 선물입니다. 나이보다 훨씬 젊은 감각의 옷을 즐겨입는 저에게 늘 좋은 옷을 입혀주기 위해,  언제나 자신보다는 남편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결혼기념일인 오늘 저녁 데이트할 때 멋지게 입고 나오라며 준비해 준 아내의 또다른 선물입니다. 나이보다 훨씬 젊은 감각의 옷을 즐겨입는 저에게 늘 좋은 옷을 입혀주기 위해, 언제나 자신보다는 남편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유영수
제 미니홈피에 축하메시지를 남겨준 큰누나는 "이제 정으로 살 때가 된 거 같구나"라며 더 서로를 아끼며 살라고 주문하더군요. 하지만 사랑보다는 정으로 똘똘 뭉쳐 셀 수 없이 자주 싸워가며 힘겹게 살아온 지난 6년을 보내며, 이젠 끈끈한 정은 물론 애절한 사랑까지 더해져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한 포털사이트에 만들어진 제 블로그의 이름은 '멀리서 바라보다 뜨겁게 사랑하기('http://blog.naver.com/grajiyou)입니다. 지난 6년의 세월동안 멀리서 지켜보면서 무덤덤하게 보냈다면, 이제 뜨겁게 아내를 포옹하며 사랑해 줄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금쯤 제 전화를 받고 결혼기념으로 만들어진 미니홈피를 보며 기뻐할 아내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여러분도 제 홈피에 놀러오셔서 축하멘트와 함께 이벤트에도 참여해 보세요. 푸짐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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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고 대자연을 누리며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서울에서 평생 살다 제주에서 1년 반,포항에서 3년 반 동안 자연과 더불어 지내며 대자연 속에서 깊은 치유의 경험을 했습니다. 인생 후반부에 소명으로 받은 '상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한 가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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